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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파트릭 모디아노 장편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Rue Des Boutiques Obscures)』

by 언덕에서 2015. 12. 11.

 

 

파트릭 모디아노 장편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Rue Des Boutiques Obscures)』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1(Patrick Modiano, 1945 ~ )의 장편소설로 1978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기 롤랑’은 10년 전에 기억을 모두 상실해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다. 깡그리 기억을 상실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의 자신이 누구였는지 다시 찾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기 롤랑 역시 지극히 파편적이고 막연한 단서에 의존해가며 과거의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까지다. 파리의 어느 후미진 골목을 걸어가던 발자국 소리들, 어두운 창문을 통해 바깥을 응시하던 불안한 시선,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불온한 공기가 떠돌던 시대의 불확실성이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오는 소설이기도 하다.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과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과거의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기억상실로 지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됐다면 과연 지금의 ‘나’는 온전한 ‘나’일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순간순간이 모여 현재의 내가 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않는가? 이 소설은 기 롤랑이 어렵사리 찾아낸 과거를 통해 애잔하고 서글픈 그 시간들을 분명하게 들여다보도록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흥신소에서 탐정 일을 하다 퇴역한 주인공 ‘기 롤랑’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자신에 대한 존재 증명을 상실해버린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벌써 나의 삶을 다 살았고 이제는 어느 토요일 저녁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떠돌고 있는 유령에 불과했다"라고 쓸쓸히 읊조린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유일한 실마리는 한 장의 귀 떨어진 사진과 부고(訃告). 그것을 단서로 그는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 기억 속에서 한편으로는 뚜렷해지면서도 한편으로 는 더욱 불확실해지는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대면한다.

 그 과정에서 받은 사진들을 토대로 기 롤랑은 자신이 차례로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 남미 사람 페드로, 페드로 맥케부아, 지미 페드로 스테른 등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며, 그와 드니즈라는 여성 그리고 프레디와 게이 오를로프라는 여성 등 남녀 네 사람이 므제브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기 롤랑은 망수르라는 사진작가를 통해 드니즈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과거의 단서들을 추적하면서 자신일지도 모를 이름들을 듣게 될 때마다 마치 정말 자신이 그 인물이었다고 확신하며 조금씩 과거의 파편들의 모자이크를 맞춰나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미 혹은 페드로, 스테른 혹은 맥케부아 중 어느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경마기수인 앙드레 빌드메르를 만나서 페드로 맥케부아라고 불렸던 기 롤랑의 과거가 일정 부분 밝혀지게 된다. 기 롤랑은 드니즈, 게이 오를로프, 프레디와 함께 므제브로 갔으며, 그곳에서 기 롤랑과 드니즈 둘이 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이들을 도와주겠다는 두 명의 인물들에게 속아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 롤랑은 니스로 내려간 위트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위트는 한 편지에서 기 롤랑에게 이렇게 적고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이후 기 롤랑은 기억 찾기의 마지막 시도를 해보기로 작정하는데,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로마에 있는 나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가볼 필요가 있었다”라고 기 롤랑이 생각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 도는 문장들, 낯선 지명과 거리, 주인공인 기 롤랑 말고는 여러 인물이 잠깐씩 등장했다가 사라지기에 등장인물을 메모하면서 읽지 않으면 스토리를 놓치기 일쑤다. 읽으면서 앞서 읽고 지나간 줄거리조차 세세히 기억하기 힘들다.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인간의 뇌는 사는 동안 경험한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물며 큰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경우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기 롤랑이 과거 시간 속으로 떠난 여정에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따라서 지극히 파편화된 잔상들을 조합해 하나의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지난하다. 기 롤랑처럼 기억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억의 편린들을 이어 붙이고 다듬어 하나의 완성된 기록 필름처럼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무튼 기 롤랑은 지난 시절 자신과 연관됐던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파편화되고 불확실한 기억들을 환기시키고 조합한 결과 한때 자신이 도미니카공화국 파리 영사관에서 일했던 페드로 맥케부아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드니즈라는 매력적인 애인이 있었으며, 스위스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녀와 헤어지게 되고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게 됐음을 알게 된다. 다만 기 롤랑은 과거의 인물 페드로 맥케부아가 진정 자신이었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할 뿐더러, 어렵사리 찾아낸 과거가 기대만큼 환희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깨닫는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존재하지만,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란 사실을 넌지시 일깨운다.

 

 

 "기억의 예술을 통해 표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운명을 소환하고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현실을 드러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흥신소의 퇴역 탐정인 작중 화자는 조악한 단서 몇 가지에 의지해 마치 다른 인물의 뒤를 밟듯 낯선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탐정소설의 외형을 입고 소멸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만이 이 소설의 전부가 아니다. 2차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 모든 과거를 상실한 세대로 자란 모디아노는 이 책을 통해 ‘기억 상실’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의 한 단면을,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멸한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악몽 속에서 잊어버린 대전(大戰)의 경험을 주제로 프루스트가 말한 존재의 근원으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특유의 신비하고 몽상적인 언어로 탐색해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결과적으로 파트릭 모디아노는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시키고 나치 점령기의 생활 세계를 드러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을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이렇게 서평을 적는 일도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일부인지 모르겠다. 

 

 

 

 

 

  1. 1945년 프랑스 파리의 블로뉴 비양쿠르에서 태어나 유대계 이탈리아인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무명 영화배우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상당 부분을 기숙학교에서 보냈는데 이 경험이 훗날 모디아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5세 때 어머니의 친구이자 유명 소설가인 레몽 크노를 만나 문단의 저명인사들을 알게 되고, 이후 1963년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대신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5년 후인 1968년 첫 소설 《에투알 광장》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 작품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았다. 이후 글쓰기에만 전념해 《외곽도로》로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 《슬픈 빌라》로 리브레상을 받았고, 19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1984년과 2000년에는 그의 전 작품으로 각각 프랑스 피에르드 모나코상과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았다. 50년간 30여 편의 장편을 썼으며 《슬픈 빌라》, 《청춘시절》, 《8월의 일요일들》, 《잃어버린 대학》 등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모디아노 문학의 키워드로는 ‘기억’과 ‘시간’이 주로 꼽힌다.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비롯해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우리 아빠는 엉뚱해》, 《슬픈 빌라》, 《아득한 기억의 저편》 등 10여 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