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비평 문학서 『파한집』
『파한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화집(詩話集)이다. 상, 중, 하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는 시평, 서필, 수필, 시화, 문담, 기행문이 실려 있고, 중권에는 시평, 수필이 실려 있으며, 하권에는 시평, 수필 등이 실려 있다.
이인로는 1152년, 고려 왕조 500년 동안 내우외환이 가장 많던 시기에 태어난 관료이자 시인으로 처음으로 시평을 써서『파한집』이라는 시평집을 내놓은 사람이다. 『파한집』은 이인로의 설화 문학집으로, 저자가 죽기 직전에 지은 작품을 사후 40년이 지난 뒤, 그의 아들인 이세황이 간행한 것이다. 시대적인 불운으로 인해 18세 때 무신 반란인 정중부의 난을 맞고, 이 계기로 이인로는 승려가 된다. 하지만 그 후 몇 년 뒤, 정중부 일당이 숙청되자 그는 환속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예부원외랑·비서감우간의대부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 관직에 재임하던 중 고종 7년(1220), 향년 69세로 개경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저서로 『파한집』3권, <은대집>20권, <후집>4권, <쌍명재집>3권이 있으나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것은 『파한집』3권뿐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이 시화집은 우리나라의 한자 문학 또는 한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시 비평을 주로 싣고 있으며, 그 외에도 옛 선비들의 일화, 풍속, 설화, 민요, 문물, 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기록들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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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크게 시와 관련된 일화, 시론, 시평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체로 시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파한집』전체에는 총 169편의 시가 등장하며 이인로 자신의 시만도 33편이다. 유명한 시구를 뽑아 수록하고는 다시 자신이 당시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주고받은 시 일화, 문담, 기사, 자작 작품 등까지 담고 있어 시대를 초월해서 옛 선비들의 문학관, 생활관의 철학을 엿볼 수 있으며, 당시 지성인들의 생활상과 우정, 시와 술에 관한 일화, 풍속 등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이인로의 사후 40년 뒤인 1260년(원종 1) 3월에 아들 세황이 수집하고 안렴사 대원왕공(大原王公)의 후원으로 초간되었다. 현재 당시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1659년(효종 10)에 엄정구가 경주부윤 재임 중에 조속의 가장비본(家藏秘本)을 가지고 각판(刻板)한 중간본이 남아 있다.
『파한집』의 권 상은 시평(詩評) 12조(條), 서필담(書筆談) 1조, 수필 7조, 시화(詩話) 1조, 문담(文談) 2조, 기행문 1조, 권 중은 시평 13조, 수필 13조, 권하는 시평 15조, 수필 18조 등의 도합 83조가 수록되어 있다.
『파한집』의 ‘파한(破閑)’이란 글자 그대로 한가함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산림에 은둔하며 온전한 한가로움을 얻음은 장기ㆍ바둑 두는 일보다 낫기에 ‘파한’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파한집』은 단순한 심심파적을 위한 저술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파한집』의 내용은 시화ㆍ일화ㆍ기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파한집』의 태반은 시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파한집』은 우리나라 시화집의 효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고전 시학의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이인로는 우리나라 명유(名儒)들의 시작품들이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채로 인멸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시를 삶의 정수로서 사랑하고 음미하면서 많은 시화를 『파한집』에 수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다른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편들이 상당수 실려 있다. 그리고 시학의 근본 문제에서 작시법(作詩法) 혹은 구체적인 작품평에 이르기까지 두루 제시되어 있다. 동시에 수필적인 잡록도 여러 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파한집』은 역사자료로써 이용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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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가 『파한집』에서 피력한 그의 문학사상은 다음과 같다.
① 시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어떤 상황에서 창작되며, 또 어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그는 빈부와 귀천으로 높낮이를 정할 수 없는 것은 문장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문학 행위의 주체에 대하여 신분적 차등과 구속을 배제한다. 그는 더 나아가서 문장의 가치를 부귀의 그 것보다 더 높이 두었다. 이인로는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생산해 낸 문학의 내용과 풍격(고상하고 아름다운 면모나 모습)은 자체적인 구속성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는 마음에서 근원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인로는 신준과 임춘의 작품 성격이 그 표현상에 한스러움과 구슬픔이 깔려 있음은 그들의 현실 상황(신분)과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② 이인로는 시에 담겨야 할 내용은 충의지절에 근거하여 형상화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절대적인 가치였을 것이다. 그는 두보(杜甫)의 시가 보여주는 경지를 예로 들고 있다.
③ 이인로는 작시론(作詩論)에서 말의 뜻이 제대로 갖추어진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것은 문학(시)이 언어의 구조물 내지는 예술이라는 투철한 인식을 한 것이다. 따라서 말을 솜씨 있게 다루는 것을 우선적으로 중시하여 다듬은 흔적이 없는 상태인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경지를 권장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뜻의 경계에서 뜻의 묘미를 추구하였다. 이인로를 이러한 면에서 보면 종래의 단순한 한시를 지을 때에 옛날의 뛰어난 글들에서 표현을 이끌어 쓰는 일을 주장하는 사람으로만 파악하여온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후대의 평가다.
그 밖에 특기할 만한 사항은 왕명과 기년문자(紀年文字: 일정한 기원으로부터 계산한 햇수를 표시한 문자)가 27조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것은 그의 사학에 대한 안목을 알아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11년에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중간하였고, 1964년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파한집의 역주본을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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