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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 데뷔작 『환상의 빛』

by 언덕에서 2016. 7. 28.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 데뷔작 환상의 빛

 

 

 

 

 

 

 

TV 다큐먼터리 연출자로 일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1995년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장편 극영화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갑작스러운 자살로 남편을 잃은 젊은 미망인의 해소되지 않는 상실감을 담았다.  이 영화는 금년 7월 한국에 동일 개봉된 다양성 영화 중 예매율 1위를 차지했으며, 7월 개봉 다양성 영화 최고의 좌석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서간체 소설 『환상의 빛』을 토대로 했지만, 이 영화엔 또 다른 모티브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일본 보건복지부 고위 관리의 자살을 파헤친 다큐를 찍던 시절, 홀로 남겨진 미망인에게서 엿본 깊은 상실감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비극이 할퀴고 간 뒤 남은 자의 삶을 표현한 것인데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이 주제는 아마도 이 무렵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같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 영화 『환상의 빛』을 주목받게 한 가장 큰 특징이다. “삶을 자연스레 담지 못했다”는 자성은 훗날 고레에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화에 포착하기 위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한다. 실화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써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갑자기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생각났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여자는 어릴 때 할머니가 실종된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닌가 하고 가끔씩 생각한다. 그러다 어른이 된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영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인공 유미코의 질문이다. 어릴 적부터 사랑했던,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남편 이쿠오가 갑작스럽게 전차에 치여 사망한다. 자살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 누구보다 행복했던 일상이었고, 남편에겐 뚜렷한 슬픔이나 좌절의 흔적이 없었다. 가장 가까웠던 이가 자살했지만 아내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게 답이 없는 질문에 시달리던 유미코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어촌 마을에 살고 있는 타미오와 재혼한다.

 유미코는 새 남편의 가족과 큰 갈등 없이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아가고, 계절은 무심하게 지나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유미코에게 “비 그친 선로 위를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마음 한구석에 떠오른다.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남편 타미오에게 울먹이며 고백한다.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어, 그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견딜 수가 없어.”

 현재 남편은 타미오의 담담하게 대답한다.

“나도 몰라. 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닐까.”

 타미오의 위로로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은 깊은 상처를 다스린 유미코의 2층 방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유미코 내면의 어둠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삶도 존재한다는 것, 누구에게든 어느 날 갑자기 빛에 이끌려 ‘생의 저편’으로 갈 수 있지만, 반대로 그 빛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시켜주고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빛이다.

 시종일관 검은 옷만 입던 유미코는 마지막 장면에서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옆의 누군가가 말한다.

“좋은 계절이 왔어.”

 이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관을 나올 때의 첫느낌은 영화가 어둡고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영화 속의 장면들이 계속 떠오른다. 관객은 영화와 상관 없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서야 슬퍼진다. 감독은 작정한 듯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저 쓸쓸한 바닷가 마을의 풍경과 유미코의 단조로운 일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 『환상의 빛』이 ‘역대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으로 회자되는 데는 시(詩)적인 영상미도 한몫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사 대신 구름 낀 잿빛 하늘과 바다, 서서히 변하는 계절을 롱테이크·롱쇼트로 담아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묘사했다. 인공조명을 배제하고 철저히 자연광만을 고집한 것도 특징이다. 상처에 새 살이 돋듯 망자의 빈자리에 또 다른 삶이 차오르는 순간을 그려내는 것도 햇살 가득한 봄 바다의 풍광이다.

 

 

 

 이쿠오가 자살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재혼한 남편 타미오는 힘들어하는 유미코에게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어떤 ‘환상의 빛’이 기차선로 위의 이쿠오를 끌어당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해석이다. 그의 대답은 정답이 아닌 '그저 위로해주기 위한' 멘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미코를 치유하는 가장 근접한 위로로 보인다. 원래 이 대사는 원작소설에는 없는데 죽음과 삶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고 생각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각색하여 넣은 대사로 알려져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의 노력과 무관한 비극이 있다.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인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없는 무기력에 휩싸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믿음도, 그래서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느끼는 것도, 어쩌면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환상의 빛’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저 체념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지만 서로의 고통을 보듬으며 함께 좋은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영화는 위로를 건넨다.

 

 

 

 

 

 

 

☞고레이다 히로카즈 - 1962년 도쿄 도 네리마 구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사쓰마 번 출신이다. 도쿄 도립 무사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순다이 예비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가르친 "이이타이코토"로 알려진 후지타 슈이치에 영향을 받아 1987년 와세다 대학교 제1 문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프로그램 제작 회사의 텔레비전 맨 유니온에 입사 해 TV 프로그램의 AD를 하면서 다큐멘터리 연출가를 맡았다.1995년에 《환상의 빛 》으로 영화 감독 데뷔했다. 신작을 발표 할 때마다 많은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일본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영화, 텔레비전 작품과 프로듀서 외에도, 뮤직 비디오 의 연출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영화 《아무도 모른다》,《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로 특히 이 작품은 제57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제66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부터 리츠메이칸 대학교에서 산업 사회학부 객원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2013년 2월 현재 BPO의 방송 윤리 검증위원회의 위원을 맡고 있다.

 

☞미야모토 테루 (宮本輝) - 1947년 고베에서 태어났다. 오테몬가쿠인대 문학부를 졸업했다. 광고회사에 취직했으나 1975년 신경불안증세로 퇴직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77년 '흙탕물 강'으로 다자이 오사무상을, 1978년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1987년에는 '준마'로 요시카와 에이지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했다. 2006년 현재 아쿠타가와상의 심사위원이다. 지은 책으로 <환상의 빛>, <준마>, <해안열차>, <사랑은 혜성처럼>, <아침의 환희>, <인간의 행복>, <반딧불 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