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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장편소설 『빙점(氷点)』

by 언덕에서 2015. 11. 24.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장편소설 『빙점() 

 

 

 

일본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1922 ~ 1999)의 장편소설로 1964년 발표되었다. 무명작가를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작품으로, 아야코가 1964년 일본 [아사히신문 1천만 엔 현상공모]에 당선됨으로써 일본 문단에 쓰나미를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이 소설 『빙점』은 그리스도교의 ‘원죄의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인간의 원죄의식과 죄의식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와 함께 ‘용서’ ‘증오’ ‘복수’ 등 인간의 반사회적이며 이기적인 내면이 작품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다. 이 작품은 뭔가 삼류소설적인 드라마 같은 줄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 내면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죄를 짊어지고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원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원죄의식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류에게 대물림된 죄의식이다. 요코 또한 유괴살인범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는다.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작가의 의도를 따르자면 이는 요코의 잘못이 아닌 대물림일 뿐이다. ‘원죄의식’ 속에 요코는 괴로워하고 동시에 이러한 ‘원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코의 마음속에 이러한 빙점이 있듯이 소설의 초점은 ‘요코’를 그 중심에 놓고 있다. 요코는 자신의 ‘원죄의식’을 속죄해 줄 ‘자신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권위자인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빙점』는 ‘원죄의식’과 함께 ‘인간은 어디까지 타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또한 사랑의 한계를 엿볼 수도 있다.

 

▲ 나쓰에는 입양한 딸 요코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증오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사진은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빙점' 의 한 장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 홋카이도()의 아사히가와()가 소설의 무대이다.

 평상시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인격자인 병원장 게이조는 그의 아내 나쓰에와 안과 의사인 무라이의 불륜이 행해지는 사이, 딸 루리코가 유괴, 살해당하는 사건을 맞는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쓰에가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양녀를 키우자는 요청에 그는 요코를 데려와 키우게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요코는 딸을 살해한 범인의 딸이었다(우연이 만든 줄거리는 개연성이 없고 핍진성 또한 약해 보인다). 게이조는 이를 숨기고 아내의 불륜에 대한 배신, 증오와 복수로, 양녀 요코를 키우게 한다. 나쓰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딸 루리코에 대한 애정을 담아 요코를 애지중지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남편의 다이어리에 적힌 요코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요코를 증오의 대상으로 구박하고 죽이고자 하지만 그만둔다. 그러한 과정에서 요코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학대를 참고 견디며 아름답게 성장한다. 그러한 모습에 반한 오빠 친구 기타하라의 구애를 받자, 나쓰에는 요코가 유괴살해범의 딸임을 고백하고 결혼을 막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요코는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음독, 혼수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친구에 의해 유괴살인범의 딸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나쓰에는 속죄의 눈물을 쏟는다.

 

 

영화 [氷点 81: 前後完結篇, Freezing Point], 1981

 

 

 문제를 하나 내보도록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일본소설은 무엇일까? 모두들 정답으로 대부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하나를 들 것이다.

 틀렸다. 

 정답은 지금 소개한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이다. 이 소설은 국내외 작품 모두를 통틀어도 해방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계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65년 처음 출간된 이후에 2년 동안 한 번도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고, 이후에도 2011년까지 40회 이상 재출간된 작품이다. 한때는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미우라 아야코 소설이 5개 이상 포진하던 적도 있었고 아직까지도 일본 작가 중에서는 출간 횟수, 판매 부수에 있어서 미우라 아야코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훨씬 앞서고 있다.  

 미우라 아야코가 몸소 실천한 ‘타인을 위한 헌신’의 배경에는 바로 ‘그리스도교 정신’이 있다. 그리스도교 교인이 전체 인구의 2% 미만에 불과한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에 투신한다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스도교 정신’에 투철했고,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퇴폐한 일본(사실상 모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우라 아야코는 『빙점』에 앞서 등단한 경력이 있긴 했지만, 전업 작가라고 하기에는 뚜렷한 활동을 선보이지 않았다. 본래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가, 일본의 군국주의적 교육에 회의를 품고 교편을 내려놓았다. 그 후 폐결핵이 발병하여 긴 요양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어렸을 적 친구인 마에가와 다다시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고 마침내 천주교 영세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십수 년 동안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평생의 반려인 미우라 미쓰요와 결혼식을 올린다. 

 어쨌든 『빙점』은 현상 공모에서 대상으로 뽑혔고, <아사히신문>에 연재되는 동안에도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년 후, 『빙점』 연재물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70만 부를 팔아 치우며 명실공히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미우라 아야코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과 엄청난 인세를 모두 거머쥔다. 그런데 그녀는 그 모든 돈을 일신을 위해 투자하기는커녕, 대부분 자선하는 데 사용한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쓴 돈이라고는 입원비로 생긴 빚을 갚는 게 고작이었다.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요코의 마음속에도 빙점이 있었다.”

 제목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고, 요코의 ‘원죄의식’과 그 ‘죄의식’이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인간을 얼어붙게 만드는 빙점. 그 안에 사랑, 원망, 증오, 복수, 용서 등이 살아 있으며, 인간 누구에게나 이러한 빙점은 존재한다.

 과거 문둥병이 그러했듯이 지금까지도 불치의 병을 하늘이 내린 형벌로 본다든지, 지구의 종말로 주장하며 그것을 인간 개개인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신의 응징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주장은 대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기 위하여 각자의 죄 즉, '인간의 원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죄를 따진다면 대개의 병의 경우는 병균이 죄이고, 살인이나 강도 등의 경우라면 개인을 죄에 빠뜨리도록 만든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체제가 죄다. 미우라 아야코는 그리스도교 신자답게 그 죄의 원인을 인간의 원죄에서 찾고 있다. 논리적인 적합성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그리스도교인이 2%도 되지 않는 일본에서 이러한 울림을 줄 수 있었던 점은 놀랍다. 그들은 군국주의라는 미명 하에 한 시절 지구촌을 고통 속으로 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빙점』에 대한 그들의 이러한 열광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 시해사건', ‘위안부 사건’, ‘관동대학살’, ‘난징대학살’, ‘조선인 강제노역’, ‘만주군의 생체실험’ 등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대다수 일본 국민이 침묵하고 있는 점도 놀랍다. 

 

 

 

 

  1. 三浦綾子 (1922 ~ 1999) 일본 아사히가와 출생. 시립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24세에 폐결핵이 발병하여 교사직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요양생활을 하였으나 척추 카리에스가 발병하여 13년간의 투병생활을 하였다. 1959년에 미우라 미스요와 결혼하였으며, 1946년에 아사히 신문사 1천만 엔 현상 소설에 『빙점』이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살며시 생각하며』 등 다수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