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시엔키에비치 단편소설 『등대지기(Latarnik)』
폴란드 소설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1(Henryk Sienkiewicz.1846∼1916)의 대표작으로 1882년 발표되었다. 시엔키에비치는 1876년부터 특파원 자격으로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며 조국을 떠나 고된 삶을 살아가는 동포들을 목격했다. 『등대지기』는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집필한 단편소설들 중 하나이며 현재까지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등대지기』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시적인 문체와 섬세한 은유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등대지기』는 폴란드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폴란드 국민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려 비탄과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작가는 『쿠오바디스』, 『크미치스』, 『등대지기』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작품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전쟁에 나가있는 폴란드 젊은이들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작품을 하나씩 다 갖고 있을 정도였다. 독일 젊은이들은 데미안을 하나씩 품고 전쟁에 나갔다고 했다.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19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파나마 해안에 있는 작은 섬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 스칸빈스키 노인은 70평생을 고향과 조국을 떠나 갖은 풍상과 고초를 겪으면서 인생유전(人生流轉)을 경험한 끝에, 마지막으로 등대지기라는 일자리를 얻는다. 사람을 거의 볼 수 없고 지루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노인은 자신이 항상 꿈꿔오던 조용한 삶에 행복을 느끼며 차츰 자연으로 동화되어 간다. 노인은 자신이 맡은 그 외로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가지만,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몸과 마음은 점차 여위어져 간다.
어느 날 폴란드 모국어로 씌어진 유명 시인의 시집이 우편으로 배달되어 오고, 고향조차 잊은 채 잠잠히 지내던 노인의 영혼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즉, 그동안 쌓였던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 시집 한 권으로 인해 용솟음쳐 오른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조국을 본 것은 40년 전이었으며, 모국어를 들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국어가 홀로 그에게 다가왔고 그것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그를 찾아내 바다를 건너서 온 것이다. 그 벅찬 감동으로 인해 수 년 동안 한 번도 꺼뜨린 적이 없는 등댓불을 켜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다. 그로 인해 결국 등대지기 일자리마저 쫓겨나지만, 그의 품속에는 그 모국어 시집을 소중히 자리하고 있다.
강대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거나 이민족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국권 상실의 경험을 가진 국가와 민족들이 가진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의 모국어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등대지기』는 바로 그러한 모국어에 대한 애착을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다. 러시아 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폴란드, 그리고 그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솅키에비치가 그린 등대지기 노인의 이야기는 조국애와 모국어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솅키에비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쿠오바디스』라는 웅대한 스케일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등대지기』는 정반대로 단일한 사건과 인물, 간명한 플롯을 통해 진한 조국과 모국어의 중요성에 대해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친밀감을 주는 것은, 아마도 일제 식민 체험이라는 가슴 아픈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폴란드는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제국의 통치를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국어는 곧 조국이며, 고향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알 수 있는 인간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스카빈스키 노인은 평생을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어떤 어려움도 꿋꿋이 잘 버텨왔다. 그를 번번이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게 한 것은 바로 희망이다.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희망, 그것은 암흑과 같은 시련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등대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 일자리를 잃고서도 빛나는 눈으로 등대를 떠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조국을 만난다는 희망. 시집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배에 오른 노인은 그 후 조국으로 향했을 것이다. 연로하고 가난한 노인은 과연 사랑하는 조국의 품에 무사히 안겼을까, 조국 땅을 밟고 두 손으로 흙을 만져보게 될 때 노인이 느낄 감동은 대체 얼마만한 크기일까 하는 뒷이야기를 그려보게 하는 명작이다.
- 1846년 폴란드의 볼라 오크제이스카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대학 시절부터 일간지에 칼럼과 서평 등을 기고하면서 문학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그는, 1872년 「보르슈우아 씨의 가방에 담긴 유모레스크」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876년 «폴란드 일보»의 특파원 자격으로 미국 여행을 다녀온 이후 서정적인 문체와 뚜렷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중‧단편 소설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대표적 작품으로 「음악가 야넥」(1879), 「등대지기」(1881), 「정복자 바르텍」(1882) 등이 있다. 시엔키에비츠는 폴란드 문학사에서는 무엇보다 ‘역사 소설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1883년 일간지 «말»에 『불과 검으로』(1884)를 연재한 이후 『대홍수』(1886)와 『보워디욥스키 장군』(1887-88)을 차례로 집필하여 시엔키에비치 문학의 정수로 손꼽히는 역사소설 3부작을 완성한다. 1896년에 발표한 『쿠오 바디스』는 명실 공히 시엔키에비츠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전 세계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여러 차례 연극과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작품을 통하여 1905년 시엔키에비츠는 폴란드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폴란드 민족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안겨주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스위스로 건너간 시엔키에비츠는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다 1916년 스위스의 브베에서 숨을 거두었다. 조국의 땅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시엔키에비치의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된 조국 폴란드로 옮겨져 바르샤바의 성 요한 성당에 안장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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