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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전광용 단편소설 『꺼삐딴 리』

by 언덕에서 2016. 6. 14.

  

 

 

전광용 단편소설 꺼삐딴 리 

 

 

 

 

  

 

전광용(全光鏞.1919~1988)의 단편소설로 1962년 7월 [사상계]에 발표되었고,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8ㆍ15 직후부터 줄곧 머리 속에 감돌던 소재가 십수 년 만에 가닥이 잡혀 완성된 것’으로, 작중 인물에 대한 모델 실재설이 분분했던 작품이다.

 의사인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일제하에서는 친일파였다가 해방 후에는 친소파로 돌변하여 영화를 누린다. 이북에 있던 그는 러시아어를 배워 소련군 장교를 치료, 환심을 산다. 1ㆍ4 후퇴시 월남해서는 친미파로 돌변하여 영어를 구사하며 시류에 편승하는 인간이 된다. 이인국 박사는 카멜레온(Chameleon)적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있다.

 ‘꺼삐딴’은 영어의 '캡틴(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까삐딴’이 와전된 말이다. ‘꺼삐딴 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가 혹 제거 수술을 해 준 소련인 장교가 붙여준 애칭이다. ‘꺼삐딴’은 ‘우두머리’나 ‘최고’라는 뜻으로 쓰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인국은 종합 병원을 운영하는 외과 전문의다. 병원은 매우 정결하지만, 치료비가 다른 병원보다 갑절이나 비싸다. 그는 양면 진단(병의 증세보다 경제적 능력을 저울질하는 진단)을 통해 철저히 부를 추구한다. 어느 날, 미국으로 가기 위해 미 대사관의 브라운과 만날 시간을 맞추려고 회중시계를 꺼내 보다가 30년 전 과거를 회상한다.

 이인국은 일제시대에 제국 대학을 졸업할 때, 회중시계를 상품으로 받는다.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정도로 완전한 황국 신민으로 동화되어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아왔다.

 해방 후의 격변기 속에서 그는 소련군 점령 하에 사상범으로 낙인 찍혀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질 환자를 발견, 치료한 이인국은 수용소에서 응급 치료를 맡는 행운을 얻는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소련군 스텐코프 장교의 뺨에 붙은 혹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 스텐코프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며, 친소파로 돌변하여 영화를 누린다. 이때 그는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시키게 되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부자간의 이별이 되고 말았다.

 그는 1ㆍ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 거제도 수용소에서 아버지를 잃게 된다. 이인국은 미군 주둔 시에도 그 상황에 맞는 처세술로 현실에 적응하며, 일제시대에 같이 일했던 간호원 '혜숙'과 재혼해 딸을 낳는다.

 대사관에서 브라운을 만난 이인국은 고려청자를 그에게 선물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책감보다는 그의 취향을 생각하며 고민한다. 그는 브라운의 관사를 나오면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그리고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에서, 또한 월남을 결행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미국에 가서도 반드시 그러하리라고 확신을 가진다. 택시를 타고 느긋하게 달리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가을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튼 이인국은 그 특유의 처세술로 브라운을 만족시키게 되어 미 국무성 초청장을 받는 목적을 달성한다. 미국에 가서도 반드시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며 도미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전광용 (全光鏞.1919~1988)

 

 일제시대 이인국은 자식들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어 일본어만 쓰게 하여 철저한 친일분자로 지나다가, 광복이 되어 북쪽을 소련군이 점령하게 되자 러시아어와 자신의 의술로 소련군 장교에게 환심을 사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낸다. 또한 월남해서는 미 대사관에 붙어 아부하고 친미주의자가 된다.

 이 작품은 변절적인 순응주의자, 즉 카멜레온 같은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 해방 직후의 북한에서는 친소파, 월남 후에는 친미파로 시류에 편승해 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노예적 속성을 비판함과 아울러 민족사의 비극을 암시한다. '꺼삐딴'은 영어의 'Captain(우두머리라는 뜻)'에 해당되는 러시아어로,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이 쓰는 말을 흉내 내어 쓴 것인데, 이 '꺼삐딴 리'라는 제목에서도 힘 있는 것에 기대어 주체성을 망각하는 자들의 병든 인식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전쟁의 혼란시기에 “양심과 도덕”이 우선이 될 수 없음과 이런 모습이 우리 민족의 현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환자의 증세와 아울러 환자의 경제 정도를 진찰한다는 이중성을 보인다. 주인공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며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삶의 가치를 반성하고 있으며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처세술을 비판하고 있다.

 주위를 살펴보면 작금에도 꺼삐딴리 같은 이들은 넘친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정치인들이다. 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관으로 있다가 잠잠하다고 했는데 어느 날 야당 국회의원이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야당 국회의원이었다가 여당으로 옮긴 이도 보인다. 기회주의자들은 "인재가 부족하다"고 할 때를 가장 좋아한다. 이승만 정부부터 그랬다.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성공한 나라"라고 분개하면서 출범한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집권초기 정책실장을 맡았던 모 교수가 "이제는 이명박 정부에 줄을 서는 기회주의자들을 기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한탄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뒤집으면 이명박 정부 역시 기회주의자의 마당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풍자 문학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본분을 잊고 언제나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처세술과 속물근성을 풍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신의 뿌리를 잃고 부동해야 했던 우리 정신사를 풍자한다. 불행하게도 꺼삐딴리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하나'를 가지고 '열'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면으로써 전체를 드러낸 이 작품을 두고 이른 말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