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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구 장편소설 『장한몽(長恨夢)』

by 언덕에서 2017. 1. 4.

 

 

 

이문구 장편소설 장한몽(長恨夢)

 

 

 

이문구(李文求, 1941~2003)의 장편소설로 계간지 [창작과 비평] 1970년 겨울호(통권 19호)부터 1971년 가을호(통권 22호)까지 4회에 걸쳐 집중 연재된 작품으로 발표 당시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1987년 [책세상출판사(冊世上出版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변두리 공동묘지 이장(移葬) 공사에 몰려든 서민들의 밑바닥 삶을 통해 현대 한국인이 지닌 비극을 묘사했다.

 이 소설 『장한몽』은 작가 이문구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 작품 완성후 『관촌수필』의 연작 세계와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우리 동네』의 연작 세계를 선보이게 되는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한몽』은 서울의 마포의 해체되어가는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곡절 많은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1960년대라는 한 시대의 이야기를 6.25 전쟁이라는 죽음의 역사를 등에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부정과 부패로 영토를 넓혀가는 무리들, 간질병에는 사람 간이 특효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과 욕망에 굶주린 젊은이들의 모습은 지금의 인간군상과도 다르지 않다.

 

 

소설가 이문구( 李文求,  1941 - 2003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쟁 때문에 형과 아버지를 사별하고 나서 상경한 김상배는 경제적 능력이 없이 결혼하여, 돈놀이를 하는 장모의 등쌀에 주눅이 들어 산다.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던 중, 옛 친구 신성식의 도움으로 신천동 산 5번지의 2,000기가 넘는 분묘를 다른 공동묘지로 옮기는 일을 맡게 된다. 그는 지나친 현실 적응능력이 오히려 화가 되어 막노동판에까지 나서게 된 마길식의 도움을 받아 공사인부들을 모집한다.

 마길식은 월남 파병 때에 인부로 따라갔다가 밀주 장사를 하는 등의 범법 행위로 강제 송환되기도 한 인물이다. 모여든 인부들은 모두 묘를 이장하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막판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일제시대에 남의 원한을 사서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나서 한평생 밀려오는 불안감ㆍ죄책감으로 숨어 살아온 구본칠, 백정이었던 신분 때문에 고향을 떠나 월남하여 도시 밑바닥의 삶을 살아온 유한득과 그 아우인 차득ㆍ삼득과 누이동생 초순 등이 그들이다. 또한 일찍이 7남매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악착같이 삶을 꾸려온 왕순평, 동회 서기직을 해본 적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불평주의자 이상필, 교회 권사였다고 주장하면서 포장마차를 하나 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박원달 영감 등이 그들이다.

 그밖에 절간의 머슴 노릇을 하다가 강간미수로 산에서 도망쳐 나와 공동묘지에 간이화장터를 차리고 유골을 처리해주는 것으로 호구를 잇는 모일만, 아들을 못 낳는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신이 죽어야 집안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무당의 사주 때문에 학대를 받는 노처녀 최미실 등이 등장하여 끈끈하고 얼기설기 얽힌 삶의 편린들을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공동묘지 이장공사를 위하여 모여든 인부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삶의 밑바닥에 깔린 애환과 한을 사실적인 현장 묘사와 함께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6ㆍ25로 인한 전쟁의 상흔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인간상들은 6ㆍ25와 빈곤의 현대사가 빚은 한의 세계에서 비극을 인식하고 상황에 정면으로 대결하며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여기서 그의 특유한 토속어 구사와 해학적 대화로 전통적인 한국인의 심상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각 등장인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가 그들의 성장 과정을 냉정하게 파헤친 이 작품은 산만할 수도 있는 시각의 다양성을, 적나라한 삶의 실상과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는,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에 접목시킴으로써 미적 총체성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공동묘지 이장공사가 무사히 끝나는 순간, 주인공격인 김상배가 득남을 하였다는 연락을 받는 상황 설정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극도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이장을 하다가 유골에서 금붙이를 탈취하는 행위나 머리칼을 잘라내는 것, 무덤 속에서 나온 사기그릇을 모으는 것이나 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사체를 식육하는 행위 등을 통하여 삶의 당위성과 가치판단에 대한 의문을 다소 냉소적인 시각과 함께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고통 받는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상황에 의하여 좌절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여야 한다.

 작가는 비속어의 적절한 사용, 함축성 있는 대사, 냉정한 사실묘사 등을 통하여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 요설문체와의 연결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