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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송기원 단편소설 『다시 월문리에서』

by 언덕에서 2016. 10. 6.

 

송기원 단편소설 『다시 월문리에서』

 

 

송기원(宋基元.1947∼ )의 단편소설로 1984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개인의 체험을 솔직하게 서술한 형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대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비극과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결말 부분의 서정적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80년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2년여 투옥되었다가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뒤 다시 문학 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발표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미 1979년과 1980년에 <월문리에서>1편과 2편을 발표한 바 있고, 「다시 월문리에서」를 발표한 뒤에 3편과 4편을 썼다.

 이 소설은 작가의 유일한 연작 소설인 셈인데, 월문리는 작가가 창작을 위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인 농촌으로 내려간 곳의 지명이다. 고향이 아니라 시골 생활을 위해 선택한 공간으로, 이곳에서의 체험을 작품화한 것이 바로 ‘월문리’ 연작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시인 송기원 (宋基元.194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가 출옥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의 산소가 모셔진 월문리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대신 맡아주었던 한 선배와 함께 산소를 찾은 것인데, 거기서 나는 어머니가 자살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젊었을 무렵 ‘뼈가 다른 남매’를 의붓아비 아래서 길러야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들을 면회조차 시켜주지 않는 감옥 속에 가두어 놓아 평생 한스럽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병이 들어 운신이 어렵게 되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되기 싫다는 뜻으로 월문리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이었다.

 나는 감옥 속에서도 어머니의 부고를 뒤늦게 듣고는 단식을 하며 어머니의 한스런 삶과 대결하다 가까스로 화해를 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가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은 접하지 않은 가운데 있었던 일이었다. 당연히 자살 소식을 접한 나는 충격에 빠진다.

 서울로 올라와 한동안 무질서한 생활을 하며 폭음을 계속하던 나는 몸과 정신이 쇠약해져 죽음에 대한 유혹까지 받기 시작하자 다시 월문리를 찾는다. 이웃의 동갑내기 정의 도움으로 폐가가 다 되어 있던 집을 여기저기 손보고 같이 하룻밤을 지낸 뒤(정은 주인공이 혼자서 자면 무서울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같이 자 주었다), 다음날 어머니의 산소를 손질하면서 다시 어머니와 화해에 이른다. 그리고는 다음 날 밤, ‘이런 밤엔 혼자 자기가 서로 외로운 법 아니우?’라고 저 세상에 있는 어머니에게 말을 걸면서 어머니의 방에 가서 잠을 잔다.

 꿈에서 나는 고향 장터에서 어린 남매를 끼고 앉아 좌판을 벌여놓고 생선을 파는 젊은 여자를 만나고는 그녀가 자신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 여자임을 발견하고 그 여자를 자신의 새로운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소설 <다시 월문리에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나에게 오라 (Come to me)> , 1996 제작

 

 1980년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군사정권에 고문 당한 후 투옥된 감옥에서 송기원은 가장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1981년 여름, 그에게 날아든 청천벽력의 소식은 경기도 화성 월문리에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자식이 ‘내란음모사건’이라는,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죄목으로 15년 징역형을 받았으니 그의 어머니는 날밤을 새우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결론은 이 땅의 어머니들이 그간 써온 눈물겨운 방법 가운데 하나”인 자진(自盡)이었다. 제아무리 살벌한 5공 정권이라도 어머니의 목숨으로 행여 자식을 살릴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철문을 나서지 못했다.

 간단한 줄거리인데, 어머니의 한스런 삶과 예사롭지 않은 죽음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작품의 중심은 주인공의 내면에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주인공이 어머니와 마치 ‘대결’이라도 하듯이 그려지는 것은 사실 그 이유가 적절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자살을 했다고는 하지만 병으로 인해 마지못해 그러했다는 점이 동네 어른에 의해 밝혀지므로 자살 뒤에 다른 의도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렵다.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과 대결하려 드는 것은 '왜'일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삶의 방향 모색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의 근원으로서의 어머니가 사라진 데 따른 방향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와의 화해 뒤에 주인공이 꾼 꿈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었던 가족적 유대로부터 벗어나, 장터의 여자, 자신이 잊고 버려두었던 여자, 세상 속의 뭇여자들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야겠다, 즉 어머니를 발견하겠다는 주인공의 지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작품 세계는 농촌에서 새로이 발견한 ‘현실’에로 모아지며 작중 화자 역시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로 설정되어 있다. 작중에서도 화자인 소설가는 서울에서의 자신을 병들게 하던 퇴폐적인 탐미주의를 청산하고 아직 순박함을 잃지 않고 있던 시골 사람들 속에서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새로이 인식함과 함께 자신의 삶과 문학의 방향성까지도 새로이 모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