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이야기

중경삼림(重慶森林)을 보고 돌아온 밤

by 언덕에서 2016. 2. 2.

 

영화평 :  중경삼림(重慶森林)을 보고 돌아온 밤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은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만든 1994년도 작품이다. 중경삼림은 ‘중경의 빌딩숲’이라는 뜻이다. 홍콩 침사츄이의 중경빌딩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의 여파로 영화 속 패스트푸드점 여종업원으로 나오는 왕비가 부른 크랜배리스의 <Dreams>가 높은 인기를 누렸다.

 중경(重慶 충칭)은 중국 남서부의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도시이다. 강의 지류를 이용한 수상수송뿐만 아니라 각지로의 연결이 뛰어난 교통의 중심지이다. 일본군과 한창 전쟁 중이던 1938년부터 45년까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주제가 때문에 유명한 그 `캘리포니아`도 안 나올 뿐더러, `중경`은 근처에조차 가지 않는다. 단지 좁고 칙칙한 빌딩 속에서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사람들로 가득찬 홍콩만이 그 배경이다.

 그런데 왜 영화에서는 배경과 전혀 다른 곳임에도 불구하고 중경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붙였을까? 작가는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사랑의 시작 이라는 주제뿐만이 아니라 1994년 홍콩의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는 방황과 무질서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임청하가 마약 밀매업자라는 점, 그리고 마약을 외국으로 옮겨달라고 청부한 사람이 서양인이고, 그들의 마약 밀매업을 원활히 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인도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아편전쟁을 생각할 수 있다. 영국과 중국과 인도의 삼각 관계 속에서 아편 거래와 중독이 성행화 되고, 그 후 중국의 패배로 인해 영국에게 철저히 속박되어 버린 계기가 된 전쟁. 1994년 홍콩은 화려한 일면 속에 아편전쟁 시기처럼 영국에 종속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영화 속의 홍콩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마약과 범죄 그리고 불법 체류자로 인한 범죄로 들끓고 있다.

 그렇지만 감독은 그 선상에서 멈추지 않고, 임청하가 서양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영국의 종속에서 벗어나고픈 소망을 담았다.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에 머무르지 않고 이들 홍콩인의 애국심을 키워주는 표지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두 개로 구성된다. 두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실연한 경찰. 그리고 둘 다 실연의 아픔을 잊게 하는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사복경찰 금성무는 도시를 있는 힘껏 달리고, 양조위는 자신의 집에서 그의 소유물(곰 인형, 금붕어, 비누, 젖은 옷)에 대고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5월 1일은 '경찰223(금성무 역)'의 생일이자 옛 애인인 아미와 헤어진 지 딱 한달이 되는 날이다. '경찰223'은 5월 1일이 유효기간인 파인애플을 30일 동안 사 모으고 그날이 되도록 아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기로 혼자 마음먹고 있었다. 한편 5월 1일은 마약 밀매업자인 임청하가 자신을 배신한 중개인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날이기도 하다. 5월1일까지 '경찰223'은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렸지만 옛 애인에게서는 감감무소식이고 실망한 그는 사 모은 파인애플을 다 먹어버리고 술집에 간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데 그때 들어오는 임청하를 만난다. 둘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이후 쉬고 싶다는 임청하를 호텔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쉬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기에 '경찰223'은 그녀의 피곤을 반영해주는 더러워진 신발을 벗겨 깨끗이 닦아놓은 후 떠난다. 그리고 '경찰223'은 스물다섯 살의 아침, 삐삐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한편 '경찰223'이 자주 가는 패스트푸드 점의 여점원 페이(왕정문 역)는 가게에서 미국 록그룹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크게 틀어놓고 캘리포니아로 떠날 꿈을 꾸는 발랄한 아가씨다. 순찰 경찰인 '경찰663(양조위 역)'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던 그녀는 그의 애인 스튜어디스가 가게에 맡겨둔 이별의 편지를 보게 된다. 그 후  페이는 경찰663이 없을 때면 그의 집으로 가 그 집에 남아있는 여자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자신의 집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던 경찰663은 옛애인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낮에 집에 들렀다가 페이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그는 페이가 옷장에 걸어둔 옷을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녀는 오지 않고, 패스트푸드점 주인이 페이가 맡긴 편지를 전해준다. 이별의 편지임을 직감한 경찰663은 읽어보지도 않은 채 휴지통에 버렸다가, 다시 돌아와 비에 젖은 편지를 말려서 읽는다. 그러나 그 편지는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스튜어디스가 되어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페이는 옛날의 그 가게로 찾아온다. 그곳에서 경찰 663이 경찰을 그만두고 그녀가 근무하던 가게의 주인이 되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임청하(마약중개자) - 그녀는 언제 비가 올 지 또 언제 햇빛이 눈을 따갑게 할 지 몰라 항상 선그라스에 레인코트를 입고 있다. 외국인들에 농락당한 홍콩인들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금성무(경찰223) - 실연당한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왕정문(햄버거 가게 알바, 이름은 페이) - 그녀는 양조위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멍청하도록 순수하지만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홍콩의 모습이다.

