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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길언 단편소설 『용마(龍馬)의 꿈』

by 언덕에서 2016. 10. 25.

 

 

현길언 단편소설 『용마(龍馬)의 꿈』

 

현길언(玄吉彦. 1940∼ )의 단편소설로 1984년 출판된 작품집 「용마의 꿈」에 같은 제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어린 영웅담> <씌어지지 않은 비문> 등 전 5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 <열전(列傳)>의 세 번째 단편으로, 제주도에 전하는 민간설화 '아기장수설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현길언 소설의 출발점은 제주도의 역사와 그 주민들의 삶이다. <광정당기(廣靜堂記)>(1984), <그믐밤의 제의>(1987) 등의 작품은 벼슬아치들의 수탈에 못 견뎌 신당을 세우고 영우의 도래를 기원하는 주민들의 염원이나, '장수여'라는 제주도 영웅담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귀향>(1982), <우리들의 조부님>(1982), <먼 훗날>(1984) 등의 작품을 통해 제주도민의 가슴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1948년 4ㆍ3 사건의 상처를 소설화함으로써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4ㆍ3 사건의 역사적인 재규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성장했고 제주도 사람들에게 미증유의 피해와 고통을 안겨다 준 분단 체험이 4ㆍ3 사태임을 생각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주도라는 지방적 삶의 특수성을 통해, 분단된 민족의 보편적인 비극을 형상화하는 이 작품은 제주목사로 대표되는 중앙권력과 강좌수로 대표되는 토착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부임해 온 지 얼마 안 되는 목사(牧使)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냥과 주색잡기로 소일하며 나날을 보낸다. 그는 자신의 임기를 어떤 식으로든지 무사히 때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도중에 벼슬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몹시 불안해했다. 제주도가 너무 하찮게 보였던 터라, 그는 정사(政事)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방으로부터 강 좌수가 진상용 귤나무를 모두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목사는 이를 자신을 벼슬에서 밀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고 간교한 호방과 함께 갖가지 궁리를 했다.

 강 좌수는 너그럽고 인자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의 신임 또한 두터웠다. 목사와 호방은 강 좌수를 쉽게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묘안을 짰다. 그것은 강 좌수의 신비로운 배경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강 좌수가 백성들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것은 강 좌수의 조상이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백성들을 걱정해 주고 도와준 때문이었다. 3대로 내려오면서 꾸준히 덕망을 쌓아 온 강 좌수의 집안은 백성들의 대변인이자 보호자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목사는 이러한 강 좌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목사는 강 좌수의 집터가 왕후지지(王侯之地)라는 소문을 내기로 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고을에 퍼져 나갔다. 뒤이어 강 좌수에게 날개가 돋아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러한 소문 때문에 강 좌수는 꼼짝없이 당하게 되었다. 그때는 날개를 달고 태어난 자식은 죽이거나 숨겨야 하는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목사는 자기가 소문을 퍼뜨리고도 이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강 좌수를 죽일 수 있는 호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즈음 강 좌수는 자기 집안의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재산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라고 당부했다. 이런 일로 인해 강 좌수는 동헌에 끌려가 문초를 당했다. 목사는 강 좌수에게 역적모의를 했다는 죄목으로 모진 고문을 했지만, 강 좌수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목사에게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충직한 관리가 되라고 조용히 권고했다. 그러나 목사는 결국 강 좌수를 죽였다.

 강 좌수가 죽은 뒤, 그의 식솔들은 관아의 노비가 되고 재산은 관가에 귀속되었다. 그런데 강 좌수의 둘째 아들이 용마를 타고 나타나서 슬피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더니 다시 내려와 장군이 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백성을 구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그 집 마당에선 군대가 훈련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도 돌았다. 어디를 가거나 사람들이 모여 언젠가 용마를 타고 장군이 내려올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 작품은 제주도 출신의 작가인 현길언이 제주도의 구비문학을 바탕으로 소설화한 것이다. 비록 현실적 대결에서는 선량한 토착세력이 중앙권력에 의해 제거되지만, 토착민들의 가슴속에 용마를 탄 장수가 다시 나타나 권력의 횡포로부터 해방시켜 주리라는 굳은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억압적 현실을 극복한 토착민들이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제주 목사로 대표되는 중앙 권력과 강 좌수로 대표되는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현실적 대결에서는 지방 호족이 패하여 죽음을 당하지만, 지방민들의 마음속에 '용마를 타고 다시 나타날 것이란 염원'을 심어줌으로써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와 같은 서술 구조 속에는 지방 호족과 중앙 권력의 불평등 관계가 설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불평등 관계는 중앙 권력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낳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 좌수가 지방민들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인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앙 권력인 목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은 바로 권력의 횡포에 대한 지방 호족의 피해 실태를 구도화해 낸 것이다. 그러나 승리자였던 목사가,

 "용마를 탄 둘째 아들을 보고는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다."는 신나는 용마 이야기에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는 후일담에서 그러한 중앙 권력의 횡포로부터 해방되어 억압적 현실을 심리적으로 극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