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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

by 언덕에서 2016. 12. 13.

 

 

 

 

김동리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

 

 

 

 

 

김동리(金東里.1913∼1995)의 장편소설로 1955년 11월호부터 1957년 4월호에 걸쳐 [현대문학]에 연재되었고, 1958년 [일신사]에서 간행되었다. 1958년 예술원 작품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을 완결한 후 작가 스스로가 ‘작가 생활 35년 만에 비로소 작품다운 작품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에서 사반이라는 인물은 조국인 이스라엘의 독립이란 현세적, 지상적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 이때 구세주라는 ‘예수’가 나타나 영혼의 구제, 즉 내세적, 천상적 영광만을 추구하여 사반과 대립하다가 둘 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만다. 예수 옆의 십자가에서 “먼저 너 자신부터 구하고 남을 구하라.”고 소리친 강도가 바로 사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예수와 사반을 통해 영혼과 육체의 모순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영혼과 육체의 조화로써 모순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 해답은 새로운 동양 문화 속에 있다는 시사를 주고 있다.

 

 

렘브란트의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반은 2천년 전 대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의 독립운동가로, ‘혈맹단’이라는 비밀 행동 결사의 대표자이다. 그는 로마군을 물리치며, 애굽과 시리아를 누르고,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의 조국 해방을 위한 싸움은 무모한 것이 되고, 그가 바라는 영광은 고통과 패배로 끝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반은 처음 메시아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간다. 베드로의 처가에서 예수를 만난 사반은 조국 유대의 독립, 즉 지상의 왕국을 건설해 줄 것을 바라지만, 예수는 유대(이스라엘)가 하늘에 설 것을 주장한다.

 이렇게 상반된 의견으로 갈등을 보이던 두 사람은 다메오의 처가에서 두 번째로 만나지만, 역시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예수는 로마인을 죽인 사반의 행동을 죄악시하였다. 이렇게 사반은 지상주의를 주장하는 반면, 예수는 땅이 아닌 하늘,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 그리고 삶이 아닌 죽음의, 현세와 인간을 초월한 세계, 즉 내세와 천국의 무한한 생명을 구하려 하였다.

 결국 사반과 예수는 합일화 되지 못하고 같은 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

 

 

 이 작품은 김동리가 6ㆍ25전쟁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겪으면서 참된 인간 구원과 휴머니즘에 기본을 두고 쓴 작품이다.

 '사반'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왼쪽 십자가에 달린 강도다. 이 작품은 성서적인 사실성과 소설적인 허구성을 조화시킨 작품으로,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영원한 대결에서 종교적으로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작가의 사상적 심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웅건ㆍ장대한 스케일과 빈틈없는 구성, 그리고 정확한 문장 등이 이 작품의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장편 소설은, 기독교의 성경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사반이라는 작가의 상상력과 추리에 의한 인물설정, 그리고 예수의 이적 행위 등 기독교 사상과는 관련 없이, 한국적 샤머니즘의 특질로 채워져 있다는 데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예수의 부활도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어 작품의 모순성을 보여줘 사실성에 있어서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김동리가 기독교와 불교를 상징 체계로 사용했을 때도 언제나 그것은 인간 가운데 신의 발견을 중심으로 했다. 그래서 그는 『사반의 십자가』에서 인간 의식 가운데, 즉 생명 가운데서 인간을 구원하는 단서를 찾아보려고 했다. '사반'이 육체를 상징하는 동굴 속에서 암별과 숫별을 만나는 날까지 수련을 해야 한다든지, 그리고 예수의 이적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차원에다 두려고 했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 작가는 <무녀도>에서처럼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대결시키면서 이적의 현상을 천상의 신이 아닌 인간적인 생명의 차원에서 수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무녀도>에 나타난 '기독교가 서양의 그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김병익의 분석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동리는 그리스도교적 소재와 문제를 다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동양적 가치관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핍박받고 어렵던 상황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김동리의 신인간주의 사상으로 귀착된다. 이러한 종교적 주제를 통한 인간 구원의 문제는,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1968년),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82)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소설사의 한 경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