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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펄 벅 장편소설 『대지(The Good Earth)』 3부작

by 언덕에서 2015. 7. 9.


펄 벅 장편소설 『대지(The Good Earth)』 3부작

 

대지(大地, TheGoodEarth)』는 미국 소설가 펄 벅(1892∼1973)의 장편소설로 1931년 간행되었다. 선교사의 딸로 생후 5개월 만에 중국으로 이주한 작가 자신의 견문을 토대로, 빈농으로 재산을 모아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과 그 일가의 역사를 그린 대작이다. 흔히들 『대지』는 한 권의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1부 <대지(TheGood Earth)>(1931), 2부 <아들들(Sons)>(1932), 3부 <분열된 일가(A House Divided)>(1935)의 3부작으로 되어 있다. 나는 고2 때에 일서(日書)를 번역한 3부를 읽은 적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제목이 <나뭇잎 떨어져도 대지는 살아있다>로 원제가 ‘A House Divided’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애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작가는 청·일 전쟁 이후, ‘의화단의 난·’ 신해혁명·청 왕조멸망·국민당 창당·공산당 창당·국공합작 및 분열 등, 계속되는 혼란한 국내 정세와 외국세력의 침입과 간섭 등 소란스럽고 고난에 찬 시대에 우왕좌왕하는 민중의 모습을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며 살아온 여주인공 오란을 통해 볼 수 있는 동양적 인종(忍從)의 전형적인 모습인 전통적 여성상의 묘사, 왕룽의 세 번째 부인인 렌화(梨華) 등에 관한 감각적 묘사는 동양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이야기의 내용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거침없이 흐르며, 동요하지 않는 중국 민중의 강인함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제1부 『대지』 는 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출간 다음 해인 1932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38년 3부작의 완결로 펄 벅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펄 벅의 자서전에 의하면, 『대지』를 쓰게 된 긴박한 동기의 하나는 외동딸이 백치였기 때문에 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작품에서도 왕룽의 큰딸이 백치로 설정되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어 낮을 밤으로 바꾸는 메뚜기 떼와 끊임없이 계속되는 가뭄과 한파, 이런 장면을 읽으면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정복했다고 큰소리쳐도 자연에 비하면 그렇고 그런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 싸워나가는 모습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미국 소설가 펄 벅(1892-197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왕룽’은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신부를 고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다른 농사꾼들처럼 종으로 자란 ‘오란’을 돈을 주고 사 온다. 오란은 예쁘지는 않지만 건강하고 일을 썩 잘했다. 두 내외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형편이 점점 나아지고, 조금씩 땅을 넓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지독한 가뭄이 들어 곡식은 말라 죽고 가난한 농부들은 먹을 것이 없어 나무순이나 풀뿌리는 물론 흙까지 먹게 되었다. 이러한 약점을 노려 도시의 장사꾼들은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헐값으로 사들였다.

 왕룽 역시 굶주림을 이겨낼 수 없어 토지를 팔고 남쪽 도시로 돈벌이를 떠난다. 왕룽은 인력거를 끌고 오란은 구걸을 해서 겨우 목숨을 이어 나갔다. 얼마 후 난리가 일어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잣집에 뛰어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약탈하여 나왔다. 왕룽은 이 북새통에 큰돈을 줍게 되고 오란은 숨겨진 보물을 찾아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옛 지주의 땅을 모두 사들였다.

 그러나 부자가 되었다고 모든 일이 잘되어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한 차례 대홍수를 치렀고 왕룽은 바람을 피우게 된다. 이런 고생으로 쇠약해진 오란은 메뚜기 떼의 기습을 겪은 후 더는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죽게 되는데, 그제야 왕룽과 그의 자식들은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를 깨닫게 된다.

 아들들의 제안에 따라 황씨 댁 저택으로 집을 옮긴다. 넓은 저택에서 왕룽은 지나온 나날을 회상하며 고독 속에서 지내다가 결국은 젊고 어여쁜 계집종 렌화를 첩으로 삼으며 외로움을 달랜다. 큰 아들은 그의 뒤를 이어 대지주가 되고, 둘째아들은 거대한 상인이 되며, 막내아들은 집을 뛰쳐나가 군인이 된다. 어느 날, 훌륭한 관을 준비해놓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왕룽은 그의 두 아들이 토지를 팔 것을 의논하고 있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한다. 그러나 아들들은 아버지의 의중을 비웃을 뿐이다.

 드디어 늙은 대지주 왕룽의 고독한 모습이 그의 죽음을 예고한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까지 집착한 것은 토지였다.

영화 -대지 (The Good Earth)-, 1937

 

 

 우리 사회는 인구의 절반 정도가 수도권에 밀집해있고 고도의 도시화 과정을 밟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실은 현대인에게 이전과는 다른 고향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돼가고 현대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땅, 근원적인 공간에 대한 감성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기도 하다. 펄 벅의 이 작품은 대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왕룽 일가의 역사와 그 속에 있는 대지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본원적인 장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왕룽은 광활한 대지를 소유하게 되지만, 영원히 자신의 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씨를 뿌려 낳은 자식들조차 아버지가 죽게 되면 땅을 팔아버리겠노라며 배신하지만,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안겨다 주는 대지만은 그를 배신하지 않고 남아있다. 왕룽이 소중하게 아끼는 대지는 결국 오란과 함께 일구어낸 것이지 자신만의 힘으로 일구어낸 성과가 아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은 얼마나 될까? 요람에서 무덤까지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펄 벅의 작품을 번역문학의 대가 장왕록 교수와 영문학자이면서 수필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장영희 교수가 공동 번역하여 더욱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번역작가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안정효 선생의 번역본 『대지』도 똑같이 많이 읽히고 있다.

 펄 벅은 이 작품을 통해 마지막 황제가 군림했고 20세기 정치 및 사회적인 격변이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던 시대의 중국에 대한 인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 왕룽 일가의 역사를 통해 사회 변화가 몰고 온 도전과 갈등에 대처하는 인간의 고민을 형상화하여 20세기 중국인들의 삶에 일어났던 변화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작품은 중국 대륙과 중국인의 삶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했던 작가에게 1938년 [노벨문학상]을 안겨다 주었다.

 

- 월간 소식지 '맑고향기롭게' 2017년 3월호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