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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오영진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李重生) 각하(閣下)』

by 언덕에서 2014. 9. 16.

 

 

오영진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李重生) 각하(閣下)

 

 

오영진(吳泳鎭 : 1916 ~ 1974)이 쓴 희곡으로 1949년 5월 극단 신협(新協)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3막 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중생이라는 친일파 사업가의 행적을 그린 사회극이다. 원래 이 작품은 <맹진사댁 경사>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희극적 재능이 뛰어나게 발휘된 작품이다. 3막 4장으로 된 이 작품은 1949년 5월, [극예술협의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별 주목을 끌지 못했고, 1957년 극단 [신협]이 <인생차압>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위장과 위장의 실패라는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희극 형태와는 달리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공존하며, 극적 긴박감과 희극적 분위기를 공존시킴으로써 긴장과 이완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악질적인 친일을 하고, 또 해방 직후에는 혼란기를 틈타서 거부가 된 친일 사업가 이중생이 떳떳하게 행세하는 부조리한 사회상을 가차 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다. 

 이중생은 일제강점기에 외아들을 솔선하여 징용에 보내면서까지 치부를 한 전형적인 친일파이다. 그는 8·15 광복이 되자 사회적 혼란을 틈타 국유림을 차지하기 위해 무허가 산림회사를 차리고 달러를 융자받기 위해 딸을 미국인 정부(情婦)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음모가 발각되어 사기, 배임횡령, 공문서 위조 및 탈세범으로 입건되자, 고문 변호사와 공모하여 거짓 자살극을 꾸미고 임시방편으로 재산을 사위에게 넘긴다.

 영남지방에 퍼져 있는 전설의 인물인 방학중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데, 친일파 경제 사범인 주인공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사회극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평생 출세와 치부(致富)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이중생'이란 인물이 있다. 일제 말에는 외아들을 일본군에 지원시킨 대가로 이권을 한몫 단단히 잡고, 광복이 되자 국유림을 은근슬쩍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허가 산림회사를 차린다. 총독부든 군정청이든, 돈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본능적으로 줄을 대고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관리를 가장한 미국인에게 사기를 당한 이중생은 곧바로 배임과 횡령,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가 들통나면서 하루아침에 재산 몰수의 위기에 빠진다. 그의 고문 변호사는 기상천외한 제의를 한다.

 "본인이 자살한 것으로 하고 재산을 사위한테 넘기세요! 그리고 사위 행세를 하세요."

 이제 가짜 장례식이 펼쳐지고 이중생은 자기 영정사진 뒤에 숨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데, 아뿔싸, 그때까지 고분고분하던 의사 사위가 돌연 "상속받은 재산으로 무료 병원을 세우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사위에게 넘겨놓은 재산이 몰수 대신에 사회사업용으로 기부되어버려, 그에게는 몰수나 다름없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진퇴양난에 빠진 이중생은 결국 자살로써 생을 끝내고 만다.

 

 

 

 1949년 당시의 친일파 경제사범을 소재로 하였다는 의미에서 시사성이 짙은 사회풍자극으로 성공한 작품이며, 작가 오영진이 평생토록 지니고 있었던 반일과 인간의 허욕에 대한 통렬한 고발정신이 담겨 있다.

 거기에다 일제에 잡혀갔다 돌아온 아들 하식을 통한 공산주의 침략에 대한 경고도 깔려 있어, 반공․반일 정신 및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노출되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리고 뛰어난 희극작가로서의 오영진이 전작(前作) <맹진사댁경사>에서는 민담 <뱀서방>에서 그 연극적 모티프를 얻어왔듯이, 여기서는 죽음을 가장하는 모티프를 영남지방의 ‘방학중 민담’에서 얻어왔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65년 전에 쓰인 희곡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작품은  '이것이 바로 풍자이고 해학이라고 말하는 듯, 심각한 이야기를 넉살 맞은 유머로 풀어낸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아들 하식이 이중생에게 "아버지, 어서 그 구차스러운 수의(壽衣)를 벗으십쇼. 창피하지 않아요?"라 일갈하는 장면에 힘을 싣는다.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이중생의 영정 주변에 모여 한곳을 응시한다. 관객에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는 주문인 셈이다.

