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 단편소설 『차력사』
김영현(金永顯.1955 ~ )의 단편소설로 2003년에 발표된 소설집 「포도나무집 풍경」에 게재되었다.
이 소설 발표 당시의 김영현은 민중 열전으로서의 소설을 쓰는 자신의 문학세계를 고수했다. 민중 열전은 과거의 민족 민중 서사와는 달리 개별화된 민중적 인물의 인간적 본성을 환기하거나 공적 역사와 개별적 민중의 관계를 주목하는 소설 쓰기의 양식이다. 1990년대 당시의 신세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역사를 추방하고 그 자리에 인간의 욕망을 대체하려고 한 반면, 김영현은 민중 열전을 기록하는 작가를 자처하면서 어떻게든 민중적 존재를 부각하거나 인간의 삶과 역사를 연결시키려는 작업을 추구해 나갔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영현이 민중 열전에서의 민중은 인간적 야성과 본성을 환기하는 날 것 그대로의 민중이거나 역사를 파행적으로 경험하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민중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 속의 ‘차력사’의 정체 확인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공들이는 것은 차력사의 정체확인이 아니라 차력사의 야성적 속성을 환기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회사원 '나'는 엉겁결에 친구의 친구를 위로하는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가 ‘청계천의 무슨 빌딩 오층에 있는 나이트클럽’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나’는 괜히 따라왔다는 후회를 하며 귀가하려 했다. 내일 아침 일찍 지방 출장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곳의 무대에서는 반라(半裸)의 무희들이 끈적거리는 섹시한 춤을 추며 술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다가 박동팔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한 나이든 차력사의 차력 시범까지 구경하게 되었다. 차력사의 시범은 ‘나’에게 “우리들이 사소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원초적이고 존재론적인 생명력 같은 것을” 깨닫게 했고 ‘나’로 하여금 “세상의 추잡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폭풍우 속에서 혼자 서 있는 사람과도 같은 야성”을 느끼게 했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박동팔이 어린 시절 만나서 자신의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박팔갑산’임이 분명함을 확신하며 그에 대한 회상을 한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 교내에서 차력시범을 보였던 박팔갑산은 유리병을 수도(手刀)로 쳐 날리고, 끓는 납을 입 속에 부어 뱉어 내기도 했으며, 백열등 전구 알을 깨뜨리게 하여 버석버석 입으로 씹어 먹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장기는 해머로 그의 가슴에 날카로운 정을 박는 일을 견뎌내는 괴력이었다. 그의 가슴 근육은 초인의 그것과도 같아서 유도 선수인 체육선생이 전력을 다하여 해머로 쳐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어 내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당시 박팔갑산이 소싸움 대회의 결승전에 앞서 사나운 불뚝 소 한 마리와 맨손 대결을 하여 사투 끝에 맨손으로 소를 죽인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주인공 ‘나’는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공연을 마치고 퇴장하는 박동팔을 따라서 ‘박팔갑산’이 아니냐고 묻지만 차력사는 화가 난 사람의 얼굴 같기도 했고, 극도의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난 박팔갑산이 누군지도 몰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일행을 남겨두고 술집을 나온 ‘나’는 어떤 까닭 없는 분노와 비애 때문에 가슴속이 터질 듯이 메어져 옴을 느낀다.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길들어 버린 우리들의 초라함과 왜소함에 대한 무서운 배신감 같은 것인지 몰랐다. 주인공의 귀에는 아련하게 멀리, 어스름 깔리는 쇠전 한가운데 서서 야성의 동물처럼 소리치던 사나이의 고함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이었다.
원초적이고 존재론적인 생명력이나 야성을 느끼게 하는 차력사와 그 차력사를 구경하는 주인공의 이미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주인공은 술과 춤과 벌거벗은 여자들의 몸뚱이에 넋을 잃은 속물 이미지를 띠는 소시민이라면 차력사는 야성 이미지를 띠는 기인이다. 작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간, 말하자면 삶의 층위가 전혀 다른 인간의 대조적 설정을 통해‘나’와 같은 소시민 속물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루한가를 강렬하게 확인한다.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끝난다.
♣
나이트클럽 홀 안을 압도하는 고함을 지르며 기합과 함께 차력 시범을 보이는 차력사에게서 우리는 정치적으로 각성된 민중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기운과 존재론적인 생명력이 충일한 민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차력사의 모습이 남기는 여운은 강렬하다. 독자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될 여운을 차력사는 남겨 놓고 있다. 삶의 생기와 활력을 잃은 사람일수록 이 여운을 좀처럼 털어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작가가 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한 자리는 어쩌면 조악한 무대 위에서 쓸쓸한 포즈로 차력 시범을 시연하며 인간의 야성과 생명력을 환기시키는 차력사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무섭게 길들어 버린 우리들의 초라하고 왜소한 위상을 아주 강하게 되비쳐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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