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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김용호 서사시집 『남해찬가』

by 언덕에서 2016. 4. 28.

 

 

 

 

김용호 서사시집 『남해찬가』

 

 

 

 

 

특정 인물 한 사람을 위한 내용으로 일관된 시집이 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실제 그런 시집이 있다. 그 시집명은 『남해찬가』이고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이다. 진보논객 박노자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상은 군인출신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미화를 위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이 시집은 그와 관계없이 6.25 전쟁 중인 1952년에 간행되었으며, 국문학사에 몇 되지 않는 서사시집으로 손꼽히고 있다.

 

 

 

 

『남해찬가』는 김용호(金容浩 : 1912 ~ 1973)가 지은 서사시1집으로 1952년 남광문화사(南光文化社)에서 간행되었으며, 1957년 인간사(人間社)에서 재판되었다. 창작 동기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육주갑(六周甲 : 306년)이 되는 임진년(1952)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조국의 현실과 그러한 가운데서도 파쟁에만 여념이 없는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쓴다고 하였다. 따라서 작가의 현실의식이 가장 첨예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작가가 이 시집을 당시의 국회의원 전원에게 무상으로 배부하였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집의 구성은 언론인 설의식(薛義植)의 서문과 본문작가 자신의 후기로 이루어져 있고제자(題字)는 당시 국회부의장 신익희(申翼熙)가 썼다본문은 서시를 비롯하여 제1장 혼란의 구름을 뚫고에서 제17장 우리들 가슴에까지 모두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각 장은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전장을 통하여 한편의 서사시를 이루고 있다총 1,942행으로 분량으로 보아 김동환의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의 두 배가 넘는다.

 『남해찬가』는 성웅 이순신의 생애와 업적을 서사한 시다. 이순신은 독자라면 누구나 의심할 여지없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시인은 이러한 집단 무의식적으로 뇌리에 박힌 영웅적 주인공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연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 인품과 덕성, 원균 등과 같은 적대자와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서 고난과 충정을 부각하는 데 서술의 초점을 맞췄다. 이것은 결국 이 작품이 본래 의도하는 바와 같이 인물의 생애나 업적을 찬양하는 것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당대의 민족적 수난을 극복하기 위한 전언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은 한국전쟁의 민족적 비극 속에서 임진왜란의 구국 영웅 이순신을 통해 국난 극복의 의지를 노래하는데, 따라서 『남해찬가』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보다 현재의 상황에 중심을 두고 있다. 영웅 인물의 삶이 지니고 있는 위대성이나 의미를 현재화해서 당대의 문제를 돌파하려는 시인의 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하늘이 빛을 잃었도다

 

산천, 아름답고 어진 백성들 의좋아

그날 그날이 즐거웁고 복되었거늘

차츰 서녘산에 해 기울어

이제 하늘이 빛을 잃었도다

 

비룡어천(龍飛御天)의 자랑은 시들고 줄어

나랄 사랑하기보담 내 한몸이 귀엽고

나랄 위하기보담 내 당파를 앞세워

 

호탕한 권세와

살잡는 집권을 에싸고

날로 익고 달로 터지는

집안 싸움

 

보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달아 일어 나는 피비린 사화(士禍)

 

옳음보다도 악이 돋보이고

참보다도 거짓이 힘을 얻고

자리다툼에 밤낮을 주려

나라잊고 백성들 저바리고

구중궁궐에 벌어진 뉘우침없는 이 싸움

 

때는 바야흐로 16세기의 중엽

 

어둠짙던 중세기의 장막은

한꺼풀 두꺼풀 벗어져 가고

세계는

새론 아침 햇빛에 찬연히 밝아

 

예저기

나라 나라는 바다로 뭍으로 뻗어가고

독립의 횃불을 들고 억매인 사슬을 끊고

역사를 創造하여 눈부신 때

이웃나라 왜

포츄칼의 조총과 포술(砲術)을 배워

안으로 짜고 흩어진 힘 한둥치에 모아

날로, 나라ㅣ盤石에 올려 튼튼해 가는데

 

유독

어찌된 일이냐

이 나라, 이 백성만이 -

 

새론 빛

이미 세계에 비쳤건만

빛, 못보는 장님인양 그냥 어두워

척리(戚里)의 전횡이 가로 세로 짜여지고

끊임없는 무옥(誣獄)이 창살을 피물드려

두렵고 무서움만이 잡초마냥 욱어져

나랏 기둥 좀씰고 뚫려

주춧돌마저 비바람에 녹아 내리는

칠칠(漆漆), 어둔 밤, 어둔 이 땅

 

정녕,

이대로 썩어지는 것일가

이대로 썩다 넘어지는 것일가

 

아!

하늘이 무심치 않어

실로, 아직도 아껴 저바리지 않어

 

이 땅, 이 나라, 이 백성에

기리 民族의 이름으로 영원한

빛을 주셨으니

때는 인종원년(仁宗元年) 3월 8일

 

혼란의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 오른 빛

천추만대에 꺼짐없는 그 빛

오오 이순신

 

크넓은 그 빛!

드높은 그 빛!

한깊은 그 빛!

 

그 빛!

 

어디까지 비쳐 가려는가

혼란의 이 구름을 뚫고

 

 


 

 

 

 

 

명량대첩

 

1597년 9월 17일 아침

 

수많은 적선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별망군(別望軍)의 급박한 보고가 들어왔다.

 

이날 명량해협의 해류는

오전 7시경에 정조(停潮)되어 잠시 멈추었다가

북서류(北西流)로 흐르기 시작했으니, 이 때

적의 함대들이 어란진에서 명량해협으로 항진하여

본대를 명량해협 밖에서 대기시켜 놓고

세키부네로 편성된 133척이 좁은 물길을 막 통과하여

우수영 앞바다에 전투 대형을 이루고 있는

13척 조선 수군을 에워싸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13척을 가지고 어찌 대적하겠는가?

