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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개와 고양이에 대한 여러 고찰

by 언덕에서 2016. 7. 22.

 

 

개와 고양이에 대한 여러 고찰

 

 

운전을 하다 보면 차에 치여 죽은 짐승의 사체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주로 개와 고양이 사체다. 당시 부산시와 진해시의 접경에 있었던 그 공장 근처는 원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대규모 공장이 완공되었으나 도로는 계속 건설 중이어서 매일 시골 동네 마을 길을 아슬아슬하게 운전해 가야만 했다. 일차선 외길이어서 맞은편에서 차나 경운기가 오면 100m 가까이 후진 운전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함께 타 출근하던 친구는 차에 치여서 죽은 후에도 계속 차바퀴에 밟혀 떡이 되다시피 한 개나 고양이의 사체를 보면서 말했다.

 “도로를 건너는 두 동물의 판단은 판이하기 짝이 없네. 차가 앞에 왔을 때 개는 무조건 도로를 돌진하는 편이고, 고양이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갑자기 건너는 편이고 말이야.”

 살아보니 그렇더라. 인간에게도 개와 고양이처럼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대학 입학 후 새로운 친구를 사귀던 봄날이었다.

 학교 앞 주점에서 친구로부터 그의 친구를 소개받게 되었다. R이라는 친구였는데 철학 공부를 많이 한 이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술 마시는 내게 물었다.

 “윤형은 술을 마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갑자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인생을 살아보니 그랬다. 뭐든 알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면 굳이 아는 척하지 말라는 거다. 솔직해야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매력이 될 수 있다.

 “하, 그건 잘 모르겠소. 그러니 내가 물어보겠습니다. R형은 그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자세를 낮추고 그에게 같은 질문을 되물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지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부끄러움 말이요?”

 “술 마시는 부끄러움 말입니다.”

 스무 살 때였으니 말술을 마셔도 끄떡없을 시기였다. 대단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을 뒤로하고 그와 헤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밑천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하여 운운은 당시 광주사태라 불리는 유혈 군사정변이나 교내 구석구석에 포진한 사복경찰을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냈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했으며 교수라는 이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떠들며 협박하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참는 것은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서 또는 몇 푼의 장학금이라도 받아서 가계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가난한 집안 학생의 피로가 숨어있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움’의 원전을 알고 난 후에는 자신이 더 부끄러워졌다.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어린 왕자와 주정뱅이의 대화를 그가 술 마시는 상대에게 술자리마다 빠짐없이 인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놀라워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무식함'의 부끄러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1980년대 초반은 독재시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학교 잔디밭에 앉아 있으면 근처에 누군가가 우리의 눈치를 보며 앉곤 했는데 그들은 대개 사복을 입은 보안 부대 사병이거나 사복경찰이기 마련이었다. 학과사무실이나 학생회 사무실은 밤에 누군가가 자물쇠를 뜯고 책상을 뒤진 흔적이 남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고 한다면 군대 제대 후 복학하여 다시 학교에 다니던 봄날이었다고 해야겠다. 절정의 체력을 자랑할 시기였으므로 전철역에서 내려 언덕 위에 자리한 국립대학교의 도서관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은 감미롭고 향기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가 군사복무 하는 동안에 학과(學科) 구성원들이 대폭 바뀌어 3년 후배인 여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걔네들은 우리가  입대하던 해 고3이던 여학생들인데 이제는 다 큰 숙녀로서 급우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학과의 조교 선생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조교 선생은 빈한한 가정 출신으로 서예 교실을 운영하며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본 유학준비 중인 '예비 교수'였는데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3년 선배이기도 했다. 인사를 하고 얼마간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대단히 독서량이 많은 지성적인 사람이라는 것과 두주불사하는 애주가라는 점이 그것이었다.

 내가 안내한 학교 앞 복학생 전용 술집에 들어서자 그가 사면 벽을 도배한 서예 글씨를 보며 한마디 했다.

 “제법 쓸 줄 아는 사람이 쓴 글씨네.”

 이윽고 술과 안주가 나오자 내가 서둘렀다.

 “선배님은 왜 술을 마십니까?”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계속 대답이 없었다. 그가 사서오경을 읽었고 십팔사략과 불경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이런 질문에는 별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

 “안주가 먹고 싶어 술을 마시지.”

 대답을 마친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마시느냐?”

 기다렸다는 듯 내가 대답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학교에 인간 같은 인간이 있습니까?”

 내 의사와 반해 나를 강제로 군대에 보낸 교수가 있었다. 정부 정책에 미온적인 놈들은 무조건 씹어 보겠다고 했다. 어떻게 내 말을 이해했는지 그 선배가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자네 말을 들으니 나도 부끄럽구나.”

