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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선우휘 단편소설 『불꽃』

by 언덕에서 2014. 6. 25.

 

 

선우휘 단편소설 『불꽃』 

 

 

언론인·소설가 선우휘(鮮于 輝.1922∼1986)의 단편소설로 1957년 [문학예술] 신인 특집에 당선된 작품이다. 1957년 제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 『불꽃』은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체념과 순응주의를 비판하고 적극적이며 행동적인 삶의 태도를 형상화하고, 현대사의 굴절 속에서 성장한 주인공의 극복 의지를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3ㆍ1운동에서부터 6ㆍ25에 이르는 이 나라 민족사의 가장 어두웠던 격동기를 짜임새 있게 응축한 야심작으로 평가받는다. 중, 단편으로서는 다루기 벅찬 소재를 고현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민족의 비극사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1957년 7월호 [문학예술]에 실렸던 『불꽃』은 바로 그해 9월호 [사상계]에 다시 수록되기도 했다.

 『불꽃』은 작가 선우휘의 작품 세계에 있어 초기의 특징을 살린 작품으로 분량 상으로는 긴 단편이다. 3ㆍ1운동부터 6ㆍ25에 이르는 30여 년의 역사적 격동기를 배경으로 삼아 주인공 '현'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지만 장편 소설적 구성을 취한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 현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인간형을 통해서 갈등과 방황의 과도기적 인간형을 극복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불꽃'처럼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의 새로운 한국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1975년 유현목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 <불꽃 Flame> , 1975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고현의 아버지는 기독교 신자로서, 3ㆍ1 운동 때 일경의 총을 맞고 뒷산 동굴에 피신하였다가 죽은 민족주의자였다. 현의 할아버지 고 노인은 충직하기는 하나 풍수지리를 믿고 조상 일만 돌보며 안일하게 살아가며, 손자 현에게 지극한 관심을 쏟는다.

 현의 어머니는 현실의 고통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인고의 인물로 기독교에 귀의하여 아들을 보살핀다. 현은 일본 유학시 제국주의 찬양론자 다까다 교수의 영웅주의적 감상과 기만에 불만을 품고 귀국했다가 학병으로 끌려간다. 중국에 파병되었다가 탈영했고,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도 경험한다. 학병 탈출 후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사상적 부조리와 혼란을 경험하고 여수. 순천 사건도 듣게 된다.

 6ㆍ25가 터지자,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온 친구 연호와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인민재판이 있던 날, 현은 동료 여교사 조 선생의 부친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한다. 연호를 때리고 보안서원의 총을 빼앗아 아버지가 죽은 동굴로 피신한다. 현의 은신처를 알게 된 연호는 현의 할아버지를 인질로 잡고서 투항을 종용한다. 처음에는 투항하라던 할아버지가 너만은 살아야 한다고 용기를 준다. 이때 연호는 할아버지를 사살한다. 현은 공산주의자 연호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탈출한다. 그도 연호의 총탄을 맞고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생명의 불꽃을 느끼며, 현실과 정정당당하게 대결하면서 살아 갈 것을 결심한다.

 

 

영화 <불꽃 Flame> , 1975 제작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3ㆍ1운동부터 6ㆍ25전쟁까지의 30여 년간에 걸친 역사적 격동기이다.

 주인공 고현은 만세 시위에 앞장섰던 젊은이의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자라난다. 이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현실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그런 종류의 관심에 대해 오히려 비판적이다. 현이 소년시절에 할아버지의 혹을 조롱하는 아이들과 싸워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칭찬을 기대했으나 거꾸로 심한 야단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그는 소심하고 방관적이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고현은 어머니의 권유로 대학에 가고,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결국 탈주하여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현실을 만난다. 그것이 바로 공산당의 인민재판이다. 여기서 고현은 마침내 지금까지의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하자’는 행동적 의지를 표현하게 된다. 

 선우 휘는 한국전쟁을 이론이 아닌 당사자인 현역 군인으로서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한 이다. 그의 문학이 1950년대 전후 문학에 널리 퍼져 있던 병적 우울, 현실 도피, 패배, 체념주의에 감염되지 않은 것도 이런 생생한 체험 때문이다. 그는 이 시기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힘찬 남성적 어조로 전후 사회의 불안과 혼란스러운 상황을 행동으로 헤쳐나가는 인간상을 그려나간다. 게다가 그의 ‘행동주의’를 실어 나르는 문체 속에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녹아들어 있다.

 

♣ 

 

 이 작품은 선우휘의 대표작인 동시에 전후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3ㆍ1운동과 일제강점기, 광복 공간과 6ㆍ25전쟁을 관통하는 3세대가 중편이라는 분량에 작지 않은 스케일로 담겨져 있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버지의 저항정신, 할아버지의 도피사상,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동굴 안에서 회상하는 장치가 문학적으로도 성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전후문학이 인간 내면의 황폐화에 초점을 맞추기에 급급한 반면 이 작품은 그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우휘는 현역 장교의 신분으로 이 작품을 썼다. 동인문학상 수상식장에도 육군 정복을 입고 나타나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고 전하는데 그 때문인지 이 소설을 행동주의 문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공산주의 이론에 대항할 새로운 이념의 정립을 위해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작가 자신이 의도한 반공문학이나 행동주의 문학보다는, 억압적인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저항정신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휴머니즘 문학의 테두리에 넣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