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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칼린디 회고록 『비노바 바베』

by 언덕에서 2017. 9. 12.

 

 


갈린디 회고록 『비노바 바베』 

 

 

 

 

                                                  

비노바 바베(Vinoba Narahari Bhabe, 1895~1982)는 인도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가이다. 이 책은 비노바 바베(이하 '비노바'로 칭함)를 평생 옆에서 지켜본 이가 그의 행적과 육성을 대필한 회고록이자 평전이다. 이 책은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비폭력을 실천하고 영성을 추구했으며, 사랑의 힘을 간직해 온 위대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비노바는 영적인 진리와 실천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삶의 길을 찾던 중 마하트마 간디1를 만났고 인도를 갱생시키기 위한 그의 활동에 합류했다.

 1895년에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2으로 태어난 비노바는 열 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아가기로 서약하였다. 비노바는 출가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인도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1940년 간디를 만나 '비폭력저항운동'(satyagraha, 사티아그라하)에 합류했고, 간디는 ‘사티아그라하3’를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비노바를 선택했다. 비노바는 인도가 독립을 얻자 20여 년간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지주들을 향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해 토지 6분의 1을 공유하자고 호소했다.

 "도둑질은 범죄지만 많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도둑을 만들어내는 더 큰 도둑질입니다.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이들을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소유한 땅의 6분의 1을 바쳐주십시오."

 그는 전대미문의 '부단(bhoodan : 토지헌납) 운동'을 시작했다. 인도 전역을 8,000km 이상 걸어 다니며 쉼 없이 지주들을 만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어주도록 설득하여, 스코틀랜드만 한 거대한 토지를 헌납받았다. 그리고 그 토지 전부인 약 400만 에이커의 거대한 토지를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비노바 바베(좌)를 영접하는 네루 수상(우)

 

 

 

1. 간디가 존경한 사람

 

비폭력 운동을 이끈 대표적 지도자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이의 없이 마하트마 간디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간디는 비노바를 가리켜 '인도가 독립하게 되면 인도의 국기를 처음으로 게양할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인도 최고계급인 브라만으로 태어나 인도의 독립과 가난한 사람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그 바탕은 '노력하는 맑은 영혼'이었다.

 영국의 통치를 받는 인도가 정치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비노바는 간디와 함께 비폭력 투쟁을 전개했고, 물레를 돌리는 일이 이러한 투쟁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923년 비노바는 ‘사티아그라하’ 사건으로 체포 후 투옥되어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중노동을 선고받는다. 그는 진정한 아쉬람(힌두교도들이 수행하며 거주하는 곳)의 생활을 감옥에서 경험하였다고 술회하였다. 무소유의 서약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감옥이며 매일 규칙적인 생활로 심신을 수행하니 감옥보다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인데, 영성을 추구하며 사회변혁을 꾀했던 그의 자세를 알 수 있다. 이후 1936년에도 감옥 투옥되어 6개월을 보냈으며, 1940년에 9개월 등 영국의 통치 기간 동안 총 5년 동안을 감옥에서 보냈다. 1936년 나병 환자를 위해 나병 센터를 건립하였으며 건설과 공예 등의 영역에도 봉사활동을 넓혀나갔다. 

 그는 인도의 상류층인 브라만을 상징하는 시카(머리를 상투로 묶은 것)를 스스로 자르고, 코란과 성서를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불교와 자이나교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으로 공부한 끝에 자신의 종교인 힌두교를 버리게 된다. 악명 높은 참발 계곡의 강도들조차 그의 인격에 탄복하여 비노바 앞에 무릎을 꿇었다. 비폭력이 폭력주의자들에게 승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2. 카스트와 계급, 언어와 종교의 장벽

 

 비노바가 거주하던 공동체(아쉬람)에서 불가촉천민인 분뇨 치우는 사람의 우두머리가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다. 어린아이에게 분뇨통은 어찌나 무거웠던지 제대로 다룰 수 없어서 꼬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비노바는 이후 분뇨 치우는 일을 직접 하게 되었다. 최고 계층인 브라만 계급이 분뇨를 치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이고 새로운 일이었다. 마하트마 간디의 부인인 카스트루바 간디가 이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불평하자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브라만이 분뇨 치우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있습니까?”

 그는 이후 계속해서 분뇨 치우는 일을 솔선했고, 주거환경개선을 멈추지 않았다.

 1948년 스승이었던 간디가 총격으로 사망하자 한동안 자신이 인도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였다. 그는 인도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권위적인 사회건설을 구상했으며 인도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비폭력 교육 혁명을 주장했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가 만들어 낸 모든 제도 속에는 폭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사랑의 매를 핑계로 회초리와 훈육이 있고 정부에는 법을 빙자한 통제와 처벌이 있다. 사회에는 자본가와 다투는 노동자의 보이콧과 파업이 있다. 자본가는 폭력으로 노동자를 억압한다. 이에 노동자는 또 다른 폭력으로 대항한다. 국제 사회는 군대와 자본의 폭력이 용인되는 대표적인 곳이다. 진정한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힘과 자본의 논리와 군대가 아닌 비폭력 교육과 사랑과 인내심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3. 차별과 폭력이 없는 평등한 사회

 

 영국으로부터 해방 후 인도가 혼탁해 있을 때 가난한 자들은 배고픔으로, 부자들은 폭동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는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면서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부유한 사람과 빈민들을 만나곤 했는데, 공산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최소한 이것만은 인정해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 목표로 삼고 있는 그 이상은 아직 어떤 나라에서도 실현된 일이 없고, 언제 실현될 수 있을지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다. 설사 우리가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필요하다 하더라도, 인도가 독립을 얻고 참정권이 보장된 지금 무력에 먼저 호소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목적을 이루고 싶다면 무력을 포기해야 한다.”