겁에 질린 조선 수군은 도주하려는 듯

백여 미터 후방에 머물며 진군하지 않았다.

적에게 서해 물길을 내어줄 수는 없다!

이순신은 선봉으로 나아가서 포위당한 채

고군분투 싸움을 계속하며 홀로 버티고 있었다.

 

중군영하기(中軍令下旗)와 초요기(椒搖旗)를 세우고

중군장 김응함(金應諴)과 거제 현령 안위(安衛)에게

엄한 경고와 독전을 명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하여

앞장 선 안위의 전함을 집중 공격하는 적의 선봉을

조선 수군 모두가 결사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왜군의 선봉 전함 3척이 불길에 휩싸이며

바다에 빠진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를 끌어올려

포연이 자욱한 전함 장대 끝 높이 매달았다.

 

조선 수군들의 하늘을 휘덮는 함성이 울리며

해류가 고조(高潮)를 이루어 잠시 멈추더니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물살 소리가 격양되면서

후퇴하는 적의 선두가 밀려오는 후속 함대에

서로가 뒤엉키며 처절한 비명과 죽음이 난무했다.

조선 수군은 공룡의 급소에 침을 놓듯 포격,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도망치는 적선을 뒤쫓아 불화살이 날아갔다

13척이 133척 대군을 물리치는 대 접전(接戰)으로

울돌목의 산과 바다가 목쉰 울음을 토하며

뜨겁게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백성들도 울면서

발을 구르며 만세 또 만세를 불렀다.

31척의 전함을 잃고 울돌목을 피로 물들인 적들이

물러나기 시작할 때, 오후 2시 경이었다.

역풍이 불고 파도가 높아서 추격을 포기하고

(크게 이기고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북소리도 크게 울리지 못하고

이 날 밤늦게 당사도(唐笥島)로 이동했다.

 

이순신은 이 날 일기 마지막에

“이것은 실로 천행이다.(此實天幸)”이라고 썼다.

 

적의 서진북상(西秦北上)의 전략을

남해를 거쳐 서해로 진출하여

한양으로 평양으로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여

조선을 초토화하려는 전략을 결정적으로 좌절시킨

기적적인 대 승리였다.

 

조정의 질시와 박해와 역경의 파도를 넘어

왜적들의 거대한 대 함대가 몰려온 폭풍을 잠재우고

이순신의 초인적인 실존(實存)으로

뼈에 사무치는 충절을 집중하여

끝내 이루어낸 승전이었다.

 

 

 


 

 

 

 

 

통곡(痛哭)

 

이순신은

큰일을 앞두고 자주 꿈을 꾸었고,

그 꿈은 늘 영험하였다.

 

1597년 10월 14일

“새벽 2시경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헛디뎌 냇물에 떨어지긴 했으나

쓰러지지 않았는데, 막내아들 면(葂)이 엎드려

나를 감싸 안는 것 같은 형상을 보고 깨었다.”

 

“저녁 때, 천안에서 당도한 인편(人便)의 편지에

미처 봉함을 뜯기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둘째 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痛哭)’ 두 글자가 쓰여 있어

면(葂)의 전사(戰死)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그 빛이 변했구나.

 

슬프고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이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앙화(殃禍)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목숨을 부지한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함께 죽어 지하에서 같이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 없으니,

아직은 참고 연명해야 한다마는

내 마음은 이미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뿐이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하고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끌어 낸 바다의 영웅

연합함대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이순신 장군이었다.

 

러일전쟁 승전 축하연에서 한 기자가

“이번의 대승은 역사에 남을 만합니다.

나폴레옹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패배시킨

넬슨 제독에 비견할 만한 군신(軍神)이십니다.”라고

치하했지만,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칭찬은 고맙지만 사실 넬슨은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정말로 군신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이순신 정도이겠지요.

이순신에 비하면 나는 부사관 만큼도 못한 존재입니다.”

 라고

자신을 낮추며 이순신을 존경했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도고(東鄕) 제독은

러일전쟁에 나가기 전에

남해 거제도 북단 취도 해역에서

선상(船上) 진혼제(鎭魂祭)를 올려

이순신 장군에게 러시아 발틱 함대를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원했다.


 

 

 


 

 

 

김용호(金容浩.1912.5.26∼1973.5.14) : 시인. 호 학산(鶴山)ㆍ야돈(耶豚)ㆍ추강(秋江). 경남 마산 생.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 졸업. 1935년 [신인문학]에 시 <내 사랑하는 여인아><첫 여름밤 귀 기울이다>를 발표하면서 등단. 1938년 [맥(貘)]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詩作活動)을 했다. 학생 시절에 시집 <향연>을 냈고, 이후 여러 시집을 내는 한편,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예술신문] 주간, 출판사 [남광문화사(南光文化社)] 주간, 문예지 [자유문학] 주간으로 활동했다.

 6ㆍ25 때 부산서 대학 강사, 1958년 단국대 교수, 동 대학 문리대학장 역임(1966∼1973 사망시까지). 4ㆍ19 기념시집 <항쟁의 광장> 편찬 등 문단에 공로가 많다. 심장병으로 사망. 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1956년).

 

 

 

 

 

 

 

 

  1. 서사시(敍事詩)는 자연이나 사물의 창조, 신의 업적, 영웅의 전기 등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 시이다. 서사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재한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넓게는 문자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전해져 온 것도 서사시에 포함하나 일반적인 서사시는 운문의 형식으로 쓰인 것을 말한다. 서사시는 서정시 · 극시와 함께 시의 3대 형식의 하나로서, 객관적 문학의 총칭에도 사용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