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 장편소설『어떤 미소(UN Certain Sourire)』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1935∼2004)의 장편소설로 1956년 간행되었다. 심리 묘사에 있어 감미로운 정감을 깃들이게 하면서도 사랑의 파국이나 작중 인물의 고독감 등을 간결한 필치로 묘사하여 심리소설의 대가로 꼽히는 사강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연상의 유부남을 사랑하게 된 어느 여대생의 이야기다. 남녀 몇 쌍의 갈등을 주제로, 젊은이들의 기분과 젊은 세대의 호흡을 다뤘을 뿐 아니라 전후의 파리 청춘의 한 타입을 여실히 그려냄으로써 성공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부인을 뒀지만, 다른 여자들과 연애를 하며 그 연애를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바람둥이 남자 뤼크를 사랑하는 여주인공 도미니크는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겪는다. 스무 살, 아직 인생을 잘 모를 나이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에 빠져드는 도미니크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의 남자는 줄곧 냉소적이다. 현재의 연애를 즐기고, 아름다운 도미니크의 몸과 총명함을 사랑하지만, 그것이 결코, ‘정말 너무 사랑한다’는 감정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평론가들은 사강이 쓴 작품들의 제목은 모호하면서도 암시적이라는 것이라고 이구일성으로 평한다. 경탄스러울 만큼 작품에 꼭 들어맞으면서도 동시에 한없는 여운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모두 정확한 말이면서도 아리송한 말들이다. 예를 들어 "태양의 소리"라는 말은 예술적인 센스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곤란한 모호한 표현이다. 태양에게는 소리가 없겠지만, 시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천체들이 돌아가면서 내는 듯한 우주의 소리를 상상하고, 혹은 여름 한낮의 매미 소리를 연상한다. 사강의 문학에서도 그런 모호성이 기묘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단지 표현뿐만이 아니고 행복 추구와 고독이 어울리며 빚어내는 모호성이 사강의 작품 도처에서 느껴진다. 이런 모호성에 대한 사강의 감각은 조직적으로 개발되지 않고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그녀의 고독감은 노곤하고 부드럽고, 이에 따르는 슬픔은 권태로우면서도 아늑하며 아름답기조차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르본 대학에 다니는 도미니크는 어느 날 같은 학교 학생인 애인으로부터 그의 삼촌 뤼크를 소개받는다. 뤼크는 프랑수아즈라는 미모의 아내를 둔 40대 사업가다.
두 사람은 그날로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들고, 도미니크는 프랑수아즈와도 친하게 지내며 뤼크와 밀회를 계속한다. 여름 방학이 되자 뤼크와 도미니크는 피서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격렬한 육체관계를 갖게 된다.
도미니크는 뤼크에게 점점 빠져 들어가 헤어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파리로 돌아온 뤼크는 도미니크를 시큰둥하게 대하다가 드디어 결별 선언을 하고 아내 곁으로 돌아간다. 뤼크에 있어서 도미니크와의 연애는 심심풀이 땅콩에 불과했는데, 도미니크가 너무 진지한 태도로 나오자 그만 덜컥 겁이 났다.
실연의 상처 때문에 고민하는 도미니크를 오히려 프랑수아즈가 위로해주고, 도미니크는 서서히 실연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게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1954년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로 전 세계 독자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 데뷔작이 워낙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탓에 독자와 평론가들은 그녀의 다음 작품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고, 사강 역시 정신적 압박을 느꼈던지 차기작을 이 년 동안이나 공들여 구상했다. 그렇게 하여 발표된 작품이 바로 『어떤 미소』이다. 다행히 이 작품 역시 데뷔작만큼이나 큰 사랑을 받았고,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슬픔이여 안녕』보다 더 훌륭하게 평가했다. 2년 뒤인 1958년 장 네귈레스코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젊은 처녀와 중년 유부남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도 뻔한 멜로드라마임에도 사강은 절제 있는 문장과 정확한 심리묘사로 흥미 있는 소설을 만들었다. 이 점이 사강의 소설이 갖는 매력인데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거꾸로 20대 총각과 40대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뤄 또 다시 비슷한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는 소설의 재미는 소재에 있지 않고 작가의 ‘입심’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른바 통속적인 소재를 갖고 본격 소설적 품위를 살린 사강만의 재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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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기 소설로 절정의 작가가 되었던 사강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치며 점점 황폐해져 갔다.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정신병원 입원, 나날이 술로 지새우는 생활이 거듭되면서 도박장 출입이 잦아졌고 파산했다. 프랑스 도박장에는 5년간 출입 금지 선고를 받자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까지 도박 원정을 갈만큼 망가진 그녀는 결국 빚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 하지만 50대에 두 번씩이나 마약복용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그녀 식의 당당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4년 9월 24일, 노르망디에 있는 옹플뢰르 병원에서 심장병과 폐혈전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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