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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소진 단편소설 『쥐잡기』

by 언덕에서 2016. 7. 12.

 

 

김소진 단편소설 『쥐잡기』

 

김소진(金昭晋, 1963~1997) 1의 단편소설로 작가의 문단 데뷔작이면서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김소진 사후 출판된 <김소진 단편선>과 [문학동네] 문학전집 김소진편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게재되어 있다. 이 작품 『쥐잡기』는 도시 주변 변두리의 서민 밀집 지역에서 쥐 잡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 번의 해프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쥐'는 '민홍'과 '아버지'의 삶에 개입하여 그것을 흔들어 놓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버지의 '쥐'에 대한 내력과 개인사가 전쟁과 분단의 아픔과 상처와 결합되면서, 분단 후 계속되고 있는 아버지의 내면적 고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이러한 고통 때문에 무능력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은, 시위 사건으로 화상을 입고 소설책이나 뒤적이거나 억척스러운 어머니에게 핍박을 받는 민홍의 일상사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민홍은 민주화 투쟁을 경험했으며 90년대를 살고 있다. 한 장의 사진과 쥐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경험했던 6.25 전쟁에 얽힌 이야기를 회상하고 다시 경험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남쪽을 선택했던 아버지의 회상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한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 속의 '아버지'는 이데올로기란 선택을 가장한 정치적 억압에 불과하며 이데올로기에 유린당한 상태에서의 선택이란 언어도단일 뿐임을 보여 주고 있다. '흰쥐'가 헛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자조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잔인하게 민중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가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민홍은 전쟁포로 출신의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를 두었다. 그들 가족은 도시 변두리의 한 지역에서 구멍가게를 꾸리며 살아간다. 그들 가족을 둘러싼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적이고 도회적인 삶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온갖 인간 군상이 밀집한 동네가 그들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가게에 골칫거리가 하나 생겼는데, 들여놓은 물건을 먹어치우는 쥐가 그것이다. 아버지는 유달리 쥐를 잡는데 집착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동원한 방법은 번번이 실패하고 그로 인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는다. 어느 날 아버지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 민홍과 함께 양념장을 두른 메밀묵을 먹다가 갑자기 자신의 과거에 대해 털어놓는다. 마음 한 편에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민홍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

 민홍은 대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했다가 화상을 당한 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어머니에게 이러한 민홍의 모습은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두 사람은 구박에 시달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게에 다시 쥐가 나타난다. 문득 민홍은 쥐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그 역시 쥐잡기에 실패하는데, 이때 문득 무엇인가 자신을 옭아매던 어떤 것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가, 신문기자 김소진(1963 ~ 1997)

 

 이 작품은 ‘아버지께 부치는 제문(祭文)’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작품이다. 반공 포로 출신으로 남한을 선택했지만 일생동안 가난을 짊어졌던 아버지에 대해 작가는 “철없는 한때 아버지의 무능력이라는 게 일종의 재앙으로 까지 여겨졌다”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쥐잡기>를 비롯한 김소진 소설의 밑바탕에는 문학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작가의 애틋한 심정이 깔려 있다.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연민은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처럼 역사의 폭풍에 휩쓸려 주변부로 밀려난 민중의 고단한 현실을 형상화하는 차원으로 승화됐다.

 제목이기도 하면서 줄거리 전개에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는 '쥐 잡기'는 다수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외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는 아버지가 가게의 물건들을 엉망으로 만드는 쥐를 잡기 위한 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고양이를 이용하기도 하고, 쥐약을 놓아보기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면밀한 관찰 끝에 쥐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아무리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다 해도 그동안 쥐로 인해서 입은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이런 겉으로 드러난 쥐 잡기 양상도 있지만, 소설 속에 숨겨져 있는 '쥐 잡기'도 있다. 그것은 주인공인 '민홍'이 시위를 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쥐 잡기'에 등장하는 쥐는 세 마리이다. 현재의 민홍이 대결하고 있는 쥐가 있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구멍가게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이던 쥐가 있고, 또 그 이전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아버지로 하여금 남쪽을 선택하게 했던 쥐가 있다. "쥐새끼"같은 놈들에게 휘둘리며 "쥐"처럼 옹색한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들은 결국 "쥐"를 잡지 못한다.

 김소진 소설은 이념이나 계급의 입장을 반영한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 생활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육체의 언어로 짜여 있다. 그래서 김소진 소설의 매력에 대해 ‘속담스런 민중어와 개성적인 묘사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평론가 김윤식)는 말이 나왔다. ‘조붓한 공간 속에 갇혀 경성드뭇한 대머리를 인 채 움퍽 꺼져 대꾼한 눈자위로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 라거나 ‘노름이라면 이골이 났다는 노름방의 도꼭지 격인 짝눈도 육통이 터질 노릇이라며’ 등등 활달한 토박이말 구사로 인해 김소진은 채만식, 김유정, 박경리, 김주영, 이문구, 최명희 등과 함께 토박이말 사전 편찬자들이 높이 평가했던 작가들 중의 하나로 꼽혔다.

 



  1. 1963년 강원도 철원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했다.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쥐잡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3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95년 『장석조네 사람들』, 1995년 『고아떤 뺑덕어멈』 등의 단편 소설집과 장편 소설을 썼으며 같은 세대 작가들 사이에서 일약 주목받는 위치에 올라섰다.1995년부터는 다니던 신문사마저 그만두고 당시 선배와 동료 문인들이 일하던 서교동의 한 출판사 구석에 자리를 얻어 '전업작가'로서의 의욕을 불태웠다. 1996년에 『자전거 도둑』, 『양파』와 「신풍근 배커리 약사(略史)」, 「눈 속에 묻힌 검은 항아리」 등의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1997년 3월 위암 판정을 받았으며, 동료 문인들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97년 4월 22일 일기를 다하고 사망하였다. 2007년에는 10주기를 맞아 그의 동료와 선후배 문인들이 펴낸 추모 문집 『소진의 기억』이 출간되기도 했다.도시적 감수성의 개인주의로 무장한 신세대 문학이 득세하던 90년대에 김소진의 작품은 희소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시 서민들의 곤궁한 삶과 거대조직에서 낙오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 어린 묘사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현장을 현실감있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 특유의 질박하면서도 다듬어진 한국어는 눈밝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주목의 대상이었다. 또한 김소진의 소설은 현대에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이 사용되었으며 과거의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의 시대 상황과 사람들의 생각을 잘 살리고 감정적인 면에 있어서도 완급 조절을 훌륭하게 이루어낸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