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勇氣)란 무엇인가?
기원전 380년, 플라톤은 대화편 중 하나인 「라케스 Laches」를 집필했다.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장군 두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언뜻 보기에는 무척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대화다. 바로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라케스와 니시아스는 소년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킬 때 갑옷을 입혀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답을 찾으려고 소크라테스를 찾아간다. 니시아스는 갑옷을 입혀야 한다는 쪽이고, 라케스는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자, 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뭔가요?” 그러자 두 사람 모두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용기는 뭘까요?”그러자 라케스는 “영혼이 뭔가를 견뎌 내는 힘”이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에 그다지 호응하지 않는다. 그는 견뎌 내는 것보다 후퇴, 심지어 도주를 하는 것이 더 용감한 행동일 때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견디는 것이 어리석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라케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수긍하고 다른 답을 내놓는다. 어쩌면 “지혜롭게 견뎌 내는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정의는 좀 더 말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용기가 꼭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야 하는 덕목인지 묻는다. 지혜롭지 못한 목표를 추구할 때 보이는 용기를 찬양할 때도 있지 않은가? 라케스가 이를 인정하자 갑자기 니시아스가 끼어든다. 그는 용기란 “전쟁을 비롯한 그 어떤 상황에서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거기서도 잘못된 점을 찾아낸다. 미래에 대한 완벽한 지식 없이도 용기를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야 할 때가 많다.
두 장군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야기는 두 장군이 용기에 대한 최종 정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끝난다. 그러나 독자인 우리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가능하다. 용기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란 분별력 있고 신중한 힘이다.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게 단지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354 ~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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