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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사진 이야기

by 언덕에서 2016. 6. 16.

 


 

 

 

사진 이야기

 

 

 

 

 

어제는 모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사진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 3월에 시작하여 넉 달 동안 매주 1회 3시간씩 ‘사진예술초급반’이라는 수업을 받은 것인데 나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매주 하루를 세 시간이나 비운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러다가는 평생 배우고 싶은 것을 미루기만 하다가 하얗게 늙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판단이 결심을 재촉했던 것이다.

 사진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위의 사진을 보면서 시작했다. 이 사진은 병마(病魔)로 일찍 세상을 떠난 故 최동원 선수의 영정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애도와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떠나는 장례식장에서 보여준 환한 웃음은 그의 삶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고 그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사진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 블로그 친구님께 ‘어떻게 하면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벤자민님은 사진 중에 가장 어려운 사진이 인물사진이라는 답과 함께 故 최동원 선수의 영정사진 경우에는 활짝 웃는 모습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사진작가 사이에서는 ‘계를 탄 날’이라고 부른다는 답변을 해주셨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딸아이가 어느 날 ‘디지털 사진’이 전공필수과목이므로 DSLR카메라를 장만해야 한다기에 두 말 않고 카메라를 구입토록 했다. 딸아이는 카메라를 메고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쏘다니다가 해당 학기가 끝나니 카메라는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어 창고 구석에 자리하게 되었다. 디카라고 부르는 기존의 콤팩트 카메라가 집에 있었고,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의 질도 상당히 올라가고 기능도 다양해서 덩치 큰 DSLR 카메라의 매력은 반감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 놀고 있는 그 DSLR 카메라를 갖고 야외 등지에 나가서 나는 사진을 찍었는데 출력해서 보니 휴대폰 카메라보다 훨씬 못생긴 사진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진작가들은 어떻게 해서 눈부시기 짝이 없는 예술 사진을 만들어낸다는 말인가?  카메라 설명서를 읽어봐도 어려운 용어 때문에 머리만 아플 뿐 어떻게 사진을 찍으라는 설명이 없어 답답함만 더해갔다. 딸아이는 카메라 '모드 다이얼'을 AUTO에 놓으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면서, 촬영대상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AE(P)모드, 조리개 우선 AV모드, 셔터 우선TV모드, 수동 노출 M모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우선 손쉬운 프로그램 P모드로 찍을 것을 권했다.  몇 권의 책을 사서 독학 후 여러 번 촬영을 도모했으나 뭔가가 되고 있다는 기쁨보다 좌절감만 심해져갔다. 그러던 차에 전문가로부터 직접 강의를 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시내에 있는 모 대학의 사회교육원에 등록을 하고 첫 수업에 가니 수강생은 25명의 늙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4~50대의 중년 여성들이었고 나를 포함한 남자는 5명이었다. 이후 서서히 알게 된 것이지만 25명 중 15명은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학기마다 2~3회 반복해서 수강하는 분들이었다. 그런 이후에 ‘사진예술중급반’으로 옮겨가는 것이 상례인 듯했다. 매주 화요일 3시간 수업 중 1시간은 수강생이 찍어오는 ‘과제 사진’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아마추어작가 또는 사진동호회 회원으로 프로작가 못지않은 눈부시고 다채로운 사진들을 제출했다.  그제야 나는 그간 유지해오던 나의 사진실력이 ‘막찍사’ 수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배움에 늦고 빠름이 어디 있겠는가?

 

 

 

 

 

 

 

 

 기본적인 카메라 작동법과 적정노출의 이해, 렌즈의 종류 및 효과에 관한 수업을 듣고 난 후에야 DSLR 카메라가 똑딱이와 어떻게 다른가를 알게 되었다. 이후 집에 있는 디카라고 부르는 똑딱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카메라에서도 인물이나 풍경, 접사에 관한 기능들이 다채롭게 있는데, 단순무식한 나는 무조건 ‘자동’에만 맞춰 사진을 찍어 온 것을 알게 되었다(똑딱이라도 카메라의 기능을 잘 소화한다면 DSLR카메라 비슷하게 찍을 수 있다). 이후 '조리개를 활용한 표현'과 '셔터를 이용한 촬영'을 이해한 후로는 DSLR 카메라만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표현을 경험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넉 달이란 시간은 금세 흘러간 듯하다. 마지막 수업인 어제의 과제는 '자녀에 관한 세 장의 사진'이었는데, 조건은 수강생 자녀의 얼굴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출 여부는 강제성이 없으니 자율에 맡긴다고도 했다. 이 과제에 대해 고심한 끝에 세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제 아침 다시 생각하여 제출하지 않았다. 다른 수강생들도 제출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제출하면 변변치 못한 실력의 내가 타 수강생 눈에 마지막 수업시간에도 튈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강하던 어제 제출된 네 분의 사진 열두 장은 내가 예상했던 수준이어서 제출하지 않은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넉 달 동안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과 접하지 못한 미지의 부문에 관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 만족해 본다. 또한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故 최동원 선수의 생전 박장대소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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