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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염상섭 단편소설 『두 파산』

by 언덕에서 2016. 10. 18.

 

 

 

염상섭 단편소설 두 파산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의 단편소설로 1949년에 [신천지]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광복 직후 경제적ㆍ도덕적 가치의 혼란 속을 살아가는 두 여인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경제적 파산과 정신적 파산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파산을 제시하면서, 작가는 어느 것이 옳다든지 그르다는 판단을 유보한 채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객관적ㆍ중립적 입장을 고집하는 작가는 정례 모친의 심리와 함께 옥임의 심리도 상세하게 밝힘으로써 그들이 모두 현실을 살아가는 개성적 인물의 하나일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정례 모친이 동창생인 옥임에게 돈을 빌려 가게를 차리지만, 여의치 못해 빚을 갚지 못하자 옥임이 그 가게를 정례 모친으로부터 인수한다. 돈을 사이에 둔 두 인물간의 대립과 갈등이 사회상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문방구점을 경영하던 정례 모녀가 물질적으로 파산하는 과정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돈놀이를 하며 동업조건을 내세워 문방구점을 팔아먹는 김옥임의 정신적 파산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사회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소설가 염상섭(廉想涉, 1897~196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례 모친은 남편을 졸라서 집문서를 은행에 넣고 천신만고하여 삼십만 원을 얻어 가지고 부비 쓰고 당장 급한 것 가리고 한 나머지 이십이만 원을 들고 이 가게를 벌였다.

 김옥임이가 한 다리 걸치자고 덤비니 동사란 애초에 재미없는 일이거니와 당장에 아쉬우니 오만 원씩 두 번에 걸쳐서 십만 원 밑천을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동사지 이 할이 넘는 고리로 십만 원 빚을 쓴 거나 다름없었다.

 옥임은 교장을 대리로 내세워 정례 모친에게 돈을 내라고 들볶았다. 교장은 자기 돈 오만 원의 이자를 받아가면서 김옥임이가 자기한테 빌린 이십만 원을 정례 모친이 옥임이에게 갚을 이십만 원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 말이 교장이 받아 가는 거지 사실은 옥임이가 돈을 못 돌려받을 거 같아 교장을 통하여 받으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정례 모친이 황토현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사람들 틈에 섰으려니까, 그 길로 오던 옥임이가 옆에 와서 시비를 걸었다. 남편이 젊었다느니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정례 모친을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었다.

 스물 예닐곱까지 도쿄 바닥에서 신여성 운동이네 하고 멋대로 놀다가, 지금 영감의 후실로 들어앉아서 호강을 하여 본 옥임이가 고생하는 예전 동무를 쫓아다니며 울리는 고리대금업자로 변할 줄이야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또 교장이 찾아와 정례 모친에게 돈 얘길 꺼내자 정례 모친은 이십만 원 표에 이만 원 현금을 얹어서 옥임이 갖다 주라고 내 놓았다.

 그 후 두 달이 걸려서 교장 영감의 오만 원 빚은 갚았지만 석 달째 가서는 상점 주인이 바뀌고야 말았다. 교장을 딸 내외가 들어앉은 것이었다. 알고 보니 옥임이가 오만 원을 얹어 먹고 넘겨 준 것이었다.

 

 

 

 염상섭의 『두 파산』은 광복 이후에 발표된 것으로서 대표적인 사실주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뚜렷한 인물들의 삶의 방식이 나타나 있다. 양심을 지켜 나가려다가 물질적인 파산에 처하게 되는 인물인 정례 어머니, 이에 비해 정신적 파산을 겪는 인물인 김옥임 여사가 바로 그들이다.

 작가는 이 두 여인을 대비시켜 가며 광복 후 전환기의 사회상의 단면인 물질적 파산의 모습과 정신적 파산의 모습을 그려 놓고 있다. 특히 시대적 풍조 속에서 지나친 금전 추구가 우정과 의리마저 저버리게 한다는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 속에는 당대의 삶을 통찰한 작가의 의식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정례 어머니'로 대표되는 가장 건강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 경제적으로 몰락해 가는 과정과 '옥임이'로 대표되는 치부를 위해 날뛰는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두 여인 사이에서 교묘하게 이득을 누리고 있는 '교장' 같은 속물들의 모습 등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아무런 논평 없이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광복 직후의 우리 사회가 겪는 물질적, 정신적 가치관의 혼류(混流)를 잘 보여 주는 일종의 세태 소설(世態小說)이다. 염상섭은 노련한 필치로 옥임의 인간적 파산과 정례 모친의 경제적 파산을 대조해 가면서 담담하게 당대의 세태상을 묘사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를 고집하는 염상섭은 정례 모친의 심리와 함께 옥임의 심리도 상세하게 밝힘으로써 그들이 모두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다른 모습의 피해자임을 그리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목소리 높이 현실을 비판한 이념적 작품이 아니라 차분히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려냄으로써 객관적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