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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 <밀양(密陽)>

by 언덕에서 2015. 9. 17.

 

 

 

 

영화 <밀양(密陽)>

 

 

 

 


 

밀양에 신애(전도연)라는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내려와 새 삶을 시작한다. 밀양은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이며, 그곳에서 신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센터를 하는 종찬(송강호)이 신애의 곁에 머무르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홀로 버텨내려 한다. 그러다 아들은 유괴당하고 곧이어 시체가 되어 돌아오며 범인은 금방 잡힌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핵심 장면은 신애(전도연)가 아들 준(선정엽)이를 죽인 살인범 박도섭(조영진)을 교도소에서 면회하는 장면이다.


 

박도섭 :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거든예. 여, 교도소에 들어온 뒤로…….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됐심더. 하나님이 이 죄많은 인간에게 찾아와 주신 거지예.


신애는 말없이 박도섭을 쳐다본다. 박도섭은 믿음을 가진 사람답게 아주 평화롭고 안정되어 보인다.


신애   : (이윽고) ……. 그래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박도섭 : 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저한테,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신애   : 하나님이 …….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박도섭 :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슴니더. 그라고 나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심더. 잠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인제 아무 여한 없습니다.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사형이 되도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더. 정말로……. 장기기증까지 다 해 두었심더. 이 죄 많은 인간의 몸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거라 가치 있게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했심더.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았으이 이렇게 편합니다.  내 마음이. (가슴에 손을 얹는다.)


신애   : …….


박도섭 : 요새는 내가 기도로 눈 뜨고 기도로 눈 감습니다. 준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기도 마이 합니더. 빼놓지 않고 늘 합니더. 그런데 인제 이래 만나고 보이, 하나님이 역시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갑심더.



언제부터인가 신애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장면 바뀜


신애 : (자리에서 일어나며) 용서하고 싶어도 나는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하나님한테!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대요!


김집사 : (신애를 진정시키며 붙들며) 아이고, 와 이라노? 목사님 기도 중에…….  그래 하나님이 용서했으이까네……. 이선생도 용서해야지.


신애 : 이미 용서를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할 수 있겠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왜? 왜애?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다. 사이.


신애 : 이제…….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세요. 저 할 일이 많거든요.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부엌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들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 갑자기 부엌 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종찬이 놀라 달려간다.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되어”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살인범 박도섭의 말은 비수가 되어 신애의 심장을 파고든다. 신애는 박도섭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았지만 이미 박도섭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신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아들을 빼앗기고 용서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긴 신애의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은 <밀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장면이다.

 

 

 신애는 아들 준과 단 둘이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온다.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에게는 애인이 있었지만 신애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남편의 고향에서 아들과 살아가려고 한다. 이미 남편의 육신과 정신을 모두 잃은 신애에게서 아들마저 빼앗아 갈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게다가 살인범을 용서할 권리마저 빼앗아 갈 자격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  」

 영화 <밀양>은 유괴도 신앙도 광기도 언급하지만 어느 것도 다루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라는 단 한마디가 불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유괴라는 행위와 살해에 관심 없다. 오직 그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흐느낌과 구토와 떨리는 몸과 통곡과 광기를 보여줄 뿐이다. 그게 전부다.

 한 여인이 끔찍한 불행을 당했다는 말만 듣고, 우리는 그 여인의 오열과 통곡, 종교에 몰두한 뒤 갑자기 천사처럼 바뀐 얼굴, 그러다 다시 종교를 증오하고 미쳐가는 모습을 차례로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 방현석 <서사 패턴 959> 144 ~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