 그 선배는 학과의 추천으로 일본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모교의 교수가 아닌 모 사립대학교의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교수 사회에 만연해있는 패거리 문화와 극우 논리에 힘들어했다. 진보적 색채의 '말'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논문이 문제였을 것이다. 불편함을 토로하던 그는 우리나라를 떠났다. 지금은 일본의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존 러스킨을 유독 좋아하던 그를 생각할 때마다 ‘부끄럽다’고 하던 진솔한 표정의 그 얼굴이 생각난다. 이제는 그를 만날 수 없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그러한 부끄러움은 계속되었다. 동료 간의 말도 안 되는 불평등과 견제는 정글을 연상시키게 했다. 누군가는 일제강점기 때 비밀경찰이 독립군을 찾아다니듯 회사에 불만을 가진 이가 없는지 찾아다녔고 그러한 이가 발견되지 않으면 일부러라도 만들어서 문제 사원을 생산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불만자’를 색출해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서장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유별난 이들이 있다. 근거 없는 불만으로 조직 분위기를 흐리거나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일을 예사로 하는 이들이 그것이다. 유부남 직원이 처녀인 여직원과의 불륜을 일으켜 사표를 받은 적이 있다. 동료들을 모아서 악질 회사 종업원들이 모두 불쌍하기 짝이 없다며 선동하던 여직원에게도 징계를 내린 적이 있다. 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정성을 더 하지 못했음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논리가 진실임을 요즘은 깨닫는다.

 가슴 짠한 기억도 있다. 내가 부서장으로 있던 곳에서 타 부서로 전출 명령을 받았고 부하 직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여직원 한 명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 가녀리고 어여쁜 아가씨 이름을 기억하는데 '이유 모르는 눈물 때문에' 이제는 잊을 수 없는 이가 되고 말았다.

 

 

 종교문제는 우리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첨예한 이념과 행동의 집합체이다. 종교적 신념은 2천 년 동안 끝없는 전쟁을 만들었고 지금도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스무 살 즈음에 읽었던 책 중에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대단히 감명 깊은 소설이 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쓴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라는 소설인데 1940년대 이태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연작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분량이 무려 10권이나 된다. 공산주의자인 동네 읍장 ‘빼뽀네’와 우익보수주의자인 가톨릭 신부 ‘돈까밀로’의 다투는 이야기를 만화처럼 그려간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하는 작품이 있는데 줄거리는 이러하다.

 

 

 뿌리 깊은 사회주의자로 살던 대쪽같은 한 노인이 죽어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마굿지아’다. 동네에서 협동조합을 만든 그는 파시스트의 공격을 당하자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마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왔다. 그와 같은 동네에서 자라난 돈까밀로 신부는 그에게 임종성사1 를 권유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죽을 때가 되니 변절했다는 소문을 내고 싶지 않소!”

 그는 죽을 때 종교 의식을 거부하고 장례식을 거행할 때 사회주의 찬미가를 연주시키고 싶어서, 죽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성당으로 돌아온 신부는 십자가 고상(苦像)에 매달려 있는 예수와 영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예수님, 성실하게 살았던 한 인간이 짐승처럼 죽어가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가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누가 천국에 가겠느냐?”

 얼마 후 이 노인은 수술을 받아 극적으로 살아난다. 노인은 신부에게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으니 성찬식을 해 달라고 요청한다. 신부는 자신이 속한 당의 당수만 참석한 성찬식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마굿지아가 나가자 고상의 예수가 신부에게 당의 당수가 누구냐고 묻는다.

 “물론 예수님이시지요.”

 예수님은 웃으면서 경고하셨다.

 “하느님의 뜻이 선량한 사람을 개처럼 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도록 하여라.”

 

 

 나는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이 소설을 코미디 소설로만 생각하다가 요즘은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케이블TV 불교방송을 보면서 발견한 내용이다. 즉문즉설을 하는 법륜스님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저는 개신교를 믿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렇게 불교로 또 개종하였고요. 저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법륜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상점이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사는 것처럼 어떠한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이기에 존중받아야 합니다.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지요. 단지 상점의 주인 입장에서는 다소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요.”

 개인의 신념이나 자유의지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도 과레스키 소설 속의 사회주의자나 법륜스님이 옳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개와 고양이의 특성을 알아가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러면서 결론이 나는 부분이 있다. 젊었을 때는 도로를 건너는 개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다가 나이 들면 고양이처럼 숙고와 숙고를 거듭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론은 똑같다. 그들이 자연사 하든지 아니면 목표 달성을 위해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이게 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렇다면 이렇게들 아등바등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위하여 청년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작금의 시대에서 가진 자 또는 사회지도층들이 보여주는 도덕적 해이나 학연, 인맥 등으로 꾸려지는 물신주의의 타락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참담함을 안겨준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관계를 자신의 권력에 의해서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는 윤리가 들춰내는 괴로움에 침묵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삶의 모든 서사는 우리 자신의 정직한 욕망을 은폐하며 질주한다. 이러고서도 오늘날의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길고도 길었던 '옛날의 금잔디' 마지막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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