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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석영 장편소설 『바리데기』

by 언덕에서 2016. 1. 7.

 

황석영 장편소설 『바리데기』 

 

 

 

황석영(黃晳暎.1943~ )의 장편소설로 2007년 발표되었다. 탈북 소녀 '바리'의 고난에 찬 여정과 세상의 고통을 한 몸으로 녹여내는 구원의 서사를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2007년 그해 ‘좋은 책’으로 선정되었다. 한국어판 출간 전에 영어ㆍ불어ㆍ독어ㆍ일어권으로 번역출간이 결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부산시의 변두리 우리 집 옆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 옆에 피난민 두 세대가 살고 있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다가 6.25때 피난 온 분들인데 형님 집이 앞에 위치했고 동생네 집이 뒤편에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두 세대주를 ‘함경도 아바이’라고 부르셨다. 이북에서 과수원을 운영했다는 형님 아바이 댁에는 자녀들이 꽤 많았다. 대략 7~8명은 족히 되었으리라 기억하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오누이가 유독 많이 싸웠다. 이 집의 셋째 아들은 나보다 네 살 위였는데 군제대 후 비운동권으로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덩치 건장한 이들 오누이가 싸울 때면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요란했으므로 집안의 어른인 이들의 아버지, 즉 ‘함경도 아바이’는 소란을 중지시키기 위해 큰 소리로 “이것들아! 뒈져라! 뒤져!”를 외치셨다. '뒈져라!'는 함경도 사투리는 표준말로 바꾸면 '죽어라!' 정도가 될 것이다. 이 가족 덕택에 함경도 사투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도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유년 시절 10년 이상을 그 분들과 이웃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나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가 연기하는 북한 사투리, 특히 함경도 사투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엉터리 발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바로 저거야!’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토크쇼 같은 것을 보면서였는데 작년에 탈북했다는 ‘한송이’라는 처녀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릴 적 10년 이상 들어왔던 오리지널 함경도 사투리를 다시 접할 수 있었다.

 황석영씨가 쓴 소설 「바리데기」의 대화 부분은 전체가 함경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다. 함경도 사투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이 읽어나가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소설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쌩뚱 맞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바리를 TV에서 보았던 탈북 처녀 ‘한송이’양으로 상정하면서 읽었다. 야무지고 싹싹하며 생활력 강하게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탈북소녀 한송이 양<사진출처 : 채널A>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80년대 중반 북한이다. 주인공 바리는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부모에 의해 숲속에 버려지지만, 풍산개 ‘흰둥이’가 다시 데려다놓는다. 버린 아이라고 ‘바리’라는 이름을 얻은 주인공은 심하게 앓고 난 뒤부터 영혼, 귀신, 짐승, 벙어리 등과도 소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소련이 무너지고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의 정치경제는 급속히 나빠지고 기근과 홍수로 죽는 이들이 늘어난다. 중국과 무역업을 하던 외삼촌은 결손이 나자 몰래 탈북해 남한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린다. 외삼촌 때문에 아버지는 모진 고초를 당하고, 어머니와 언니들도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면서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바리는 조선족 ‘소룡 아저씨’의 도움으로 할머니, ‘현이’ 언니, ‘칠성이’(흰둥이 새끼로 영혼들을 만나는 데 안내자 역할을 하는 개)와 두만강을 건넌 뒤 아버지와 재회한다. 현이가 얼어 죽고 가족을 찾으러 떠난 아버지는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할머니까지 얼어 죽게 된다. 바리 역시 북으로 들어가 식구들을 찾아보지만, 굶어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 귀신들만을 목격하고 산불로 칠성이마저 잃고서 혼자가 된다.

 이후 바리는 연길의 발마사지 업소에 취직해 안마를 배운다. 바리는 얼굴과 발만 봐도 그 사람의 삶아온 이력이나 아픈 곳을 꿰뚫는 신통력을 발휘해서 손님을 치료한다. 동료 ‘샹’ 부부가 따롄(大蓮)에 안마업소를 개업해 동행하지만, 결국 빚 때문에 샹과 함께  조직폭력배에게 팔려 밀항선을 타게 된다. 바리는 한 달 이상을 밀항선에 갇혀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인신매매단의 매질과 성폭력, 굶주림이 난무하는 처참한 상황을 겪는다. 

