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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야마오 산세이 수상록 『여기에 사는 즐거움(ここで暮らす楽しみ)』

by 언덕에서 2017. 9. 15.

 

 

 

야마오 산세이 수상록 『여기에 사는 즐거움(ここで暮らす楽しみ)』

 

                                                           

 

일본 시인이자 사상가인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1)의 수필집으로 1996년 7월 호부터 19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내용이다. 이 책은 출판되자 일본 문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02년 번역되어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안내해주는 수필이자 사상서이다.

 내용은 대안문화1 언저리를 기웃거리던 한 시인이 가족을 데리고 홀연 일본 남쪽의 작은 섬에 근거지를 튼 데서부터 시작한다. 실제로 저자는 1977년, 온 가족과 함께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고,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살아있는 것들)를 스승으로 삼아 자연과 벗하고 살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은 본래 물과 빛, 흙과 공기에 속해 있는 생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지금 와서 분명해진 것은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라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만남은 인간이 본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차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를 살았던 자연철학자들의 사유에 깊이 공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야쿠시마의 깊은 숲 속에 조몬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7200년을 살아온 삼나무 '조몬스기'와 비교해보면 제아무리 잘난 인간도 오히려 삼나무 한 그루보다 하잘 것 없는 존재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다. 그것이 지구 위의 어느 장소이든, 사람이 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나고 죽을 각오를 하면 그 장소에서 끝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삼라만상 속에서 삼라만상의 지원을 받아 가며 거기에 융화돼서 사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또한 저자는 개인과 개인, 문명과 자연이 대립하는 것이 아닌 혼연일체 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영혼이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신 애니미즘과,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을 강조한다.

 "나는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에 아직 얼이 빠져 있지 않기 때문에(거기에 있는 것도 신이지만) 그런 하나로서의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지만 새로운 신을 그냥 가미2라고 표기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다 가미다. 왜냐하면 가미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진심으로 좋았다고 느끼는 것을 통틀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겨울의 어느 날, 나가타 바닷가의 모래 언덕에서 짙푸른 바다를 보다가 갑자기 그 바다가 그대로 신이자 불교에서 말하는 여래임을 깨달았다.”

 그가 자연을 대하는 삶의 자세, 마음가짐은 세상 만물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를 '가미'라고 부른다. 그는 신을 천국에만 가둬 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저자 야마오 산세이의 자연철학은 '가미'로 요약할 수 있다. 

“아이누라는 이름은 최근에 상당히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 뜻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온 이 문명 속에서 ‘인간(아이누)의 문화’를 끊임없이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아이보리진이란 아이보리진의 언어로 ‘조상’이란 의미다. (이들 역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들이 만들어 온 문명사회로 ‘조상의 문화’를 깡그리 쓸어 없애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외로운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위기에 처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명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새로운 애니미즘3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는 것이다.

“삼나무 그루터기를 식탁 삼아, 털 머위 조림과 쑥 수제비를 끓여내는 삶. 멀리 잎 넓은 나무들이 바닷바람에 두런두런 흔들리는 소리, 타닥타닥 잘 마른 장작을 때는 즐거움.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섬에 사는 즐거움.”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는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이 책은 신 애니미즘, 석기시대 충동, 생명지역주의라는 저자가 일생을 걸고 꿈꾸고 바래왔던 세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는 193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현대문명에 대항하여 원시 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1973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팔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였고, 1975년부터 도쿄에 호빗토 마을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였다. 1977년에 온 가족이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의 한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며, 그곳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한없이 자기를 초극해 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이 책을 썼다. 한편, 농사일 틈틈이 시와 글을 쓰는 문필 활동을 하며 살다가 2001년 8월에 그의 영혼의 별인 ‘오리온의 세 별’로 돌아갔다. 

 

 

 

 

 


  1. 기존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하여, 이를 대체할 만한 내용과 형식으로 새롭게 시도하여 형성하는 문화. [본문으로]
  2. Kami , 神. 일본의 신도와 기타 토속신앙의 숭배 대상. 흔히 주나 신으로 풀이되나, 우월성이나 신성 때문에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해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와 다른 창조신들, 훌륭한 조상들, 식물·바위·동물·물고기·새 등의 생물, 무생물이 모두 가미가 될 수 있다. 초기 신도에서는 천신 아마쓰카미[天津神]를 지신 구니쓰카미[國津神]보다 더 위대하게 여겼으나 오늘날 신도에서는 그러한 구별을 하지 않는다. 가미는 거울과 같은 상징적인 물체 속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신사에는 거울 형태로 가미가 모셔져 있다. 신도 신화에는 무한히 많은 가미가 더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800만 가미'라고 말하고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가미가 계속 모셔지고 있다. [본문으로]
  3. 모든 사물에는 영혼과 같은 영적, 생명적인 것이 두루 퍼져 있으며, 삼라만상의 여러 가지 현상은 그것의 작용이라고 믿는 세계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