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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송영 단편소설 『선생과 황태자』

by 언덕에서 2016. 6. 21.

 

 

 

 

송영 단편소설 『선생과 황태자

 

 

 

 

 

 

 

송영(宋榮.1940∼2016)의 단편소설로 1970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된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송영은 1967년 [창작과 비평]에 단편 <투계>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공간 안에서 한계상황에 부딪혀 탈출하려는 인물의 심리를 정확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그려내어, 문단에서 이상주의ㆍ실존주의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선생과 황태자><금지된 시간>외 여러 권의 작품집을 발표했으며 일간지, 잡지에 연재물을 썼다. 또한 클래식 애호가로서 음악 잡지에 고정 필자로 활동해 왔으며 <무언의 로망스><송영의 음악여행>등 관련 책도 썼다. <중앙선 기차><마테오네 집><북소리>외 몇 작품이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작품 『선생과 황태자』에서는 군대에서 이탈한 뒤 이리저리 떠돌다가 7년 만에 ‘탈영과 항명’ 혐의로 체포된 ‘박순열’은 2호 감방에 갇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박순열은 작가 자신을 변형한 문제적 개인으로 내향적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설의 끝자락에서 순열 씨는 한밤중에 어두운 감방 안에서 혼자 깨어나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이는 상황의 덫에 치이게 된 내향적인 지식인의 절망감과 비관적인 세계 인식, 어둠에 물든 자의식과 좌절감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신호다.

 작가는 『선생과 황태자』에서 자신의 체험을 거의 완벽하게 소설의 형태로 바꾸어내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조용하고 침착한 사나이, 순열 씨의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격렬한 울음이라는 심정적 반응을 통해 닫힌 세계 속에서의 인간 실존의 부조리 또는 삶의 진상에 대한 형이상학적 각성에 도달한 이의 고통과 절망을 드러내고 있다.

 

 

 

송영 (宋榮.1940∼2016)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살벌한 군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끼리 폐쇄된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워 가는 군대 감방이 배경이다. 이 곳에서는 자연히 먼저 들어온 사람, 힘 센 사람, 배짱이 좋은 사람들만이 '좌석'을 차지할 수 있다.

 탈영 및 항명죄의 순열씨는 월남전에서의 양민 학살죄의 정철훈 하사, 상관 폭행죄의 이 중사 등과 함게 한 감방에 수감되어 있다. 이들 중, 갓 들어온 순열씨는 나이가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2호 감방장 이 중사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고 그래서 '선생'으로 불린다.

 이 곳에 속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일과 구실을 가지고 있다. 말없이 기존의 질서에 의하여 나누어지는 자기의 몫을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정상적인 서열로는 제일 마지막인 순열씨지만 절대적 위치의 왕초 이 중사의 권력으로 정철훈 하사가 앉아야 할 두 번째 상좌에 앉게 되고 뿐만 아니라 왕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할애된다.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부당한 파계로 2호 감방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불만이지만 왕초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불만을 나타낼 수 없다.

 순열씨의 부드럽고 어색한 태도와 대조되는, 굳센 사람인 정 하사는 차기 왕초가 될 사람이다. 그는 순열씨가 하는 일에 대놓고 핀잔을 주고 불만을 표시한다. 이 두 사람의 대립은 끝내 싸움으로 발전한다. 순열씨의 이야기에 자주 걸려 나오는 관념 어휘가 정 하사의 귀에 몹시 거슬린 것이 싸움의 발단이 된 것이다. 순열씨도 뜻밖에 정 하사에게 온몸으로 격분을 터뜨린다.

 험악한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못한 정 하사는 그날 밤 잠자리 속에서 생각한다. 아무런 질문도 없이 살아온 자기의 삶에 너무나 석연찮은 문제들이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감방을 벗어나 새로운 각오로 분투하게 되기를 희망하며 상고(上告)를 결심한다.

 정 하사는 자신의 결심을 불침번을 서는 순열씨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다. 순열씨의 짐승 같은 천진한 울음에서 두 사람의 표면적인 대립은 심층적인 사랑으로 화해한다. 그 누구도 순열씨의 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닫힌 공간과 폭압적 현실을 탈출하려는 저항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감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씌여진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닫힌 공간에서 출발하여 이 폐쇄된 상황이 주는 억압과 부자유를 그리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인간들의 반응’에 주목함으로써 당대 현실은 물론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1970년대의 사회 현실을 갇힌 상황으로 비유하는 작가의 부정적인 현실 인식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깃들어 있으며, 당대의 폭압적 현실에 대한 저항의 힘을 내장하고 있다. 탈출이 불가능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하는 불굴의 신념이 이 작품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송영은 해병대 장교로 임관한 후, 무단이탈로 영창 생활을 하게 되고, 운 좋게 그가 <투계>의 작가임을 알아 본 법무관의 선처로 수개월 만에 풀려나기까지의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 바로 이 『선생과 황태자』이다. 이 작품의 순열씨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주인공은 현실이 닫혀 있는 공간인 만큼 부단히 그곳으로부터 탈출을 꾀한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감방을 부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현실이란 불만스러운 개혁의 대상이며, 이에 대한 전면적인 반란이라는 피해 의식과 강박 관념으로 위축된 순열씨에게는 애당초 걸맞지 않다.

 이 작품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세계에 대응하는 창조적인 세계, 꿈꾸는 세계, 인간의 숨결이 흐르는 세계를 설정하여 이것들을 서로 대비시키고 있다. 이 대립의 과정을 통해 그는 깊이 깨닫고 또 이 좌절을 통해 궁극적인 현실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선생과 황태자』는 작가의 체험적 소재를 문학적으로 변형시켜 성공적으로 보편화시킨 작품이다. 즉, 그것은 그의 특이한 삶의 형식이 모든 인간의 근원적 조건을 드러내는 한 양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실존주의적 문학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1. 1940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1967년《창작과 비평》에 단편〈투계〉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선생과 황태자』, 『지붕 위의 사진사』, 『비탈길 저 끝방』, 『발로자를 위하여』, 『새벽의 만찬』 등의 작품집과 『또 하나의 도시』, 『금지된 시간』 등의 장편, 동화집 『순돌이 이야기』와 음악 관련 책을 펴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