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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모파상 단편소설 『두 친구(Deux Amis)』

by 언덕에서 2015. 12. 1.

 

 

모파상 단편소설 『두 친구(Deux Amis)』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의 단편소설로 1882년 발표되었다. 사람들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실은 행복을 추구하고 이상을 실현하는 바탕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그러한 일상마저 누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지극히 작은 일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  

 이 작품은 전쟁으로 인한 일상적 삶의 파괴를 그리면서, 그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쪽으로 치닫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폭력의 정체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만든다. 변명이 불가능한 상황,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의 냉혹함, 그물망에 들어 있던 물고기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을 대조해 보여 주는 것 등에서 작가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다.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던 모파상은 1870년 보불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종전 후에는 플로베르의 소개로 여러 문인과 친분을 쌓았으며, 졸라가 주축이 된 자연주의 작품집 『메당의 저녁』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하여 작가 역량을 인정받았다. 등단 이후 10년간 3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써내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흔히 자연주의 작가로 소개되나, 페시미즘의 정서를 시적인 문체와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해 낸 인물이다. 신경 질환을 앓던 모파상은 1892년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하고 1년 뒤 파리 교외에서 숨을 거두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보불전쟁 중에 포위되어 있는 파리를 거닐던 시계상 모리소는 평소에 낚시터에서 친구 사이로 지내던 소바주를 만난다. 둘은 침울한 세태를 한탄하며 예전에 낚시터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런 얘기 끝에 술을 한 잔 하자고 서로 제의하게 되고 둘은 많은 술을 마시게 된다. 술김에 소바주는, 지금은 프러시아 인에게 점령된 낚시터로 갈 것을 제의하고 모리소는 그에 동의한다. 소바주가 잘 아는 대령에게 통행증을 얻은 후 두 사람은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낚시터로 가서 예전처럼 즐거이 낚시를 한다. 이상하게도 물고기가 잘 잡히는 가운데 그들은 정치와 전쟁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지만 결국 프러시아 인에게 체포되고 프러시아 장교는 그들을 스파이로 단정하여 암호를 말하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는 둘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 결과 이 둘은 프러시아 장교의 명령으로 총살당해 강물에 버려지고 프러시아 장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들이 잡은 물고기를 요리하라고 명령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보불전쟁1이고, 공간적 배경은 노르망디가 아니라 파리 근교이다. 보불 전쟁 당시, 프러시아군에 의해 포위된 파리에 거주하는 모리스 씨는 전쟁 전에 함께 낚시를 즐기던 소바주 씨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한 잔 술에 취한 이들은 프랑스군과 프러시아군이 대치하고 있는 센 강으로 함께 낚시를 가서 프러시아군에게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다. 모파상은 이들을 통해 인간의 조그만 행복을 파괴하는 전쟁을 고발한다. 또한 이러한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위정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두 친구가 낚시 도중에 나누는 대화는 이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작품은 전쟁으로 인한 일상적 삶의 파괴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쪽으로 치닫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폭력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한다.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이상을 실현시킨다. 일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 행위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전쟁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상의 행복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 '두 친구'는 전쟁이 한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적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시키는가를 잘 보여 준다. 변명이 불가능한 상황,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의 냉혹함, 그물망에 들어 있던 물고기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을 대조해 보여 주는 기법 등에서 이 작품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다.  

 

♣ 

 

 모파상의 수많은 단편 중에도 해피엔딩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비관주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그가 속하는 문학사조, 즉 자연주의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모파상은 항상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동정도 비난도 없이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들의 생을 추적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냉소적인 시각과 조롱조의 어투는 모파상의 비관주의가 사조적인 특징 이상의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 글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전쟁 상황과 관련하여 인간은 사회에 종속된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으며조그만 진실을 폭로하는 모파상의 태도는 지극히 담담하며 철저한 보여주기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보여주기란 작가의 의도나 주관을 철저히 숨기고 객관적으로 진술함으로써 모든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기법이다.

 작가가 등장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건과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전쟁이 갖는 비정성과 비극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1.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또는 보불전쟁(普佛戰爭)은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하여 독일 통일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목적으로 일으킨,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의 전쟁이다. 표면상으로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먼저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는 예수회의 교묘한 책동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회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로마 가톨릭 교황권의 위축을 우려하여 전쟁을 사주했다.[7]이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1871년 1월, 파리 시 교외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제국의 성립을 선포하고, 프로이센 국왕이었던 빌헬름 1세가 초대 독일 제국 황제로 추대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외에 독일은 알자스 및 로렌 지방을 획득하였으며 많은 전쟁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쟁 후 독일-프랑스 관계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까지 적대적인 사이가 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