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청첩장
원래 흰색이었던 속지가 누렇게 바랜 사진첩을 들추다가 사진 틈에 숨어있던 낡고 두꺼운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청첩장으로 언젠가 뭔가 쓰임새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보관해 온 것이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왔는데 발견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니까 이 청첩장을 40년 이상 간직해오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이 청첩장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연유는 간단하다. 청첩장의 주인공은 큰아버님의 맏딸인 사촌 큰 누님과 매형인데, 누님이 결혼 후 잉태하자마자 매형은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조카에게 추후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기억조차 못 하는 ‘아빠에 대한 추억’의 증표가 되든지 말이다.
누님의 결혼은 요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결정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넘어갈 즈음이었을까? 매형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고 누님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재가하지 않고 딸 하나를 키우며 씩씩하게 살아왔다.
낡은 청첩장을 조심스럽게 스캐너로 복사하여 jpg 파일로 만든 후, 대학 후배이자 직장 후배에게 보냈다. 후배는 사촌 누님 딸의 남편인데, 조카와 후배는 내가 소개해서 결혼한 사이다. 행여 후배 본가에서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을 해소해줄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엄하게만 느낄 수 있는 장모에 대한 정을 더 키울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1970년대였으니 20대 중반이면 당연히 혼기였고 백부님은 큰딸 혼처를 아는 사람을 통해 정했다. 그런데 부모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누님이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님은 부모가 정한 혼처와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고 그 상태에서 결혼식은 진행되었다. 아무리 부모가 정한 혼처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 반한 결혼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누님은 깨어있는 생각을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백부님 내외는 당연히 따라주어야 할 딸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일단 결혼식을 거행한 후에는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상심한 누님은 마음에 없는 사람과의 결혼 대신 신혼여행 때 틈을 봐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하겠다는 생각을 동네 친구에게 밝혔고, 그 계획은 이내 백부님 내외의 귀에도 전해졌다. 백부님은 행여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둘째 누님을 신혼여행에 딸려 보내는 비상수단까지 동원하였다. 소문에 의하면 신혼여행에 돌아올 때까지 두 사람은 처녀 총각 상태였다고 한다.
매형은 인근 동네의 부농의 둘째 아들에다 훤칠한 키에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의 호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신문물(新文物)에 눈 뜬 누님의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정황을 따져보면 누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올바른 결혼의 필수 조건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어쨌든 신혼여행 후 누님은 시댁으로 가야 했고 몇 달 후 임신 소식이 전해왔다. 그즈음에 누님 부부가 삼촌댁인 우리 집에 인사 왔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처남인 나를 비롯한 세 살 터울의 두 형에게도 격의 없는 유머와 다정스러움을 보여줘 지금껏 좋은 분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매형의 죽음이 전해져 왔고, 누님은 갓 난 딸을 안고 친정으로 돌아와 고단한 청상과부 생활을 시작했다. 누님이 재가(再嫁)하지 않자 시댁에서는 이를 갸륵히 여겨 가산 일부를 증여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후 누님의 인생 목표는 유복녀인 조카딸을 잘 키우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누님은 친정과 인근 대도시인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뒷바라지를 한 결과 조카는 교육공무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트라우마 탓이었을까? 조카는 혼기를 훨씬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절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때부터 누님은 내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동생, 너희 회사에 어디 좋은 총각 없니?”
그래서 나는 조카의 결혼 상대를 구해야만 했는데, 남녀관계가 항상 그렇듯이 쉽게 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조카에게 소개한 부하 직원과의 교제는 둘 다 호감을 느끼고 잘 진행되는 듯했으나, 서로가 좋은 감정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바람에 헤어지고 말았다. 두 번째로 소개한 ‘후배’와의 경우도 그랬다.
그렇게 해서 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조카는 30대 중반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는 이종사촌 여동생과 대화 중에 어느 남자와도 결혼할 생각이 없지만, 외삼촌인 내가 두 번째 소개해서 만난 후 헤어졌던 ‘그 오빠’ 정도의 남자라면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곧장 누님의 귀에 전해졌다.
“동생, 있잖아, 그러니까……. 벌써 5년이 지났네. 그 총각 결혼했니?”
“내가 아는 바로는 걔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지요.”
“그러면 네가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면 안 될까?”
후배에게 전화하여 다시 만나볼 것을 권했는데 그는 조카가 결혼했는지를 매우 궁금해 했다.
한 달 후에 누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조카와 후배의 결혼 날짜를 정했다는 것이다.
결혼 며칠 전, 결혼 주선자로서 누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누님은 예비사위에게 자신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며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카가 편모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행여 사돈댁에서 미혼모 소생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에 사전에 그러한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청첩장을 보여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나 그때는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조카와 후배는 귀여운 딸을 두 명이나 낳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언젠가 조카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내 집에 왕림한 적이 있다. 눈이 퉁방울만 하게 커서 예쁘기 짝이 없는 아이는 반갑게 맞이하는 내게,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이제 막 오십 줄에 접어들었는데 내가 할아버지라니……. 큰아버지의 큰딸인 누님과 내 나이 차이가 14살 나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인데 ‘할아버지’라는 말에 그날 내가 당황했음이 틀림없다. 가을이 되니 서정주의 ‘국화 앞에서’라는 시가 자주 생각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6. 12월호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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