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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운영전(雲英傳)』

by 언덕에서 2018. 5. 2.

  

 

고대소설『운영전(雲英傳)』

 

 

 

 

조선시대의 작자ㆍ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 또는 <유영전(柳泳傳)>이라고도 한다. 한문 사본이 원작이며, 1925년 [영창서관]에서 간행한 한글 번역본 등이 있다. 운영전』은 대개의 고전 소설이 그렇듯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해지고 있다. 

『운영전(雲英傳)』은 애정 소설로 궁녀들의 궁중 생활의 번민과 신분적 해방을 주제로 한 조선 시대 소설들 중 유일한 비극 소설로,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의 슬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의 고대소설 중에서도 남녀간의 애정을 미화한 대표적인 작품일 뿐 아니라 결말을 비극으로 처리한 유일한 소설이다. 사건 전개에 사실감이 있어 <춘향전>보다도 격이 높은 연정소설인데, 대부분 고전 소설이 단순 구성에 행복한 결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지니는 데 반해, 특이하게도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구성상 몽유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영이 수성 궁터에서 노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김진사와 운영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꿈에서 깨어난다. 분량 면에 있어서는 8할 이상이 꿈속의 일을 다룬다. 서술자 유영이 꿈속에서 김진사와 운영의 말을 듣는 액자형 구성을 택하여 작품 내부를 구성하였는데, 몽유소설 안에 다시 액자소설이 든 점은 당시의 소설로서는 특별한 구성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선왕조 세종의 제3자 안평대군1의 거처 수성궁은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었다. 유영이라는 한 선비가 춘흥을 못 이겨 그곳을 찾아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잠이 들어 밤을 맞는다. 한 곳에 이르니 어떤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과 속삭이다가 유영이 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한다. 여인은 곧 시비를 불러 자하주와 성찬을 차려오게 한다. 그 뒤 세 사람이 대좌하여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영이 그들의 성명을 물으니 청년은 김 진사, 여인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이라 한다. 유영이 안평대군 생시의 일과 김 진사의 슬퍼하는 곡절을 물으니 운영이 그들의 사연을 먼저 풀어놓는다.

 안평대군은 풍류왕자로서 궁중에 아름다운 전각을 짓고 풍류와 재주가 뛰어난 젊은 남자들을 모아 시회를 여는 한편, 운영을 비롯하여 궁녀 10명을 뽑아 가무와 서예를 가르치며 별궁에 두고 즐겼다. 하루는 안평대군이 운영이 지은 시를 읽고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상이냐고 다그치며 힐문한다. 어느 날 안평대군과 궁녀들이 시를 짓고 있는데 김 진사가 찾아와 함께 어울려 시회(詩會)를 열게 된다. 그때 운영은 김 진사의 재주와 용모에 마음이 끌려 그를 사모하게 된다. 김 진사 또한 운영에게 정을 보내게 된다. 그 뒤 운영은 김 진사를 몰래 사모하다가 그에 대한 연정을 시 한 수에 옮겨, 마침 김 진사가 안평대군을 만나러 온 틈을 타 문틈으로 전한다. 김 진사도 수성궁에 출입하는 무녀를 통하여 사랑의 답신을 보낸다. 운영과 김 진사의 관계를 눈치 챈 안평대군은 궁녀를 나누어 서궁으로 이주시키고 운영을 힐문하지만 운영은 죽을 각오로 사실을 부인하고 자백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중추절에 궁녀들이 개울로 빨래를 하러 나갈 기회를 얻자, 운영은 곧장 무녀의 집으로 달려가 연락하여 다시 김 진사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궁중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날 밤 김 진사는 높디높은 궁의 담을 넘어가서 운영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그러나 그해 겨울이 되자 눈을 밟고 궁중을 오간 김 진사의 발자국이 빌미가 되어 두 사람은 궁인의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마침내 안평대군에게도 의심을 사게 되어 운영은 탈출을 계획하고 김 진사의 사내 종을 통하여 그의 가보와 집기들을 모두 궁외로 옮기게 된다. 그 뒤 재산은 종의 간계에 의하여 모두 빼앗기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안평대군은 대노하여 궁녀들을 불러 문초하기에 이른다. 안평대군이 운영을 하옥하자 그녀는 자책감으로 그날 밤 비단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결한다. 여기까지 운영이 진술하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던 김 진사가 이번에는 운영의 뒤를 이어 술회한다. 운영이 죽자 김 진사는 운영이 지녔던 보물을 팔아 절에 가서 운영의 명복을 빈 다음, 식음을 전폐하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운영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김 진사와 운영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유영이 그들을 위로하여,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못함을 한하느냐?”

