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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병주 단편소설 『예낭 풍물지』

by 언덕에서 2015. 12. 17.

 

이병주 단편소설 『예낭 풍물지』

 

소설가·언론인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중편소설로 1978년 작이며 [서울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기록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병주는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관계로 3년가량 옥고를 치른 후 1970년대 당시 사회 제도, 특히 사법 제도와 맞부딪치며 소설로써 저항했는데, 이 작품에는 그러한 이병주 소설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법 제도에 의해 삶이 파괴된 인물과 사법 제도에 반하여 자신의 철학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을 통해 법과 삶, 제도와 인간의 관계를 묻는다.

 사회 제도, 그중에서도 사법 제도는 엄격한 잣대로써 인간의 직접 행동을 규제하고 규범화한다. 이는 그만큼 사법 제도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법무부 차관의 검사장 시절 '별장 성접대 사건'이나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 사건에서 보듯이 때론 제도는 비합리적인 면모를 비릿하게 드러내며 온 국민의 관심을 유발한다. 이병주 작가 역시 법과 삶, 제도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예낭 풍물지』는 '예낭'이라는 도시의 풍물에 관한 기록'이라는 의미로, 한국전쟁, 4ㆍ19 혁명 등 한국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지나온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예낭이라는 도시는 상상 속의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인구 100만 명가량의 우리나라 남쪽의 항구 도시라는 표현을 미뤄볼 때 '부산'을 의미하는 듯하다. 작품 속에는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흐름을 막으려다 억울하게 징역살이한 주인공의 사연이 펼쳐진다. 이 소설은 법 제도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까지 정의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소설가 ,언론인 나림 이병주 (李炳注.1921-1992)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국가에 대죄를 지어 10년형을 받았는데 결핵으로 인해서 죽음이 임박하자 5년만 살고 옥문을 나섰다. 옥중 생활 중 여섯 살 딸은 급성폐렴으로 비명횡사하고 아내는  생계를 위해 다방에서 일하다 만난 남자의 품으로 떠났다. 지금은 칠순의 노모가 생선 장사를 하며 내 병시중 중이다.

 해방 후 좌익 세력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익이랄 것도 없는 이력을 지닌 나의 아버지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그로 인해 아버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했다. 4·19 혁명 직후 나는 유골 찾기 운동 참여를 권유받아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거둬 수습하겠다는 마음으로 조직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조직이 커지면서 정치적 색을 띠었다. 나는 조직이 좌경화되는 것에 대항하다 결국 징역 10년을 구형받았다. 조직의 정치적 이용을 막으려다 되레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폐병에 걸려 더는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판단 하에 5년 만에 조기 출옥하게 된 나는 고향인 항구 도시 예낭, 특히 상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굴 동네의 만물을 면밀히 살핀다.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이 야윌 대로 야위어 버린 나는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상실해 버린 마을 사람들 사이를 방황한다. 구멍가게 술집을 운영하며 홀로 사는 여성 윤 씨는 아내와 닮은 모습이다. 어느 날 윤 씨의 외동아들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윤 씨는 내 곁에서 노모의 임종을 지켜준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부닥치며 비로소 희망 그 저변의 것을 찾는다. 

 

 

 권력은 이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빛이 되지만 갖지 못하는 사람에겐 저주일 뿐이다. 권력은 사람을 죽인다. 비력자는 죽는다. 권력은 호화롭지만 비력자는 비참하다. 권력자의 정의와 비권력자의 정의는 다르다. 권력자는 역사를 무시해도 역사는 그를 무시하지 않는다. 비권력자는 역사에 구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역사는 비권력자를 돌보지 않는다. 역사의 눈은 불사의 눈이다. 죽어야 하는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눈이다. 그 점 결핵균은 위대하다. 적어도 죽음에의 계기를 가지고 있는 죽음은 권력자나 비력자를 공평하게 대한다. “법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는 말은 잠꼬대지만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진리다. 일체의 불평등을 구원하는 지혜는 죽음에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결핵균과 페어플레이를 할 것을 조약하고 있는 것이다.

- 예낭풍물지 <이병주 작품집>(지만지) 207 ~ 208쪽.

 몇 년 전, 국민을 아연실색게 하는 모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사건이 일어났다. 법은 그가 고발한 범죄보다 불법 도청한 자료를 공개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에게 징역을 선고했다. 법무부 차관의 검사장 시절 '별장 성접대 사건'도 그렇다. 반면 피해자가 실명까지 거론하며 고발한 사람들은 혐의 없음으로 처리되거나 제대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어디 한 두 건이겠는가.

 

 

 

 태양도 끝날 날이 있을까. 작가 이병주는 이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을 “태양도 끝날 날이 있다”로 끝맺는다. 감옥에서 나온 폐병환자인 주인공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주인공은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날, 나는 지구도 그 맥박이 멎을 것을 확신한다”며 비통해한다. 어머니의 부재는 곧 태양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의 주인공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그렇다.

 권력과 비권력, 민족과 반민족, 좌익과 우익 등 세상을 양분하는 이분법적 개념에 속하길 거부하던 이병주는 그러나 세상은 여지없이 둘로 나뉘고 현실은 권력자를 위한다며 소설을 통해 역설한다. 그가 주목한 제도와 인간의 관계는 이렇듯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었다.

 『예낭 풍물지』에서는 상실해 버린 인간이 끌어안을 수 있는 만물을 그리며 풍물지라는 형식을 빌렸다. ‘예낭’은 한국의 어느 항구 도시, 인구 200만의 도시라고 했으니 1970년대의 부산일 것이다. 이병주가 소설 속에서 그린 인간과 사회는 우리의 어제이며 오늘이다. 법 제도, 권력에서 소외당해 비애감을 짙게 드리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오늘날 소시민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결국 해답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추상적으로는 인간은 법 제도로 메우지 못할 무엇을 갖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제도를 만드는 이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통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직시하며, 오늘과 다를 미래를 꿈꾸며 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