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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용기(勇氣)란 무엇인가?

by 언덕에서 2015. 9. 10.

 

 

 

 

 

용기(勇氣)란 무엇인가? 

 

 

 

 

 


기원전 380년, 플라톤은 대화편 중 하나인 「라케스 Laches」를 집필했다.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장군 두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언뜻 보기에는 무척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대화다. 바로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라케스와 니시아스는 소년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킬 때 갑옷을 입혀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답을 찾으려고 소크라테스를 찾아간다. 니시아스는 갑옷을 입혀야 한다는 쪽이고, 라케스는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자, 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뭔가요?” 그러자 두 사람 모두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용기는 뭘까요?”그러자 라케스는 “영혼이 뭔가를 견뎌 내는 힘”이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에 그다지 호응하지 않는다. 그는 견뎌 내는 것보다 후퇴, 심지어 도주를 하는 것이 더 용감한 행동일 때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견디는 것이 어리석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라케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수긍하고 다른 답을 내놓는다. 어쩌면 “지혜롭게 견뎌 내는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정의는 좀 더 말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용기가 꼭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야 하는 덕목인지 묻는다. 지혜롭지 못한 목표를 추구할 때 보이는 용기를 찬양할 때도 있지 않은가? 라케스가 이를 인정하자 갑자기 니시아스가 끼어든다. 그는 용기란 “전쟁을 비롯한 그 어떤 상황에서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거기서도 잘못된 점을 찾아낸다. 미래에 대한 완벽한 지식 없이도 용기를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야 할 때가 많다.

 두 장군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야기는 두 장군이 용기에 대한 최종 정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끝난다. 그러나 독자인 우리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가능하다. 용기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란 분별력 있고 신중한 힘이다.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게 단지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어려우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354 ~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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