라고 묻자 그들은 천상의 즐거움이 인간 세상보다 더 큼을 말하고, 다만 옛날의 정회를 잊지 못하여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유영은 바다가 마르고 돌이 녹아도 사라지지 않을 자신들의 사랑을 세인에게 전하여 달라는 당부를 받는다.

 이야기가 끝난 뒤 세 사람은 다시 술을 마신다. 유영이 술에 취해 졸다가 문득 산새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새벽이 밝았는데 다만 김 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자만이 무료히 놓여 있었다

 

 

 대부분 고전소설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비극으로 끝난다. 결말이 불행해서 비극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주제가 비극으로 전개되면서 일관되게 구현된다. 정치적으로 불운하였던 안평대군의 영화가 사라진 수성궁이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배경 설정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배경에서 신분적인 제약을 넘어서 사랑을 하다가 희생된 주인공의 운명이 봉건사회의 붕괴를 촉구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운영전』은 작품창작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나 인성문제를 관념적으로 안이하게 처리하지 않고, 생생한 경험적 진실로 뚜렷이 제시하였다. 입체적 성격소설로서의 성공적 표현기교를 볼 수 있으며, 궁중에 갇힌 궁녀들의 가련한 정신생활과 몸부림치는 사랑의 한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봉건사회의 궁중이라는 두꺼운 장벽을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쟁취할 수 있었다는 과감한 시대의식이 높이 평가된다. 죽음을 앞둔 궁녀들의 초사(招辭)2 속에는 유린당한 인권을 회복하고, 사랑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울부짖음이 숨어 있다.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유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김 진사와 운영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비극적 연애담을 다 듣고 나서,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구성 방식은 몽유록의 일반적 구성 방식과 차이를 지닌다. 몽유록의 일반적 구성 방식은 현실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고, 꿈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잠이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때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꿈속의 사건에 놓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중심 부분인, 유영이 김 진사와 운영을 만나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이 유영이 잠을 깬 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유영이 비극의 주인공들을 만난 것이 꿈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김 진사나 운영이 현실의 사람이 아닌,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유영이 이들을 만난 것은 환상 체험이며, 따라서 이런 구성 방식도 작품에 보다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몽유록의 발전된 형식이다.

 이 작품은 궁녀들의 구속적인 궁중 생황의 번민과 궁녀의 신분적 해방을 주제로 한 조선 시대 유일의 비극 소설이다몽유록 형식의 소설로서다른 몽유록 작품들처럼 액자 구성 방식을 취한다유영에 관한 이야기가 외화즉 액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면 김 진사와 운영에 관한 이야기가 내화즉 그림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는 조선의 봉건적 사회 제도의 모순된 현실을 뛰어 넘어 남녀의 진솔한 사랑을 추구하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혀 자살하게 된다.  이러한 표면적 이야기로만 본다면 주인공인 운영과 김 진사는 비극적 인물이요, 좌절된 인간상이다. 운영은 궁녀라는 신분과 순수한 인간적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죽음을 선택하였으며 운영의 죽음은 곧 김진사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녀의 죽음은 순수한 애정마저 감추어야 하는 유교적 질곡과 궁녀의 억압된 삶에 대한 저항이며, 인간성 해방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는 비인간적 규제와 형식에 매인 삶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 찾기를 위한 방편이었다.

 

 

  1.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1418~1453). 이름은 용(瑢). 자는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ㆍ낭간거사(琅玕居士)ㆍ매죽헌(梅竹軒). 수양 대군의 세력과 맞서다가 계유정란 때 사사(賜死)되었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본문으로]
  2. 조선 시대에, 죄인이 자기의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