‘이중생’은 물질만능주의·천민자본주의를 풍자하면서 친일파 청산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블랙 코미디’다. 온갖 악행으로 부를 축적한 주인공 이중생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위장 자살에 가짜 장례식까지 치르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진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중생과 그에 기생해 한몫 챙기려는 큰딸 등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를 풍자한다.

  이 작품은 광복과 더불어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친일 세력이. 광복 후에도 새롭게 밀려드는 외세에 아첨해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여전히 건재 하는 병든 사회상을 가차 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다.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은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오영진(1917 ~ 1974) : 평양출신의 극작가․시나리오 작가․영화이론가. 영화 평론과 시나리오로 출발해서 한국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그의 작품은 대체로 희극적 세계로서 현세의 어리석음이나 물욕을 비웃고 꾸짖는 경향을 띠고 있음. 작품으로는「배뱅이굿」,「맹진사댁 경사」,「한네의 승천」등 관혼상제를 소재의 원천으로 한 작품과 「나의 당신」,「허생전」같은 고전소설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여 전통단절을 극복하고 말년에는 격렬한 반일 반공작품을 쓰기도 했다.

 

 


방학중 설화

 

 조선 후기 풍자적인 인물 방학중에 관한 설화. 인물전설로 소화(笑話)나 골계담(滑稽譚)에 해당된다. 문헌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구비 전승 지역은 그의 출생지인 경상북도 영덕 및 영해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이곳과 교류가 빈번한 안동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동북부 지역에 다소 전승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방학중은 약 200년 전에 가난하고 미천한 시골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자와 경쟁해서 이기고, 권력자나 관의 횡포를 속임수로 보복하고, 장사꾼과 서울 사람 등을 골려 주며, 지체가 높고 도덕적인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인물로 되어 있다.

 더러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속임수나 심술을 부리는 이야기도 있어 천하 잡보라고도 불렸지만, 전승자들은 대체로 방학중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보인다.

 설화의 유형은 정만서ㆍ정수동ㆍ김선달의 설화와 중복되는 것이 반수 이상인데, 이 설화는 19세기 후반 봉건 사회의 해체와 더불어 근대 서사문학으로 전환하는 일정한 단계의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며, 웃음의 원리를 밝히는 골계미의 분석, 풍자문학으로서의 의미와 기능, 민중적 비판 의식과 대립 양상 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절이 높기로 소문이 난 어느 과부의 절개를 꺾으면 한턱을 내겠다는 친구들의 말에, 방학중은 쾌히 나선다. 방학중이, 발을 드리워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는 과부의 방에 들어서니, 과부가 그를 보고 놀라면서, “웬 사람이오?” 하고 묻는다.

 방학중이 얼른, “나 서방이요!” 하고 대답하고는 방바닥에 앉으면서, 깔아 놓은 자리를 보고, “이건 뭐요?”하고 물으니,

 “그건 자리지요!”하고 과부가 대답한다.

 방학중이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 고장에서는 ‘하던 자리’라고 하는데, 지방마다 말이 다르군!”하고는 다시 반짇고리의 가위를 집어들고서 이름을 물으니 과부가, ‘가시개’라고 한다. 역시 자기의 고장에서는 ‘씹씨개’라고 한다면서 몰래 가위를 자리 밑에 감추어 버리고 나온다.

 바느질을 하다가 가위를 찾던 과부는, “여보, 나 서방! 씹씨개 어쨌소?”하며 소리쳐 묻는다. 그러자 방학중은 태연스럽게,

 “거 하던 자리 밑에 넣어 두었소!”라고 대답함으로써, 과부의 절개를 꺾은 것이 공공연하게 증명되어 친구들로부터 잘 얻어먹는다. 그의 묘지가 영덕군 남정면 원척리 지푸심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