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Ⅰ
등산 후 귀가행 버스를 탔다.
승객을 내리기 위해 잠시 정차한 사이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 발견한
눈에 익은 어느 골목.
30여 년 전 옛사랑이 살던 동네.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곧장 돌아걸으면
파란색 대문의 양옥집이 있었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깊은 봄밤
대문 옆 가로(街路)의 전등(電燈) 아래서
웃으며 나를 흘겨보던 그 눈빛.
나의 불편한 취기와 견딜 수 없는 가벼움에도
너는 화사한 웃음만 지었지.
Ⅱ
한쪽 불빛을 잃었더라도
갈 길을 찾아야 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한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여행은 행복했다.
누군가로부터 조금 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은 언제나 스산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여러 문장으로도 부족했지만
뭉텅 거린 표현의 언어들로는 끝낼 수 없는 너였지.
나는 종종 잃어버리고
너도 언제나 잊혀버린다.
그것은 세월이 안겨준 상막한1 선물.
- (형용사)기억이 분명하지 않고 아리송한. [본문으로]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끈 뜨끈 매끈 싱가포르 여행 (0) | 2015.10.13 |
---|---|
우리말, 장난이 아니다? (0) | 2015.10.09 |
용기(勇氣)란 무엇인가? (0) | 2015.09.10 |
진정한 이해 (0) | 2015.09.03 |
아판티의 꿈 해몽 (0) | 2015.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