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중편소설 『소설 · 알렉산드리아 』
소설가·언론인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중편소설로 1965년 7월 [세대]지에 발표되었다. 원래 제목은 「(소설) 알렉산드리아」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는 데뷔 이전에도 지방신문사 주필로서 많은 글을 써 온 이병주의 공식적인 등단작으로, 당시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방대한 규모의 소설적 배경과 흥미로운 서사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병주 문학의 원형이자 그를 세상에 알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부모를 일찍 여읜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형은 공부를 잘해 동경 유학을 마치고 출세를 꿈꾸었고, 동생은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군사정부에 의해 형이 사상범으로 감옥에 투옥되면서 동생에게 편지를 써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갈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생은 독일인을 가운데 둔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법과 제도가 인간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역사의 한복판에 피어난 작가의 자의식 극복을 위한 분투와, 얼어붙은 감옥 속 유폐된 황제의 자유로운 사상과 철학, 열락의 땅 알렉산드리아에서 펼쳐지는 역사와 전쟁, 이데올로기를 관통하는 상상력과 서사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작자 자신의 옥중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허구화한 소설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서사구조적인 면에서 큰 기능을 하고 있는 옥중에서의 ‘형’의 편지는 작가 자신의 사상을 문자화·담론화로 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프린스 김’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카바레 안드로메타의 클라리넷 악사로 일하고 있다. 신라의 왕족이었던 경주 김 씨의 후손이라고 해서 그에게는 ‘왕자(프린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프린스 김에겐 다섯 살이 위인,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형이 있다.
형이 스무 살 되던 해, ‘나’가 열다섯 되던 해, 부모님은 모두 콜레라에 걸려 별세한다. 아버지 노릇을 하던 형마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면서 ‘나’는 부산의 외항선원 전용 카바레에서 밴드마스터를 하며 클라리넷을 불다가 프랑스 외항선원인 말셀 가브리엘을 따라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호텔 나폴레옹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말셀의 주선으로 호텔 사장과 친하게 되고 ‘나’의 연주 솜씨를 인정한 호텔 사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밴드에 ‘나’를 취직시킨다.
그곳 호텔과 카바레에서 ‘프린스 김’으로 불리는 ‘나’는 카바레의 무희 사라 엔젤이라는 매혹적인 스페인 여성을 알게 된다. 30대 중반의 여성 사라 엔젤은 거부(巨富)이며 스페인 게르니카 출신이다. 사라는 게르니카가 독일에 의해 폭격되면서 가족 모두를 잃었다.
‘나’는 독일인 한스도 사귀게 된다. 한스는 자신의 어린 동생을 죽인 독재자 히틀러의 앞잡이 엔드렛드를 찾아 알렉산드리아에까지 흘러왔다. 엔드렛드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체포망을 피해 숨어 다닌다. 한스는 사라 엔젤의 도움으로 15년 동안 추적해 온 엔드렛드를 카바레 안드로메타에서 만난다.
‘나’ 프린스 김과 한스, 사라 엔젤이 모인 장소에서 엔드렛드가 한스의 총에 의해 살해당하자 한스와 사라 엔젤은 체포되어 구속된다. 법정은 개인이 개인에게 복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검사의 논고와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개인의 억울함이라는 변호인의 논고가 충돌한다. 재판장은 그들에게 단죄를 유보하고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추방시킨다. 사라와 한스는 결혼하여 새로운 소알렉산드리아를 찾아 알렉산드리아를 떠나간다.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형은 한국의 감옥에 있고 나는 갈 곳이 없다.
1960년 4월 혁명 뒤 나라 곳곳에서는 교원노조가 결성되고, 이듬해에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혁명 검찰부를 구성하고 교원노조 운동을 용공으로 매도하며 소속 간부들을 잡아들인다. 이때 이병주는 교원노조 고문이라는 명목으로 잡혀 들어간다. 사실은 이병주가 주필로 있던 <국제신보>에 「조국의 부재(不在)」, 「통일에 민족 역량을 총집결하라」는 제목의 한반도 영세 중립국화를 주장한, 시대를 너무 앞질러 간 논설을 써서 싣는 바람에 걸려든 것이다. 이 일로 작가는 군사 정권의 이른바 혁명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을 복역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온다. 출소 직후 작가는 수감 생활을 하며 구상한 소설을 1주일 만에 원고지 5백여 장 분량의 중편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써낸다.
이 작품은 줄기차게 묻고 있다. 법률이 징치하지 못하는 개인의 원한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어쩌면 합목적적인 테러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 작품에는 서술자 ‘나’의 형을 비롯하여 프랑스인 말셀 가브리엘, 스페인 출신의 사라 엔젤, 독일인 한스 등은 모두 ‘형’의 편지를 읽고 듣는 수화자들이다. 그들 모두는 현대사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 이들 모두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탐색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게르니카와 아우슈비츠에서 있은 학살의 피해자로서 인간의 존립과 자유를 위협하는 과학과 정치적인 힘에 이들 주인공들은 저항한다. 사라와 한스의 결혼은 작가의 인간 구원의 은유적 제시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힘을 모아 원수를 갚은 후 소돔과 고모라인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서 뉴질랜드 근처의 한 섬으로 옮겨간다.
♣
이 작품에서 알렉산드리아는 이상향이며 행복을 나타내는 기호로 쓰였다. 현실에 순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천분에 만족하며 평범하게 산 동생은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온갖 지식을 섭렵하고 삶의 문제를 관념적으로 고뇌해 온 형은 감옥에서 알렉산드리아를 동경하며 산다는 설정 또한 암시적이다. '행복은 총체적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만 도달되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인생관이 엿보인다. 감옥에서 형이 동생에게 쓴 편지를 통하여 감옥에 갇힌 지식인이 감옥 밖에 있는 무식인보다 자유롭고 풍요롭다는 것을 작가는 역설한다. 즉 지식인은 고통에 처했을 때 자신을 그 고통에서 분리해 위로해 줄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들 줄 안다. 그러므로 고통에 결합된 하나의 자아를 가진 무지렁이보다 고통에의 내성이 더 강하다.
소설의 내용은 이미 진부해져 버렸을지 모르지만, 작가가 천착한 주제는 오히려 오늘날 더 새롭다. 인문학적 지식이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에 스스로 고통과 고독에의 길을 택하는 지식인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문해 보게 된다.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성란 단편소설 『별 모양의 얼룩』 (0) | 2016.01.12 |
---|---|
황석영 장편소설 『바리데기』 (0) | 2016.01.07 |
전영택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 (0) | 2015.12.22 |
이병주 단편소설 『예낭 풍물지』 (0) | 2015.12.17 |
전영택 단편소설 『화수분』 (0) | 2015.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