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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대담하고 정교한 연출 <아가씨>

by 언덕에서 2016. 7. 13.

 

 

 

대담하고 정교한 연출 <아가씨>

 

 

 


어쩌면 역사책에 기록될 영화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영화는 너무나 야하구나!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영화였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도대체 감독은 뭘 이야기하는 거지?” 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글쎄, 굳이 말한다면 자유로운 삶? 동성애도 그렇다는 말이겠죠.”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 영화는 Sarah Waters의 소설 『Fingersmith』원작을 각색해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4명의 주요인물이 서로 속고 속이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전개한다. 영화는 속임수, 배반, 위험한 사랑 등 익숙한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극의 전개는 익숙하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시선을 나란히 배치한다. 이야기 구조는 3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하녀 숙희의 시점으로, 2부는 아가씨 히데코의 시점으로, 그리고 마지막 3부는 모든 이야기를 어우르는 종결 장으로 영화는 충실하게 삼단구조를 따른다.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각 인물의 시점에 따라 사건은 각 캐릭터에게 의해 달리 해석된다.

 같은 사건을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은 달라진다. 마치 한 그림 속에 마녀도 아가씨도 공존하는 착시 이미지 같다. 이처럼 영화 속 특정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두 가지 시선은 사건을 전개하는 중요한 힘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이는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를 향해 쌓아가는 감정을 고백하듯이 사용된다. 네 명의 인물 모두 거짓을 품고 서로에게 접근했기 때문일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간적 배경은 1930년대의 조선이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인 일본인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가 주인공이다. 사기꾼인 가짜 백작(하정우 분)은 소매치기 숙희(김태리 분)를 하녀로 위장해 히데코에게 접근한다. 히데코는 이모부인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보호 하에 있다. 그는 일본에 공을 세운 조선인으로 히데코의 이모이자 몰락한 일본 귀족(문소리 분)과의 결혼을 통해 코우즈키라는 성을 얻었다.

 사기꾼 백작은 돈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의 겉모습은 배려, 매너, 여유, 웃음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와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그에게 마음을 내준다.

 백작은 히데코와 결혼한 후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둬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숙희는 백작의 계획이 성공할 경우, 히데코의 재산을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조건으로 하녀가 되어 범행에 투입된다.

 그러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숙희가 히데코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위장한 하녀 숙희는 히데코 아가씨를 "제 아기씨"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옷을 입고 벗기고, 목욕을 시켜주고, 뾰족한 이를 갈아주며,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게 잘못인 아이는 없어요!"라고 외로운 그녀를 위로한다. 속이기 위한 접근이었지만 어느새 진심으로 그녀를 위하게 된다. 히데코는 그런 숙희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히데코 역시 숙희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후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급물살을 탄다.

 애초 백작과 숙희 사이의 공모와는 달리 히데코와 숙희는 백작을 코우즈키에게 넘기고 재산을 정리한 채 러시아로 탈출한다. 

 백작은 이모부 코우즈키로부터 저택 지하 감옥에서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고문을 겪는다. 백작은 이모부에게 그 첫날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피던 담배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이모부는 본인의 취향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직접 백작에게 파란색 담배를 입에 물려주며 불을 붙여준다. 이것은 담배가 아니고 독성물질(수은)을 말려서 놓았는데 기화되었을 때 독성이 제일 강해진다고 말 하고 이를 듣던 이모부가 쓰러진다. 그러자 백작은 "그래도 자지는 지키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읊조리고 의식이 끊긴다.

 이후 히데코와 숙희, 두 사람의 동성애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위와 같은 간략한 줄거리만으로는 영화 '아가씨'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 히데코와 숙희는 사랑에 빠진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억압하고 많은 남성들 앞에서 야한 소설을 낭독하는 성 노리개로 삼았던 이모부, 자신과 결혼해 재산을 가로채려는 가짜 백작 사이에서 히데코 아가씨는 숙희를 만나 자신을 발견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한다.

 그런 점에서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신에 대해 눈을 뜨는 영화라고 정의해야겠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에 '동성애 코드'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두 여성의 정사 장면이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등 수위도 높다. 유명 여배우의 전라 장면이 오랜 기간 이어져서 당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동성애에 비판적인 한국 기독교 교계는 이상하리만큼 반응이 없다. 여자와 여자의 동성애, 그러니까 레즈비언 스토리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주 보던 음란 비디오 속의 한 장면이어서 그런 것일까? 만일 남성과 남성의 동성애 코드였으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시대 배경을 살린 아름다운 의상과 세트를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배치해 관객을 압도한다는 점도 이 영화의 장점으로 지적해야 할 듯하다. 외롭고 예민한 아가씨와 그런 아가씨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숙희의 동성애 베드신 묘사는 지극히 적나라해서 소화하기 거북했다. 동화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이되 남성 대신 여성이 서로를 구원하는 것으로 치환한 점, 일제강점기 조선에 근대가 이식되던 시대상을 담아낸 점 등은 영화를 풍부하게 해석하게 한다. 그리고 박 감독의 전매특허인 피가 난무하는 폭력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점 역시 특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