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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버스 안에서

by 언덕에서 2015. 9. 18.

 

 

 

 

버스 안에서 

 

 

 

 

 

 

 

등산 후 귀가행 버스를 탔다.

승객을 내리기 위해 잠시 정차한 사이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 발견한

눈에 익은 어느 골목.

30여 년 전 옛사랑이 살던 동네.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곧장 돌아걸으면 

파란색 대문의 양옥집이 있었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깊은 봄밤

대문 옆 가로(街路) 전등(電燈) 아래서

웃으며 나를 흘겨보던 그 눈빛.

나의 불편한 취기와 견딜 수 없는 가벼움에도

너는 화사한 웃음만 지었지.

 

 

 

 

 

 

 

한쪽 불빛을 잃었더라도

갈 길을 찾아야 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한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여행은 행복했다.

누군가로부터 조금 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은 언제나 스산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여러 문장으로도 부족했지만

뭉텅 거린 표현의 언어들로는 끝낼 수 없는 너였지.

나는 종종 잃어버리고

너도 언제나 잊혀버린다.

그것은 세월이 안겨준 상막한1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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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형용사)기억이 분명하지 않고 아리송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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