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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창동 단편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by 언덕에서 2017. 5. 24.

 

 

 

이창동 단편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소설가·영화감독 이창동(李滄東. 1954∼)의 단편소설로 2002년 발표되었다같은 해 [문학과 지성]사에서 표제작의 단편소설집으로 발간되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실 그 자체의 양면성, 그것이 분명히 진실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진실을 아는 자와 그것을 말할 수 없는 자의 거리가 그것이다. 그 진실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준식이 뚜렷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창동의 소설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완고하게 재단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이나 사실들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그것이 모두 과대 포장된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의 삶이 보여주는 이중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간적 배경은 1980년대. 육군 소장 전두환 장군이 군사 쿠데타로 나라를 지배하던 시절이다. 삼십 대 중반의 준식은 학교도 온전히 다니지 못한 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인물이다. 학교의 급사, 서무과 직원을 거쳐, 교장의 호의로 가까스로 중학교의 기술 교사가 되었다. 그는 녹천역 근처의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에 겨우 23평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여 집을 꾸미는 것에 만족해하며 아내와 자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배다른 동생 민우가 나타난다. 민우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하고, 그다음에는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하고, 그러다가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자 준식을 찾아온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한 어머니는 준식과 민우를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삯을 아끼기 위해 차장에게 민우의 나이를 속인 적이 있다. 그때 어린 민우가 툭 나서서 “아니다. 나는 여덟 살이다. 어머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하고 말해서 어머니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어머니는 망신당한 채 결국 버스 삯을 내게 되었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빵 도둑질 사건인데, 굶주리다 못한 준식과 민우는 이웃에 있는 빵집의 빵을 훔쳐 먹기도 하고, 훔쳐다가 집에 간직하기도 했다. 눈치를 챈 빵집 주인이 집으로 들이닥쳐 빵을 어디에 감춰뒀느냐고 호통하자 준식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는데, 민우가 손을 들어 그 빵이 있는 곳을 가리켜서 혼쭐이 나기도 했다.

 문제는 가난한 대로 부족한 대로 그럭저럭 균형을 이루며 열심히 살아가던 준식 부부가 민우의 등장으로부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착하고 순박하던 아내는 준식을 민우와 비교하여 멋없다 비난하고, 경멸하고, 결혼생활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까지 나타낸다. 준식은 민우로 대표되는 어떤 부류에 대한 반발과 질시, 자기 삶에 대한 의구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동생 민우를 경찰에 밀고하기에 이른다. 민우가 연행된 뒤 준식은 민우의 말대로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도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이어온 23평짜리 아파트도, 아파트가 들어선 동네도 모두가 가식과 허위에 싸여 있는 것임을 깨닫고 울부짖는다.

 

 

 

 작가는 녹천 아파트 건설 공사장 바닥에 질펀하게 깔린 그 ‘똥’처럼 우리의 평온한 삶의 밑바닥에 감춰져 있는 고통스럽고 추잡하고 치욕스럽고 냄새나는 이 세상의 몰골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 사회가 지닌 모순, 그 모순의 원인을 철학적으로 실천적으로 깨닫고 그 모순과 싸우는 민우와 같은 사람은 극소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실상은 대부분 준식과 같이 현실 사회의 모순이 가해오는 엄청난 하중에 짓눌려, 그 원인을 철학적으로 깨닫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급급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준식과 같은 사람들이 현실에 무지하므로 비난받아야 하고, 준식의 아내 표현처럼 무가치한 것일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비록 철학적으로 그와 같은 모순의 원인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 모순에 저항할 용기를 지니지도 못했지만, 그 모순으로 인한 하중을 가장 크게 받는 이들이 준식과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 준식과 같이 선량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상처가 될 때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억압과 폭력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이 작품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이 작품은 소시민적 인물인 형 준식과 그와 반대로 현실의 모순을 파헤치고자 하는 동생 민우의 대립이 드러나는 작품이다준식은 도시빈민 출신임에도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자수성가하여 지금은 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그러나 동생인 민우는 명문대를 졸업한 뒤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배자가 되어 있다민우는 모두가 우러러봐야 할 '정의의 사자'로 보인다돌아온 민우가 준식의 집에서 은신하게 되면서 그동안 준식을 둘러싸고 있던 불편한 진실들이 들춰지게 되고 준식은 민우의 일로 아내와도 갈등하게 된다결국 준식은 형사에게 민우의 거처를 고발하고 민우는 연행되고 만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운동권은 나쁘고 소시민적인 삶이 좋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운동권이 언제나 바르다고 하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는 진실이 가진 양면성을 준식의 어린 시절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하여 그 답을 통렬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팔십 년대 군사독재의 억압적 통치와 그에 대한 저항의 당위성 아래 감히 누구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참과 거짓의 양면성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 그 통찰은 작가가 자기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탐색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두고두고 수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창동 (1954 ~) : 소설가·영화감독. 감독한 영화마다 흥행과 평론에서 모두 뛰어난 성과를 얻음은 물론, 국제 영화제에서도 다수 수상하여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영화감독이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전리>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소지>(1987), <녹천에는 똥이 많다>(1992) 등의 단편소설을 썼다.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하여,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으로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다. 1997년 감독 데뷔작 <초록 물고기>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각본상,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영화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모두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문화관광부 장관(2003.2~2004.6)을 역임했으며, 2001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