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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배수아 단편소설 『시취(屍臭)』

by 언덕에서 2016. 6. 28.

 

배수아 단편소설 『시취(屍臭)』

 

 

 

배수아(裵琇亞, 1965~)의 단편소설로 2001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게재되었다. 2006년 1월에 [문학동네]에서 발간된 동 작가의 단편집 『훌』에 실려있다. '시취(屍臭)'는 시체에서 나는 냄새를 의미한다. 이 소설 『시취』는 죽음의 문제를 제재로 하고 있다. 배수아 작가 특유의 몽환적인 문장들이 점차 그 내면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어 글 속에 숨겨진 부호를 이해하고 장치를 파악하여 이해하여야 하는데 읽기는 간단치 않다.

 배수아는 '1990년대의 문학이 배태한 이질적이고 지리멸렬한 환멸적인 이야기의 한 극점’이라거나 ‘이미지에 중독된 자’라거나 ‘우리 문학사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이단의 글쓰기’와 같이 엇갈린 평가들이 오간다. 그처럼 배수아의 소설문법은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쉽게 읽을 수 없는 작품을 쓰는 매우 특이한 작가다. 그녀의 소설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등장인물들도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어 읽어내리기에 난해하기 짝이 없다.

 오늘 소개하는 단편소설『시취(屍臭)』가 들려주는 내용은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얘기다. 작품 속 주인공의 나이는 아마도 80살이 넘은 듯하다. 그러나 정작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이러한 물리적 나이는 그리 의미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의식은 종종 젊은 사람처럼 팽팽하게 긴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설가 배수아(196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독거노인이 한 명 있다. '간신히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을 뿐인, 가족 하나 없는 병들고 왜소한 늙은이'이다. 형제들이 있지만 절교한 상태이며,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지만 모두 이혼했다. 그 이유는 '타 존재에 대한 거친 이물감' 때문이다. 현재 그는 완전히 칩거의 생활을 선택한 상태이며 '살아 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경계가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 그가 외부 세계로 손을 뻗어 본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 때 알게 된 후 38년만에 한 차례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는 P의 생사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특급열차 탈선 사고 소식을 뉴스에서 본 뒤로, P가 그 열차에 탔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에게 줄곧 편지를 보내주는 P의 아들의 글을 통해 주인공은 P가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혼미한 기억 탓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P가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매일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소설은 마친다.

 

 

 

 이 작품 「시취」는 외적 세계와 자발적으로 소통을 단절한 폐쇄적 자아가 성찰하는 육체적 노쇠와 의식의 불안을 통해 죽음에 참여하는 실존 상태를 묘사해 나간다. 그런데 『시취』의 세계는 대단히 특이하다. 주인공의 면모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다. 주인공과 P의 관계 또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P의 아들이 꼬박꼬박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작가의 소설을 읽기가 어려운 것은 실상 이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기호에 불과하다는데 있다. 죽음에 대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작가(서술자)의 상념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고 인물들은 그러한 상념이 작품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시취'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껍데기를 둘러쓰고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삶 속에 서식하는 죽음의 냄새를 알아보지 못하고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과잉되거나 부조리하거나 철면피한' 우리의 맹목의 삶에서 새어나오는 냄새일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죽음의 냄새가 삼켜버린 주인공의 악몽과도 같은 삶에 대해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삶의 맨얼굴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어렵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빼어난 점은, 짜임새 있는 문체를 통한 묘사의 치밀함에 있다.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노인의 심리가 그에 걸맞는 느린 호흡으로 차분히 그리고 꼼꼼히 그려져, 그의 심리가 생생히 와 닿는다. 인물의 존재 자체가 모호한 부분과는 반대로 심리의 생생함이 이렇게 뚜렷한 점은, 이 작품의 지향이 죽음에 대한 상념에 닿아 있는 까닭이다

 작품 속 인물의 설정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고, 작가가 늙음과 죽음에 대해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단지 잔뜩 힘을 준 어색한 문장과 관념적인 이미지들은 서사를 위태롭게 끌고 가고 또 불편하다.

 

 

 

 

 

 

 

 

  1.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훌'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철수',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붉은 손 클럽', '이바나', '동물원 킨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당나귀들', 시집 '만일 당신이 사랑을 만나면',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 '바다를 보러 갈 거야', '나의 첫 번째 티셔츠',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