 그는 인도 대륙 전역을 다녔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설을 하였으며 사람들이 카스트와 계급 및 언어와 종교의 장벽을 허물도록 촉구하였다.

 

 "내게 속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모든 것이 나에게 속한 셈이다. 나 또한 모든 사람에게 속해 있다."

 그가 이처럼 텅 빈 평화로움으로 사람들을 섬겼기에, 그는 인도가 되고, 우주가 되었다. 그래서 간디는 평생 자신을 따랐던 제자인 비노바를 세상에서 가장 존중하고 존경했다.

 비노바는 돈이 없는 사회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선하며 그 선함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겠지만 돈이 없는 사회와 비권위주의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희망이 존중받고, 여러 곳에서 이런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를 우리는 항상 소망한다.  

 비노바는 자신이 의도했던 사회운동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추진했던 일들이 정의롭고 건전한 일이었기에 결국에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말년에는 마하라슈트라에 있는 아쉬람에서만 머물렀고 사회활동을 중단한 채 기도와 명상에만 전념하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는 치료를 거부한 채 80일간 단식을 수행하다 1982년 생을 마쳤다.

 

 

비노바 바베는 마하트마 간디의 제자로 1940년 '비폭력저항운동'(사티야그라하)을 함께 이끌었고, '토지헌납운동'(부단)을 주도했다. 이 책은 '모든 경계를 허무는 사랑만이 변혁의 힘'이라는 사상을 갖고 있던 그의 내적인 명상의 삶과 외적인 활동을 두루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비노바가 생전에 들려준 경험담을 토대로 회고록 형식으로 엮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1994년에 출간되었다. 비노바는 폭력 없이 사랑과 감동만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깨닫고 '토지헌납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토지헌납운동'으로 인도에서는 스코틀랜드 크기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땅이 헌납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카스트와 계급과 언어와 종교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라고 연설했고, 스스로 브라만을 상징하는 긴 머리타래를 자랐다. 악명 높은 참발 계곡의 강도들조차 비노바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역대 인도 수상들로부터 가난한 서민에게까지 두루 존경받는 '맨손의' 지도자 비노바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 월간지 '맑고향기롭게' 2017년 10월호에 게재됨 - 

 

 


 ☞ 저자인 칼린디는 인도의 바로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인 1960년에 비노바를 만났다. 비노바와 절친한 사이가 된 그녀는 그의 강연과 대화를 꼼꼼히 기록하였으며, 언론 출판 관계에서 대변인 역할을 했다. 1964년 비노바가 힌두어 월간지를 시작하자  오랫동안 편집장을 맡았다. 비노바가 파우나르에 창설한 아쉬람 브라마비디야 만디르의 회원이기도 하다.

 

 

 

 

 

 

 

 

  1.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구자라트어: મોહનદાસ કરમચંદ ગાંધી, 힌디어: मोहनदास करमचन्द गांधी, 영어: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는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로,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영국 유학을 다녀왔으며, 인도의 영국 식민지 기간(1859~1948) 중 대부분을 영국으로부터의 인도 독립 운동을 지도하였다. 영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반영 인도 독립운동과 무료 변호, 사티아그라하 등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인도의 작은 소공국인 포르반다르의 총리를 지냈던 아버지 카람찬드 간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종교는 부모의 영향으로 힌두교이다. 인도의 화폐인 루피의 초상화에도 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본문으로]
  2. 브라만 계급의 높은 지위는 그 연원이 후기 베다 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때부터 인도 북부에 정착한 인도유럽어 사용 주민들은 사제계급인 브라만,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ya), 농민층인 수드라(Śūdra)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이들 4계급의 상대적인 지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브라만 계급의 종교적인 순수성은 수많은 금기사항을 지킴으로써 유지된다. 그 가운데에는 엄격한 음식물 선택, 낮은 계급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것 등이 있다. 대부분의 브라만들이 채식주의자들이며 몇 가지 직업은 선택에 제약을 받는다. 브라만들은 많은 특권과 높은 교육수준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국 식민지 기간에 브라만들 대부분이 지적인 지도자의 역할을 했다. 오늘날 실제적인 특권을 요구하는 브라만들의 요구는 더이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이들은 여전히 큰 특권과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본문으로]
  3. 사티아그라하는 힌디어로, '진리에 대한 헌신'이나 '진리의 힘'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간디는 레오 톨스토이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작들, 성서·〈바가바드기타〉와 그외의 힌두 문헌에서 영향을 받아 사티아그라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사티아그라하는 힌두교의 비폭력 사상인 아힝사에도 뿌리를 둔다. 간디가 처음으로 사티아그라하를 구상했던 것은 1906년 남아프리카 트란스발의 식민정부가 통과시킨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법에 대항하던 때였다. 1917년 인도에서 처음으로 사티아그라하 운동이 전개된 것은 참파란이라고 하는 인디고 재배지역에서였다. 그후 몇 년 동안 사티아그라하의 수단으로서 단식과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인 사티아그라히는 평화와 사랑의 정신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진심으로 비폭력을 굳게 지킴으로써 악이 일어나게 되는 사태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절대자 속에 있는 진리와 만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