 생지옥을 겪고 런던에 도착한 뒤 샹 언니는 성매매 업소에 팔려가고, 바리는 식당일을 하다가 발마사지 업소에 취직한다. 빈민가 연립에서 살게 된 바리는 건물을 관리하는 파키스탄인 무슬림인 ‘압둘’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알리’를 만나게 된다. 발마사지 단골인 스리랑카 혼혈 여인‘사라’의 소개로 바리는 상류층 부인 ‘에밀리’의 집으로 출장 발마사지를 나가게 된다. 신통력으로 에밀리의 과거사와 이민족 역사를 알게 되고, 영매로서 서로의 능력을 알아본 에밀리와 바리는 가까워진다. 한편 압둘 할아버지 도움으로 불법 체류자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는 동안 바리와 알리는 가까워진다. 알리와 결혼해 안정기에 접어들지만 9.11 테러와 아프간 전쟁이 터진다. 무슬림이 설자리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알리의 동생 ‘우스만’은 가족 몰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알카에다가 있는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알리 역시 파키스탄으로 떠나면서 긴 이별이 시작되고, 바리는 딸 ‘홀리야 순이’를 출산한다. 그녀는 시공을 초월해 영혼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스만이 죽은 사실과 알리가 쿠바 관따나모 수용소에서 모진 고생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 딸 홀리야는 돌을 넘길 무렵 마약중독과 매춘의 수렁에 바진 샹의 잘못으로 숨지게 된다.

 그간 숱한 시련을 이겨낸 주인공도 이 커다란 절망 앞에서는 식음을 전폐하게 된다.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죽은 할머니와 칠성이의 안내로 생명수를 구하고자 서천 길로 떠난다. 현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험난한 여정 끝에 저승을 지나고 마왕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모든 원혼들과 대면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해원(解寃)해주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간신히 몸과 마음을 추스른 바리는 오랜 포로생활 끝에 귀환한 알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둘째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알리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바리는 알리와의 외출에서 테러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북한 어린이 사진>

 

 전통설화에서 ‘바리데기’는 오귀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또 다시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려진다. 병든 부모가 약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나머지 딸들은 약을 구해올 것을 거절하자 바리데기는 저세상까지 가 온갖 고생 끝에 서천의 영약(생명수)을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린다. 고단한 삶을 넘어 영생을 원하는 대중의 욕구가, 시련을 극복한 효녀의 성취담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후 바리데기는 사자(死者)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오구2신으로서 무당의 원형으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이 소설 '바리데기'는 피카레스크 형식(16~17세기 스페인 소설로 무직자·건달·악한의 떠돌이생활을 다룸)을 활용해 국경 너머로까지 확장되는 모험을 그려내면서 지구화의 국면과 주체들의 삶을 엮어가고 있다. 집중도가 뛰어난 전반부에 비해 바리가 해외로 나간 후반부에서는 에피소드들이 제대로 엮이지 못한 문제가 드러나지만 1990년대 이후 서사의 약화란 문제를 돌파하면서 한국문학의 현재를 대표하는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청진에서 태어난 주인공 바리는 영혼이나 짐승과도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소녀로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한다. 온갖 고생 끝에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자마자 9.11 테러와 아프간 전쟁이 터지고, 남편은 동생을 찾아 전쟁터로 떠난다. 파키스탄 청년 알리와 바리의 아이 '홀리야 순이'는 돌을 넘길 무렵 바리의 중국인 친구의 잘못으로 숨진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용서와 구원의 ‘생명수’를 찾아가는 전통설화 속의 '바리'처럼, 소설 속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반도와 전 세계에 닥쳐 있는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21세기 이주와 분열을 소재로 전쟁과 국경, 인종과 종교,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신자유주의3 그늘을 파헤치는 동시에, 증오로 갈라지고 상처받은 인류를 위로하고 구원의 길을 모색한다.

 

 

 

 

 

  1.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 MC에 의하면 양강도 혜산 출신인 한송이양은 우리 나이로 올해 21살인데 2014년 탈북했다.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밀수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중국에서 입수한 남한의 한류를 알면서 북한의 실상에 회의를 느꼈고 '소녀시대'를 만나기 위해서 가족들을 남겨두고 단신으로 탈북했다고 한다.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며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생활력과 승부욕이 매우 강해 보였다. [본문으로]
  2. 오구굿에서, 죽은 사람의 넋을 저승에 보낼 때에 무당이 부르는 노래 [본문으로]
  3. 「1」자유방임적인 19세기 자유주의가 가지는 결함을 인정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에 의한 사회 정책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려는 사상.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이상주의적 개인주의를 기조로 자본주의의 자유 기업의 전통을 고수한다.「2」20세기 이후 다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지양하고 자유로운 경쟁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사상.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