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단편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
이문열(李文烈, 1948~ )의 단편소설로 1979년 <사람의 아들>로 제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2년 후인 1981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 전쟁의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한 젊은이가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과를 먹고 있는 다섯 군인과 마주친다. 여기서 작가는 한 군인의 눈빛을 심상치 않게 묘사하면서 그들이 주인공의 출생 내력과 연관이 있다는 암시를 던진다. 작가는 6. 25 전쟁의 상처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을 추적해 가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 과연 이상한 눈빛의 군인과 주인공은 어떤 관계이며, 주인공은 자신의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배경은 한국전쟁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만서라는 고아인데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정체 모를 원귀(寃鬼)를 만나게 된다. 물론 그 원귀는 전쟁터에서 죽은 만서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끝나게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산사(山寺)에서 자라난 ‘만서’라는 젊은이가 자신을 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만서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잃고 외딴 산사에서 키워졌다.
만서는 야릇한 느낌을 받으며 자신을 버린 친지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간다. 그는 알고 있는 주소로 가는 도중 5명의 군인을 만나게 된다. 꼭 탈영병 같은 남루한 군복, 며칠 동안 세수 않은 것 같은 꾀죄죄한 얼굴, 또 상당한 피로감과 굶주린 느낌을 갖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머니, 옷에 풋사과를 잔뜩 갖고, 한 사람은 게걸스럽게 먹으며 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그를 섬뜩하게 만들던 그들 중 ‘이마에 상처가 난 병사’ 하나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냥 지나친다.
만서는 끝내 장애인이 된 그의 어머니와 만난다. 어머니는 병들어 누워 있었고, 외삼촌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예상외로 그의 어머니는 친근히 맞아 주지만 그의 외삼촌은 귀찮다는 기색으로 그를 대했던 것이다. 이튿날 그는 다시 그 군인들을 만난다. 만서는 어제와는 다른 섬뜩함을 느끼며 그들을 지나치다 어제 자신을 쳐다보던 그 군인과 또 마주친다. 그는 더 오래 그를 쳐다본다. 그러나 역시 그들은 그냥 지나친다.
만서는 어머니께 이러한 사실을 말했지만, 어제도 오늘도 사과를 사러 군인들은 오질 않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그들을 찾으러 나가지만 그들은 증발한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옆 오두막에서 모두 지켜보던 할아버지께 물어보지만 그 역시 아무도 못 봤다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수박을 먹다가 그 할아버지로부터 한국전쟁 때 여기 있었던 참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다섯 명의 낙오병들이 배가 고파 풋사과를 먹으러 왔다가 그들에게 총이 없다는 것을 안 인민군들이 끌고 가 그들을 모두 총살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집으로 가자 만서는 어머니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는 그들 중 그를 빤히 쳐다본 이마에 상처가 난 남자가 그의 아버지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처음에 미군과 소련군이 38도선을 그었을 당시에는 단순 임시적인 조치에 불과하였다. 한편 한반도 내부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 및 건국동맹이 구성되었으나 미국과 소련의 문제충돌로 인해 국가로 승인 받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8.15 광복이 민족의 광복은 가져왔지만 결과적으로 민족의 분단을 초래하여,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완성되지 않았다. 일제의 노예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더 큰 고통이 우리 민족을 사로잡고야 말았다.
전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일본은 남일본과 북일본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애꿎은 우리나라만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이후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확신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군대는 남한을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형이 동생을 죽이고, 오빠가 누이의 가슴에 따발총을 쏘아대는 더러운 전쟁이 일어났다.
♣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없듯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과 신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한 사실이 명백하게 존재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품은 사람은 틀렸다고 간주하는 성향의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들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은 이 땅에서 없어지거나 죽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품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생각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동족을 죽이는 6. 25 전쟁이라는 침략 전쟁의 비극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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