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시집 감상

차옥혜 시집 『숲 거울』

by 언덕에서 2016. 7. 15.

 

 

 

 

차옥혜 시집 『숲 거울』

 

 

 

 



차옥혜1 시집 『숲 거울』은 숲을 거울로 삼은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생명과 사랑, 평화를 노래한 맑고 아름다운 시편들이 실려 있다. 『숲 거울』을 통해 시인은 숲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숲과 인간의 공동체적인 운명을 자각시키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시인은 숲이 어머니와 스승과 친구 등과 같고, 이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주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숲과 인간이 공동체라는 운명을 자각시킨다. 또한 숲과 인간이 지닌 생명력, 사랑, 평화, 우주적 질서 등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시인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숲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숲을 거울로 삼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갠지즈강의 신새벽


아파라

꽃접시 타고 가는 촛불들


눈물겨워라

기도하는 손들


아름다워라

강물로 죄를 씻는 몸들


덧없어라

타는 시체들

강물 타고 가는 넋들


서글퍼라

꽃을 띄우며 떠도는 나룻배

 


 

 

 

 

 


 


개도 득도하고 싶다


석가가 득도한

보리수나무 주변

오체투지로 부처를 만나려는

수도자들 틈에

개 한 마리도

온몸으로 뒹굴며 수도한다

개도 부처의 손을 잡고

해탈하고 싶은가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호랑이가 되고 싶은가

나비가 되고 싶은가

풀꽃이 되고 싶은가

순례자들 틈을 누비던 순례개가

온몸과 마음으로 부처를 부른다


보리수 나뭇잎이 흔들린다

개가 일어선다

 


 

 

 

 

 

 


 

자유로 가는 길은 왜 그리 먼가

 -마틴 루서 킹

 

2015년 7월 11일 토요일 한낮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국립 역사 지구엔

아직도 자유가 목마른 순례자들로 붐빈다.


마틴 루서 킹이

흑인들의 인권운동을 위해

1963년 워싱톤 대행진을 이끌며

그때부터 !00년 전 노예해방 선언문에 서명한

링컨 대통령의 동상 앞에서 절규하던 자유!

그때부터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왜 그들의 가슴에 총을 쏠까?

그들은 왜 그들의 목을 조를까?

그들은 왜 그들의 자유를 짓밟을까?


증오가 왜 사랑을 거침없이 불사를까

누가 남의 자유를 빼앗아

자신의 자유만을 넓힐까


마틴 루서 킹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자유의 성지에 울려 퍼지는 생전의 그의 웅변은

여전히 지금도 세계인들의 가슴에서

불이 된다. 꽃이 된다. 새가 된다.

그의 무덤 건너편 활활 타오르는 자유의 성화는

미국 전역에서, 세계 도처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다


한 인종이 한 인종의

한 종교가 한 종교의

한 나라가 한 나라의

한 집단이 한 집단의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자유를 짓밟는 한

마틴 루서 킹은 자유를 위한 행진을 멈출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차별을 받지 않을 때까지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자연이 자유로울 때까지

마틴 루서 킹은 잠들 수 없다.


자유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멀어도

마침내 온전한 자유의 세상에 이를 때까지

자유가 그리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마틴 루서 킹은 끊임없이 걷고 또 걸을 것이다.

 


 

 

 

 

 

 

 


 



겨울이 있는 문명국 어머니들께


나는 지구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태평양 적도 산호섬 키리바시에 사는

다섯아이의 엄마입니다


내 자식들을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해수면이 높아져 우리 섬나라가 잠겨가요

없던 허리케인이 찾아와 집들을 쓸어가요

담수가 오염되고 농작물이 죽어가요

나무, 꽃, 새, 물고기처럼 살며

행복했던 우리 자식들이

목숨 붙일 땅이 사라져가요


이 모두가 당신네 가족과 이웃이

편리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숲을 없애며 쓰레기를 태우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며

문명과 문화를 즐기면서

만들어낸 이산화탄소가

북극의 빙하를 녹여 생긴

기후변화 때문이라 합니다


제발 당신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를 희생시키지 마세요


내 자식들을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쿼바디스 도미네


세상은 거대한 눈꽃입니다

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푸른 보리밭과 생수가 솟구치는 울창한 삼나무숲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들 때문에 또다시 빵조각을 훔쳐

교도소에 재수감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빵을 찾아 죽음일지도 모르는

눈 산을 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폭설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쳤지만

얼어 죽었습니다

가엾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눈꽃 속을 헤매다

죽어야 합니까

천년입니까 만년입니까

봄은 정녕 꿈꿀 수 없는 것입니까

햇살이 새싹의 볼을 어루만지는 벌판을

배고픈 이들을 위한 무료 빵가게를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

생명이고 사랑이고 평화고 희망이고 영원인 당신이시여

세상을 덮어버린 눈꽃에 길을 내시며 오소서

눈꽃을 헤쳐 언 손들을 잡아끌어 언 몸을 품어주소서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1. 차옥혜1945년 전주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부터 시골에서 나무와 화초와 밭작물을 소규모로 기르고 있다. 시집으로 『깊고 먼 그 이름』 『비로 오는 그 사람』 『발 아래 있는 하늘』 『흙바람 속으로』 『아름다운 독』 『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 『허공에서 싹 트다』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등과 서사시로 『바람 바람꽃―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를 상재했다. 시선집으로 『연기 오르는 마을에서』 『햇빛의 몸을 보았다』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이 있다. 논문으로 「고은 시의 변모 양상에 관한 연구―60~80년대를 중심으로」가 있다. 경희문학상과 경기펜문학대상을 받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