양조위(경찰663) - 집에는 옛사랑의 흔적들이 너무 많다. 얫애인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과 대화하는 것 이것은 그가 실연을 이기는 방법이다. 그녀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 밤거리, 이별의 편지, 삐삐, 그리고 노래 "california dreaming"

 

 이 영화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아픔, 상처, 실연, 사랑이 담겨있다. 바로  나, 너, 우리가 그곳에 서 있다.


 

 

 

 

 

 

 

 

 

 

 

 중경은 도시 이름이며 삼림은 수풀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 중경의 이야기란 뜻이다. 즉. 회색빛 빌딩 숲 사이에 벌어지는 인간미 가득한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에피소드 1,2,3으로 이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왕가위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기법을 써서 주인공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그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 장면들은 그런 뜻을 보여주는 의도이다.

 이 영화는 14회 홍콩 전영금상장 작품상, 감독상(왕가위), 남우주연상(양조위), 편집상 수상, 제31회 대만 금마장영화상 남우주연상(양조위)수상했다.

 

 

 

 

 좋은 영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보아도 새로운 해석을 하게 만든다.  다소 전위적인 느낌을 주는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시키느냐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해석을 아래의 운문으로 표현한 신현림 시인의 시도 좋았다.  

 

 

 

 

중경삼림을 보고 돌아온 밤

 

 

                                                             신현림

 

블루스가 정서라면 재즈는 양식이냐

블루스가 어머니라면 재즈는 자식의 롱다리냐

록재즈, 쿨재즈, 퓨전재즈, 재즈가 유행이군

너도 나도 배낭 너도 나도 썬글라스

유행은 즐겁지만 너무 쉽게 변하네 돈이 드네

휴식 없는 유행인 죽음이 오기까지

이 시대의 속도감을 견디기가 힘들군

 

왜 9월을 보며 전구알 같은 눈물을 흘리나

임청하의 가발만큼 진한 금발의 눈물을 흘린다고

겨울이 오지 않겠나 주름살이 다리미로 펴지겠나

늙어감을 천천히 슬퍼하게

 

아래층 여자가 또 교성을 지르는군 아아,

심란하네 아아 아파트 건물도 심란해서

마마스 앤 파파스의 " 캘리포니아 드림 "을 듣네

오늘 개봉한 "중경삼림"을 생각하지 역시 왕가위 감독이네

그래도 그의 "아비정전"이 좋아

감각의 성감대를 찌르고 핥고 부드럽게 매만지는

매혹적인 영화 볼 시간에 창 없는 시를 누가 읽나

열리지 않는 시를 누가 들여다보나

시가 제자리에 퍼져 앉은 기분이야

강렬하고 마음을 치는 시 시선이 열린 시가 그립네

열린 의식, 열린 세상, 열린 대문, 열린 지퍼

시도 때도 없이 지퍼는 닫아주게

 

"진실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만은 없다

이것은 동시에 흥미로워야 한다 "는

브레히트 말을 소처럼 되씹어보네

혼란스럽네 시 쓰는 일이 허무한 밤이네

 

 

- 시집<세기말 부르스. 1996(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