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 장편소설 『달궁』
서정인(徐廷仁.1936∼ )의 장편소설로 1985년 9월 [한국문학]에 그 첫 번째 묶음이 발표된 이후 [세계의 문학], [문학사상], [소설문학] 등 여러 문예지와 종합지를 통해 1989년 12월까지 발표되었으며, 그 첫 권 『달궁』이 1987년에, <달궁 둘>이 1987년에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연작 소설이다.
어찌 보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연작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이 특이하다. 이 작품은 소제목이 붙은 수많은 부분들의 집합인데 각 부분은 200자 원고지 10매에서 15매 정도이다. 처음 간행된 단행본 『달궁』의 경우 86개의 에피소드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달궁』은 선적이고 인과적인 줄거리가 없다. 여러 개의 독자적인 줄거리를 조각내고 또 몇 겹으로 겹쳐서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줄거리 자체를 약화시킨다. 즉, 그 역할을 최소화하여 독자들이 겨우 윤곽만 감지하도록 한다. 1980년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소설로서, 77개에 이르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각각 소제목이 붙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가를 살피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77개에 달하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6ㆍ25전쟁으로 고아가 된 인실이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고백록이다. 그녀는 고향을 잃고 방랑의 세월을 보내면서 탈출과 복귀의 과정을 되풀이하는데, 이 속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삶과 사회가 내보이는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절제 있게 들추어내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달궁ㆍ하나>의 줄거리는 ‘서울과 적당히 떨어져 있는 지방(전북)’과 가끔 서울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는 소외된 사람들의 주변적 삶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삶의 세계를 담고 있는 이 <달궁ㆍ하나>는 이들 부자간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는 어린 시절에는 지역적으로나 문화적․정신적으로 동일한 환경이었으나, 이들은 점차 다른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이들 부자간의 세대 격차는 우리 사회의 변천에 따른 인간의 삶의 양상이 어떻게 굴절되고,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줄거리로 가득 차 있다.
<달궁ㆍ둘>의 삶의 공간은 서울로 옮겨온다. 우리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인실의 스물여섯 살 무렵의 이야기이다. 이 연작의 화자인 ‘나’는 안면도와 태안 근처를 여행하던 중 한 매운탕 집 부부를 알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매운탕 집 여자가 뺑소니차에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을 알게 되고, 나는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며칠 뒤,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죽은 여인의 일기장 같은 몇 권의 노트를 소포로 받게 되고, 그 일기의 주인공인 인실이라는 여인의 삶을 살펴보게 된다.
인실이는 6ㆍ25전쟁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아가 되어 어느 싸전 주인집에 의해 거두어져 자라게 되고, 여고 시절 삼촌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주인 아들의 간곡한 청혼도 피하여 떠나온 고향을 찾게 되고, 고향을 찾아가는 길에 황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 아들인 오빠와의 동거로 인해 기도원으로 강제 수용된다. 그리고 기도원을 탈출하여 기도원 이사장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다가 윤 선생을 만난다. 윤 선생과 함께 살다가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된다. 공장에 다니다가 전무에게 추행을 당하고, 이를 이용해 상조회를 만들다가 쫓겨난다.
그리고 계숙을 만나 미군 부대가 있는 술집에서 지내게 된다. 여기서 또 홍형태를 만나 결혼하고, 이때 해직 교수인 김 교수를 알게 된다. 남편 홍형태는 '의식 모임'에 참석하면서 간첩 의식 교육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남편이 체포, 구속되자, 남편 친구인 우종류와 관계를 갖게 되고, 남편이 출옥하자 이를 괴로워하나, 남편 홍형태는 과거를 잊고 살자고 한다.
『달궁』은 연작소설이다. ‘인실’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이 펼쳐지는 현실 풍경을 객관적 서술 구조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주인공 인실의 삶을 주요 내용으로 하면서도 그녀와 관련된 등장인물들의 삶의 세계를 주인공과 연관시키지 않고, 독립된 세계로 객관화시키고 있는 점이 이 『달궁』의 줄거리 전개 특징이다.
소설의 서두에 '네거리'란 제목 아래 한 여자의 죽음이 나온다. 그러나 곧이어 모래밭'이란 제목으로 두 처녀를 태워 주는 운전사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등장가'에서는 어느 여자의 넋두리가 나온다. 차에 탔던 두 처녀의 이야기가 '만리포'란 제목 속에, 또 '다시 네거리'란 제목 아래에서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순경과 이 길을 지나가다 호기심을 보이는 운전사의 대화가 나온다.
독자들은 한참 후에야 운전사는 지방 검사이고, 그 검사는 두 처녀가 타기 전에 또 다른 여인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주었으며, 그 여인은 횟집 여자이며, 여인이 죽기 전날 밤에 검사가 그 횟집에 들렀고, 검사는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는데 죽은 여자가 자신이 태워다 준 여인임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운전사, 즉 검사를 비롯한 두 처녀가 '인실'의 생애에 종속적으로 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에피소드가 계속될수록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독립된 줄거리를 형성한다.
♣
작품마다 객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달궁』이라는 전체적 서사 구조 속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의 추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삶 의식이 용해되어 있다. 사건들이 하나의 서술 고리에 의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은 독립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이 『달궁』은 60∼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으로서, 현실을 투시하여 이를 노출시키는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성과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대표작인 <강(江)>에서의 절제된 문장, 단일한 인상과 효과, 통일된 구성, 인생의 한 단면을 통찰하는 작가 의식 등의 소설적 성과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즉, 판소리계 소설 수법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나 배경을 희미하게 깔고, 작중 인물들의 대화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수법을 확립했다. 『달궁』은 전통적 소설이 지니는 서사적 형태를 탈피하여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80년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려내는, 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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