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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정소성 단편소설 『아테네 가는 배』

by 언덕에서 2016. 10. 11.

 

 

 

 

정소성 단편소설 아테네 가는 배

 

 

 

 

 

 

 

정소성(鄭昭盛.1944∼)의 단편소설로 남북 분단의 상태와 그리스 신화를 대비시킨 작품이다. 1985년 제1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민족분단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1985년 [문학사상] 3월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남북 분단과 그리스 신화를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펼쳤다.

 남북 분단의 역사적 현실을 소재로 현실 속에서 고통의 신화적 인식과 운명의식을 주제로 담고 있다. 30여 년 전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소설이었다. 1980년대 초, 2차세계대전 후 시작된 ‘냉전체제’의 긴장이 뚜렷할 때였다. 유학생들의 거동을 감시하는 국내 정보기관의 움직임도 종종 느껴졌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의 얼개로 이루어진 공간을 제시한다. 단일민족의 삶의 터전, 즉 문화의 공간을 떠받치는 얼개들이 여러 개 있다. 이런 여러 얼개들에 의해 소설은 구성된다. 그리스는 전설과 현실이 마주치는 시간적 인식의 공간이자 분단된 남북이 하나 되는 정치적 공간이다. 동시에 아내와 남편, 부부애의 공간이고 프랑스와 한반도의 지리적인 공간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브린디시에서 서양사 전공 역사학도인 종식은 오랜 외국 유학생활과 학업에 지쳐 처음으로 짬을 내어 그리스 여행에 나서려는 참이다. 그는 학업을 따라가기도 벅찬 가운데서도 틈만 나면 생계를 위한 노동에 시달리느라 전혀 여유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L시의 한국인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는 주하는 종식을 유난히 따른다. 주하는 프랑스 유학생으로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지니고 있으나 이를 드러내지 않고 심한 불구인데도 열등감이 없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불가리아계 그리스인으로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엘리자베스라는 애인이 있다. 아테네로 가는 배에서 종식은 주하에게 깊은 관심을 지닌 중국인 이굉석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듣는다. 오래 전에 학위를 마친 주하가 돈 때문에 귀향하려는 줄 알았던 종석은 그가 그밖에 무엇인가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굉석은 주하의 아버지가 이북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주하가 왜 동포학생들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지 않는지 딱해 한다.

 테살로니키에 도착한 종식은 주하를 위해서 퇴역외교관인 엘리자베스의 할아버지가 제3국을 통한 부자간의 상봉을 주선했으나 주하의 아버지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졸도했다가 깨어난 주하는 품에서 그 옛날 부모가 함께 살던 고향을 수놓은 자수와 어머니의 백발 머리채를 꺼내어 유창한 프랑스어로 아버지가 운명하기 전에 전달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에게해의 밤, 부두에서 먼 기적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지팡이에 몸을 실은 주하가 전설과 신화의 숲으로 뒤덮인 낯선 땅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여느 소설들과는 다른, 이색적인 색조를 띤 작품으로, 남북 분단의 상태와 그리스 신화를 대비시키면서, 우리의 분단의 역사적 현실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결국 두 가지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종식’의 여행과 관련되는 것으로, 신화의 세계 속에서 발견된 현실의 의미이다. 트로이의 전설 중 하나인 시모이 강의 이야기를 통해 암시되는 분단의 고통이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는 장면을 ‘종식’은 가슴 깊이 새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하’의 여로(旅路)가 갖는 의미이다. 이것은 현실 속에서 반복되는 운명적인 신화의 반복을 뜻한다. ‘주하’는 아버지와의 상봉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며, 고통의 현실이 신화의 그것으로 뒤바뀌는 괴로움을 맛보고 있다.

 

 

 

 한민족의 문화공간인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정치적 공간 뿐만 아니라 문화공간도 둘로 갈라진 것이다. 민족도 갈라졌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문화의 공간이다. 소설 ‘아테네 가는 배’는 그 공간을 신화적 성찰로 들여다보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의 결말은 신화 속에서 고통의 현실을 발견하고, 현실 속에서 고통의 신화의 반복을 발견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신화의 세계를 통과하면서 그 신화 속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바로 현실의 이야기로 바꿔 놓는다. 또, 이와 반대로 현실의 고통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신화 속의 고통에 이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신화 속으로 가는 배이며, 동시에 현실 속으로 가는 배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 또한 신화와 현실에 함께 통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