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유주현 대하소설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by 언덕에서 2014. 8. 19.

 

유주현 대하소설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유주현(柳周鉉 : 1921 ~ 1982)의 실록대하소설로 1964년 9월부터 [신동아]에 3년간 연재하였던 작품이다. 1967년 신태양사에서 전 5권으로 간행하였고, 이어 1981년 서문당에서 전 3권으로 간행하였다. 서문당본은 상편 ‘일식(日蝕)의 형각(形刻)’, 중편 ‘하오(下午)의 투계(鬪鷄)’, 하편 ‘제국(帝國)의 낙조(落照)’로 각각 분책되었다. 1968년에는 일본의 [강담사]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 소설은 월간 「신동아」에서 1964년 9월호부터 1967년 6월호까지 34회 연재됐다. 당시 「신동아」의 주간은 역사학자 천관우였는데, 그는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 직후 1936년 강제 폐간했다가 28년 만에 복간한 신동아에 의미 있는 역사소설을 싣기로 하고 류주현에게 집필을 권유했다고 전한다.

 이 대하소설은 일제 치하 36년간의 민족 수난의 역사를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구성해 나간 역작이다. 이 작품은 2,000여 명의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스케일의 웅대함뿐만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에 있어서 본격적인 기록문학의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작품으로 유주현은 1968년에 제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작 부문 본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주권과 국토를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아성인 조선총독부의 비인도적 수탈상과, 온갖 학대와 압박에 시달린 한국 민족의 수난사를 다룬 점에서, 실록적인 실증자료에 입각하면서도 허구성을 풍부하게 살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초 조선 멸망 전후부터 1945년 일본이 멸망할 때까지 한국사를 유린하였던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과 한민족에 관련된 동서양 여러 나라·민족을 대상으로, 잔혹하고도 슬픈 ‘인간의 역사’를 파헤치고 형상화하려는 의도라고 작가는 술회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순종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면서 조선은 이토 히로부미의 간교한 책략으로 주권을 빼앗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통감부가 총독부로 되면서 군국주의의 마각은 노골화되고,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언론탄압정책을 써서 어용신문으로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를 만들었다. 애국인사 105명을 구금하고,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약탈을 자행, 유랑민이 속출하게 되었다. 이 농민 들은 북간도로 이주하는 참경을 빚는다.

 다음 총독 하세가와는 3ㆍ1 운동을 맞아 애국지사와 한국인들을 가혹한 형벌로 다스리는 한편, 평화적 시위를 무기로 진압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사이토 총독 시대가 열리면서 무단정책을 유화책으로 가장하여 문화정책을 표방하나 애국인사들은 만주와 중국에서 독립항쟁을 계속하였다.

 일제 치하 한국인들의 신산한 삶, 독립투사의 치열한 투쟁, 친일파 인사들의 행태, 조선 총독의 횡포가 전개된다. 연인 사이인 주인공 박충권과 윤정덕만 가공인물이고 나머지는 고종, 순종, 김구, 안중근, 윤봉길, 이토 히로부미 등 실존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총 등장인물은 2000여 명이며 주요 인물만도 100여 명이다.

 

 작가는 박충권과 윤정덕의 두 인물을 높은 이념적 성취를 이루어가는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일제치하의 민족의 진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조명하여 가면서도 이 작품의 주제는 의기 있는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연면히 계승하여가는 민족적 저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침략을 묘사하되 그 비인도적 정책을 규탄하는 데 그 핵심을 두었고, 결코 사원에 사로잡힌 보복의식을 나타내지 않았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시기로부터 연합군에 의하여 패망하는 일제를 도덕적으로 비판한 소설인 것이다.

 “집요하게 항거하고 싸워 얻은 빛인데 그 빛에 적응할 채비가 염려스러운 것이다. 암흑과 울분과 질곡의 세월은 반세기였다. 그 반세기 동안 어둠에 익혀온 시력은 한동안 찬란한 직사광선 앞에서 그 기능을 발휘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결말에서 민족의 혼란이 예상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발전 문맥에서 어떤 필연의 인과를 예시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유주현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 등장인물 2000여 명에 대한 고증을 거쳐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즉 식민치하의 침략 기구였던 통감부와 총독부라는 주제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인물 개인보다는 일본ㆍ조선총독부와 같은 집단의 행적에 중심을 두고 내용을 소설화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과 비인도적인 정책을 규탄하는 데 핵심을 두고, 개인적인 원망이나 단순한 민족적 울분의 토로에 흐르지 않는 절제성이 돋보인다.

 

 

 유주현은 2,000여 명의 역사적 고증, 한국ㆍ일본ㆍ중국ㆍ동남아에 이르는 광범한 무대, 입체감 있는 사건 배치로 한국 역사의 맥락을 조명하였다. 자주독립에 대한 민족적 저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패망하는 일제를 비판하고, 암흑과 울분과 질곡의 반세기 동안 어둠에 익혀온 시력이 밝은 빛 앞에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지성적 예견을 보이고 있다. 그의 역사소설은 이전의 역사소설에서 보이는 흥미위주의 창작과는 달리 충실한 역사상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변동의 내적인 역학관계를 형상화해야 한다는 역사소설의 본령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한국 문학사에 본격적인 기록문학의 한 장르를 확립시켰으며,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받았다. 작가 특유의 탄탄한 필력에 힘입은 재미있는 스토리 전개 역시 압권이다.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사 특히, 근대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물론 시대가 흘러가면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설의 내용과 상이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매우 정확한 사료에 근거를 하고 있다는 학계의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