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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입센 희곡 『인형의 집』

by 언덕에서 2015. 11. 12.

 

 

 

입센 희곡『인형의 집』

 

노르웨이 희곡 작가 입센(Henrik Ibsen, 1828 ~ 1906)의 전 3막의 희곡 작품으로 1879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발표하자 곧장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감격과 비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성들의 해방, 부인들의 각성ㆍ해방’ 문제를 제기한 근대 사회극의 문제작이다.

 1897년 발표된 그 해에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어 작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떨치게 했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자 노라는 신여성의 대명사가 되었고, 여성해방 운동이 각처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입센의 가장 뛰어난 대표작임은 물론 세계 근대극의 대표작이다. 한국에서는 1925년 조선배우학교1에서 맨 처음 공연되었다.

 이 극작품이 발표된 이래 노라는 여성해방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입센도 여성해방운동의 선도적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입센주의(Ibsenism)라고 하면 남성 중심적 사회의 인습적인 편견을 고발하고 남성을 규탄하며, 여성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해방을 부르짖는 운동을 의미한다.

 아이를 남기고 가출하는 노라의 행위는 1879년 발표 당시 떠들썩한 세평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노라를 발칙하고 괘씸한 여자라고 비난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노라야말로 새로운 여자의 전형이라고 찬미했다. 노라는 객관적인 기준에서 볼 때 행복한 가정주부로, 상냥하고 천진난만하며 남편에게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인형 같은 여인이었다. 그러나 문서 위조 사건을 계기로 남편의 사랑이 얼마나 미약하고 허위에 찬 것이었나를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존재가 남편에게 한갓 쾌락의 대상, 보기 좋은 장식품과 같은 것에 불과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자 거짓된 사랑과 가정생활,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한 여자이기 이전에 노라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 과감히 뛰쳐나간다.

영화 <인형의 집> 197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현실 생활에 부지한 인형에 지나지 않았던, 변호사 헬메르의 아내 노라는 세 아이의 어머니이며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다. 남편은 새해에 은행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그 기쁨이 겹친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노라는 신혼 무렵, 남편이 앓아 전지요양을 했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이름을 위서(僞書)하여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빌려 남편을 살렸다.

 그 악질 고리대금업자 구로구스타는 지금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내용을 모르는 헬메르는 행장 취임을 계기로 그를 해임하려 하나 상대방은 그 위서 사건을 내세워 남편을 실각시키겠다고 노라를 위협한다. 드디어 그 사실이 남편에게 알려지자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했다며 욕을 퍼붓는다. 지금까지 자기는 단순히 인형으로 취급되어 귀여움을 받은 데 불과하다고 생각한 노라는, 사건이 해결된 후 남편이 다시 결합할 것을 원하지만, 아내가 되기 이전에 책임 있는 한 인간으로서 살기 위하여,

“여자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어야 한다. 일개의 여성은 현재 사회에선 그 자신의 존재일 수 없다. 현 사회는 전제적인 남성의 사회다. 법률은 남성의 손으로 만들어져서 여성의 행위가 남성의 관점에서만 판단된다.”

고 외친다. 이제야말로 남편의 애완물에 불과했던 처지로부터 참된 인간이 되는 의무를 다하리라 하여 남편인 헬메르와 세 자식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다.  

영화 <인형의 집> 1973

 

 이 작품은 여성해방운동의 기폭제가 된 사회극으로 입센은 이 작품으로 불세출의 문호가 되었으며, '근대극의 제1인자'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세 아이를 남겨두고 가출한 노라의 행위는 이 희곡이 발표될 당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의 입장에서 노라를 비난하는 쪽과 새로운 여성상의 모델이라는 찬양을 아끼지 않는 쪽의 입씨름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 현대 사회를 무대로 삼았는데, 이 시대가 세계적인 사상의 대전환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 유럽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입센 자신도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로 간주되었다.

