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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다시 만날 때까지

by 언덕에서 2015. 11. 6.

 

 

 

다시 만날 때까지

 

 

 

 

 

 

  

영화나 다큐멘터리, 유명작가의 사진첩 그리고 우리가 소통하는 블로그에서도 아름다운 사찰이나 성당, 교회의 모습을 자주 접합니다. 이런 건물을 주제로 해서 펴낸 책도 있습니다. 저는 전국을 돌며 유서 깊은 절, 교회, 성당을 카메라에 담고 이 건물들이 가진 의미나 내력을 한 권의 책으로 낼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제 마음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분이 먼저 그런 내용의 책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 http://blog.daum.net/yoont3/11300297 ).

 저자는 모 지방신문의 문화부 종교 담당 기자였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회현상을 접하는 직업을 가진 기자로서 보기 드문 시각이 존경스러울 정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제가 보아두었던 대상의 반 정도만 선정하여 책을 내었기 때문에 요즘 저는 꺼진 그 계획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와 친한 분 중에 유독 좋은 사진을 찍는 분이 계십니다. 원주에 계신 그 분의 사진을 보면서 '실제 풍경은 사진만큼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곤 합니다. 사진 찍는 이의 반듯한 마음이 그렇게 좋은 장면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지요. 언젠가 여유가 주어지면 그분께 사진을 부탁하고 저는 영성적인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붙여 한 권의 책을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은 제 블로그에 자주 오셔서 제게 많은 의견을 주시니 이 글을 읽고 난 후에 답을 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경남 진주시 외곽에 있는, 그러니까 세인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성당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http://blog.daum.net/yoont3/11300441). 진주시 외곽인 문산읍이라는 시골에 위치한 이 성당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도 등재된 매우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천주교 조선교구는 조선 말기 천주교인들을 탄압하던 찰방이라는 관공서 건물과 그 터를 구입하여 성당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제가 이곳을 최초에 방문한 것은 정확히 5년 전이었고 이후 우기인 여름철에 방문한 기억도 있습니다. 이 성당을 알게 된 것은 제가 무슨 대단한 심미안이 있어서라기보다 친구의 부모님이 근처에 사시고 이 성당에 다니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지난 3일, 독감에 시달리던 저는 이 성당을 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이 별세하셨고 장례미사를 장지1(葬地)인 이곳에서 거행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형식이든 모든 장례식은 장엄하고 그것을 목격한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을 죄다 경험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까칠한 아버지와 선하기 짝이 없는 학자 아들은 이별을 앞에 두고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 로널드 드위킨2(Ronald Dworkin)은 우리가 직면하는 한계와 역경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율성과 자유를 유지하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합니다.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욕심이 많은 것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 이후에는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과 명예 또한 부질없음을 알고 또 느낍니다. 그리고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주책없는 저는 비교적 호상3(好喪)인 남의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종류의 이별이든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태어나 들꽃처럼 살다가 일기장 한 장 남기지 않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방식의 삶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유명해서 자서전을 남기건 않건 간에 한 사람의 생애는 “태어나 살았다 죽었다”라는 세 마디 단어로는 요약되지 않는 독특한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이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의 삶이나 스토리는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 한 인간의 이야기도 끝납니다.

 그래서 가족과 화해하며 떠난 분이 대단해보였고 담담해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연이어 통곡하던 아들인 제 친구의 모습도 좋아보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나 그는, 한 편의 이야기를 남기고 떠납니다.

 

 

 

 

  1. 장사하여 시체를 묻는 땅. [본문으로]
  2. 세계적인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은 미국 북동부의 로드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법학과와 하버드 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했다. 러니드 핸드 판사의 서기를 거쳐 설리번앤드크롬웰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서 강의하면서 학계로 진출했다. 1969년 스승이었던 하트(H. L. A. Hart) 교수의 후임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후 런던 대학교(UCL)와 뉴욕 대학교(NYU)에서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는 출세작인 『법과 권리(Taking Rights Seriously)』(‘전후 100대 저서’에 선정)를 비롯, 『법의 제국(Law’s Empire)』, 『생명의 지배 영역(Life’s Dominion)』, 『자유주의적 평등(Sovereign Virtue)』, 『민주주의는 가능한가(Is Democracy Possible Here?)』, 『신이 사라진 세상(Religion Without God)』, 국내 학자들과의 대담을 담은 『자유주의의 가치들』 등이 있다. 이 책 『정의론(Justice for Hedgehogs)』은 저자가 법과 정치철학에 대해 남긴 마지막 책으로, 법실증주의와 도덕적 회의주의를 비판하고 통합된 가치 위해 법과 정치철학의 기초를 세우려는 시도다. [본문으로]
  3.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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