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
현진건(玄鎭健. 1900.8.9.∼1943.4.25)의 장편 역사소설로 1938년∼39년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1920년대 단편소설을 써왔던 현진건은 1930년대 들어서면서 장편소설을 썼는데, 창작 장편으로는 <적도(赤道)>가 있지만, 주로 역사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흑치상지(黑齒常之)>가 그렇고 또 1930년대의 종합지인 [춘추]에는 <선화공주>를 발표했다. 이 점에서 작가는 역사 소설가로도 평가할 수 있다. 흔히 역사소설이 왕조의 영고성쇠나 세도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리는 데 반해, 이 소설은 한 석공의 사랑과 예술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낭만적인 향기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는 1930년대 말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소재를 현대 사회생활에서 구할 수 없게 되자 과거로 회귀한 것이다.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동아일보의 사회부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던 그의 내면 의식에 민족주의적 의식과 일제 강점시대 지식인들의 일제 강점에 대처하는 모습과 그 당시 혼란스러운 정치 체제에서 사회의 지배 이념과 맞서 싸우면서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저항 민족주의 상황들을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라 경덕왕 때 초파일 밤, 다보탑을 2년 만에 완성하고 이제 석가탑을 세우고 있는 불국사에, 왕은 비공식 행차를 하였다. 일행은 다보탑의 정교한 솜씨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특히 일행 속에 끼여 온 이찬(伊湌)의 딸 ‘구슬아기’는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왕 앞에 나온 석공 ‘아사달’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는 백제 사람으로, 고향에는 결혼한 지 불과 1년 만에 헤어져 벌써 3년이 지난 ‘아사녀’가 있었다.
아사녀는 치근거리는, 아사달의 연적이었던 ‘팽개’를 피해 서라벌에 왔으나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석가탑이 완성되면 영지(影池)에 비칠 것이라는 말만 믿고, 영지 가에서 날을 보내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못에 빠져 죽었다.
탑은 완성되고 아내의 참변을 들은 아사달은 영지로 뛰어가 울었다. 구슬아기는 뒤따라와 함께 달아나기를 애원하다가 국법을 어긴 죄로 죽음을 당했다. 아사달은 아사녀와 구슬아기의 영상을 합해서 아름다운 탑을 조각하고는 그도 또한 영지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소설은 신라 시대 불국사 ‘석가탑’의 건립을 백제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비극적 사랑의 전설을 현대 소설로 그려 낸 작품이다. 장편소설『무영탑』의 배경은 영지 전설이다. 신라 예술의 최고작품인 석가탑을 건축하려는 한 석공의 예술혼과 남녀 간의 사랑을 결합시켜 애절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당학파(唐學派)와 국선도파(國仙道派)의 양 세력의 대립에 부여의 석수장이 아사달이 아름다운 탑을 이룩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지배이념을 대표하는 세속화된 승려들과 오직 탑의 완성만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있는 고독한 장인과의 갈등, 신라 귀족의 딸 주만과 부여에 두고 온 아사녀와의 사이에서 번민하는 아사달의 내면적 갈등, 아사달에게 사랑이 빠져 있는 주만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으로 아사달을 제거하려는 금성의 음모, 주만을 가운데 두고 경신과 금성이 벌리는 정치적 갈등, 경신과 아사달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주만의 갈등 등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석가탑이란 본래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나 치아 또는 머리카락을 모신 탑을 말하며 우리나라에는 불국사 외에도 속리산 법주사, 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칠곡 송림사 등지에 석가탑이 있다. 이 석가탑들은 모두 하지 정오에 탑신의 그림자가 땅에 드리우지 않게 축조된 무영탑이라고 한다. 무영탑에 관한 본격적인 기록은 '화염불국사 고금역대 제현 계창기(華嚴佛國寺古今歷代諸賢繼創記-불국사고금창기)'에 실린 '서 석가탑(西釋迦塔)'조에 처음 등장하며 무영탑 전설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원형 자료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석공은 이름이 없는 당 나라 사람이고, 그를 찾아온 사람은 누이 아사녀이다. 불국사 남서쪽 10리 지점의 못에 석가탑 그림자가 비치 않아서 무영탑이라 했다는 간단한 기록만이 실려 있다. 초의의순(草衣意恂)의 '불국사회고'라는 연작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앞의 두 자료에는 비극적인 결말은 없고, 단순히 탑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는 사실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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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오사카 긴타로(大板金太郞)(1921년)와 오사카로쿠손(大阪六村)의 <경주의 전설>(1927년) 중 영지(影池) 부분에 이르면 아사녀는 누이에서 부인으로 바뀌었고, 탑 그림자가 영지에 계속 비치지 아니 하자 아사녀는 투신하고, 석공은 부인을 닮은 부처상을 조각하고, 투신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 다보탑은 유영탑(有影塔), 못은 영지(影池), 영지 언덕에 있던 절은 ‘영사(影寺)’로 불렸다고 각색이 된다.
1938년 7월부터 현진건은 오사카 긴타로와 오사카 로쿠손의 영지 전설을 바탕으로 이를 소설화하여 동아일보에 '무영탑 전설'을 연재하고, 1941년 장편소설 『무영탑』을 발간한다. 이 작품은 서사구조가 복잡한 장편 소설로서, 귀족의 딸인 구슬아기를 등장시켜 본격적인 갈등과 파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애정 소설로 거듭난다. 현진건은 석공과 부인을 부여 사람으로 묘사하고, 석공의 이름을 아사달이라 부른다. 그리고 아사달과 아사녀는 당나라 사람이 아닌 백제 사람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현진건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진건에 의해 소설화된 무영탑의 전설은 그 뿌리가 깊어 이제는 거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소설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설화를 소재로 다룬 것이다. 가히 신라 예술의 정화라 할 석가탑을 이룩하는 한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집념과 이성 간에 얽힌 사랑을 다루었다. 이 소설은 한 왕조나 귀족이 아닌 하층계급인 장인으로서의 석수에게 숨은 인간미와 예술 정신, 불교 사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현진건 역사소설관의 특유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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