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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유진 오닐 희곡『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by 언덕에서 2014. 8. 5.

 

 

유진 오닐 희곡『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1888 ~ 1953)의 대표작으로 1956년 초연되었다.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 이민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해가는 아버지와 마약중독자 어머니, 알코올과 여자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형, 결핵을 앓는 시인 동생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진 오닐의 마지막 희곡이자 리얼리즘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오닐을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 작가 중 하나로 만든 비극적 가족사를 이해와 연민의 시선 속에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위대한 용서를 담아낸 걸작으로 불린다. 유진 오닐은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 4회 수상 및 193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 Eugene Gladstone O'Neill, 1888 ~ 195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최근에 퇴원한 어머니 메리는 남편 제임스 타이론과 두 아들 제이미와 에드먼드를 앞에 두고 좋았던 옛날을 몽상하며 현재에 대하여 푸념을 늘어놓는다. 메리의 횡설수설은 아직도 그녀가 치료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들은 괴로운 가정 사정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아내는 자신이 이런 환자가 된 것이 아들 에드먼드를 낳을 때 돌팔이 의사에게 보내 모르핀을 너무 많이 맞게 한 남편 제임스 탓이라며 원망을 늘어놓는다. 남편 제임스는 가족을 희생시켜 가며 성공한 연극배우이다.

 폐병 환자인 아들 에드먼드는 자기가 결국 폐병으로 죽을 지도 모르는데 싸구려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며 아버지를 원망한다. 또 다른 방탕한 아들 제이미는 동생 에드먼드에게 너 때문에 엄마가 저런 꼴이 되었다며 동생을 원망한다. 남편 제임스는 식구들이 개처럼 서로 물어뜯는 이런 슬픈 광경을 저주한다. 이 식구들은 서로 물어뜯고 서로 상대방을 파괴시킬 생각을 하면서 밤으로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

 어느날 저녁, 메리가 약을 맞고 나타난다. 다락에서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남편에게 주며 말한다.

 "수녀와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유작인 4막의 이 희곡은 1956년 초연되었으며 자서전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늙은 무대배우인 아버지 제임스 티론, 마약중독자 어머니 메리, 알코올 중독의 형 제미, 병약하고 시인 기질을 가진 동생 에드먼드(청년시절의 유진 오닐) 가족 4명이 애정과 증오의 교착 속에서 서로 공격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어느 하루 동안의 허무한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작자는 육친의 비참한 과거를 폭로한 이 작품을 ‘피와 눈물로 점철된 오랜 슬픔의 연극’이라고 불러 생존 시에는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이 연극이 상연되자 무시무시한 긴박감은 관중의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1956년 예일 대학에서 간행되어 사후(死後)에 4번째 [퓰리처상(賞)]을 받았다. 작가 오닐은 이미 1936년에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

 오닐은 자신이 죽은 뒤에도 25년 동안은 이 작품을 발표해서는 안 되며, 그 후에도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남겼다. 「밤으로의 긴 여로 는 유진 오닐을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작가 중의 하나로 만들었던 비극적인 가족사를 이해와 연민의 시선으로 담아낸 걸작인 것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20세기 전반인 1912년 미국 중산층 가족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지난 20세기 미국 중산층 가족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유럽을 떠난 이주민들이 세운 국가로서 미국은 열심히 일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중산층의 신화를 간직해 온 나라다. 양초제조업자 아들인 벤저민 프랭클린에서 아칸소주 촌뜨기인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그것들을 명료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통계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오늘날 미국은 불평등이 점점 고착화됨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 계급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계급구조의 허리를 이루는 중산층의 위기는 계급이동의 사다리를 굳건하게 만들어온 미국에서도 목도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오닐이 말한 이러한 미국의 가족의 위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사회적·경제적 수준에서 관찰된다. 변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변동 속에서 믿음과 안식의 마지막 보루인 가족은 이제 거친 사막을 건너가는 유목민과도 같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은 미국 중산층은 물론 우리 사회 중산층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꿈같은 존재. 우리의 짧은 인생은 잠으로 완성되나니.”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아버지 티론이 읊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오닐 자신이기도 한 아들 에드먼드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우리는 거름 같은 존재. 그러니 실컷 마시고 잊어버리자.”

 이 드라마의 원제는 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인데 이 구절은 구약성경 열왕기 상 1장 19절에서 따온 것이다.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유다의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그곳에 시종을 남겨두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나갔다(A Day' s Journey into the Desert).”

밤으로의 긴 여로』를 다시 읽어보면서 또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가족 제도는 해체되고 기억으로만 남았다. 가족은 여전히 우리의 편안한 잠과 행복한 꿈을 지켜줄 수 있는 거친 바람 부는 이 세상의 마지막 거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