 여주인공 노라의 가출 원인은 행복한 가정 속에서 남편의 애정이 허상임을 직시했을 때 일어났다. 평온한 나날 가운데서 자신이 귀염 받는 하나의 종달새요, 노리갯감인 인형과 같은 삶을 살아왔음을 자각하면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인간사회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타성적 부부관계와 부지불식간에 일상화된 그릇된 인습에 경종을 울리는 문제성을 내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일은 특정한 한 시대, 한 가정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느 때나 보편적으로 상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단일의 무대 위에서 독자로 하여금 숨 돌릴 수 없는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극적 긴장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완전한 충족을 느끼게 하고 있다. 크로그스타트에 의해 조성된 위기와 급전하는 해소감, 헬메르의 이중적인 성격, 노라의 반항 등은 극적 긴장감을 더욱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입센이 이 작품에서 의도했던 것은 결혼, 사랑 그리고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작품에서 창조된 노라는 여성해방운동에 불을 지폈지만,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노라가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으로 『인형의 집』은 막을 내린다. 그녀는 사회 통념이나 가치관, 법률뿐 아니라, “나는 종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종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로 인해 1879년 처음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세기 말 당시 유럽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결혼과 남녀의 역할, 종교 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과도 같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인형의 집』은 노라라는 인물과 그녀가 집을 나간 후에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 지를 두고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2는 노라가 바깥세상에서 독립에 실패하는 것으로 그려 화제가 된 바 있다. (노라가 남편을 떠난 후 일어난 일 또는 사회의 지주3(支柱) Was geschah, nachdem Nora ihren Mann verlassen hatte oder Stützen der Gesellschaften) 

 『인형의 집』은 입센이 밝힌 대로 여성의 권리와 독립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개인과 사회, 사회의 통념과 개인의 판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발표된 지 이미 130년이 넘은 이 작품은 특정 집단이 만든 관습을 모든 개인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1. 근대연극 운동가인 현철과 동료 영화감독인 이구영(李龜永)이 설립했다. 현철은 1923년 10월 사단법인 동국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한국 사람들의 문화사업에 대한 의지를 키우고 인간을 알게 하는 데는 무엇보다 연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해 12월에 이 학교를 세웠다.처음에는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변사 김덕경의 집 2층을 빌려쓰다가 1925년 2월 창신동으로 옮겼다. 기초이론을 배우는 보통과와 실기 중심의 고등과로 나뉘고 학생은 각 20명씩 두었다. 보통과에서는 예술개론을 비롯해 세계연극사 등 연극·영화의 기초이론을, 고등과에서는 연극·영화에 관한 미학과 비평, 무용, 분장술 등을 가르쳤다. 이 중 현철이 40여 개 과목을 맡았고 이구영이 이론분야를 담당했다. 제1기생으로 이금룡·왕평·김아부 등과 중퇴한 양백명·복혜숙 등을 배출했다.천도교당에서 시연회를 2회 가졌는데, 이때 H. J. 입센의 〈인형의 집〉과 A. P. 체호프의 〈곰〉·〈개〉를 상연했다. 1926년 2월 제1회 졸업기념 공연으로 I. S.투르게네프의 〈하룻밤 앞〉을 공연하기로 했으나, 학생들이 배역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하자 2년도 채 못되어 문을 닫았다. [본문으로]
  2.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ˀɛlˈfʀiːdɛ ˈjɛlinɛk], 1946년 10월 20일 ~ )는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마르크 주, 뮈르츠추슐라크(Mürzzuschlag) 출신인 페미니스트 성향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200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아버지는 유대・체코계의 화학자로, 어머니는 빈의 부유층의 출신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였다. 김나지움 시절부터 빈 시립 음악원에 다녀, 파이프 오르간, 피아노, 리코더를 배운다. 빈 대학에서 미술사학과 음악사학, 연극학을 전공해, 재학 중의 1967년에 시집을 출판. 동년 대학을 중퇴해 작가 활동을 개시한다. 한편 음악학교는 계속하고 있으며, 1971년에 오르간 연주자 국가 시험에 합격해 졸업하고 있다. 활동은 소설, 극작, 수필, 번역,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 등 다양하다. 1974년부터 1991년까지 공산당에 입당하고 있으며, 초기에는 막시즘 관점에서 문명 비판적인 작품이 많았으나, 후에 부권사회와 모국 오스트리아의 관리에 대한 규탄에 초점을 옮겨 갔다. [본문으로]
  3. 1979년 그라츠에서 초연된 옐리네크의 작품으로 제목은 헨릭 입센의 『노라 혹은 인형의 집』(1879)과 『사회의 지주』(1877)에서 유래한다.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18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형의 집’을 떠난 노라가 방직공장에 채용되어 노동자로 일하다가 대기업가 봐이강의 눈에 들어 고급 창녀로 전락한 후 은행이사 직위에서 쫓겨난 전 남편 헬머와 다시 결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1870년대 입센의 사회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이며,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은 상품이나 성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노라의 객체적 상태와 순응성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주의자인 엘리네크는 다시 남편 곁으로, 가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노라의 여정을 통해 지금까지 여성해방을 상징하는 노라의 모습이 갖는 낙관주의에 경종을 울리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성해방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노라가 남편을 떠난 후 일어난 일 또는 사회의 지주(支柱) [Was geschah, nachdem Nora ihren Mann verlassen hatte oder Stützen der Gesellschaften]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독일문학, 2013. 11., 인문과교양)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