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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미시마 유키오 단편소설 『우국(憂國)』

by 언덕에서 2015. 6. 23.

 

미시마 유키오 단편소설 『우국(憂國)』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의 단편소설로 1960년 발표되었다. 1983년도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금각사>(학원사) 우국이 게재되어 있으나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고, 2003년 이문열 작가가 편찬한 <세계명작산책> 2권에 전문이 실려있다.

  1944년 도쿄대학교 법학부 졸업한 미시마는 재학 중에 이미 소설을 썼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49년 장편소설 <가면의 고백>으로 문단에서 확고하게 지위를 굳힌 그는 전후세대의 니힐리즘이나 이상심리를 다룬 작품을 많이 썼는데, 그 본질은 탐미적이었다. <사랑의 갈증>(1950) <금색(禁色)>(1951∼1953)을 거쳐 그의 방법론이 거의 완전하게 표현된 것은 <금각사(金閣寺)>(1956)에서였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단적인 미와 지성이 통합된 작풍으로 정평이 있었다. 그러나 단편소설 『우국』(1960) 무렵부터 쇼와사상(昭和思想)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점차 급진적인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미시마는 전통 무술인 가라테와 검도를 연마하고, 천황제를 수호하겠다며 사병대를 만들기도 했다.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는 도쿄의 육상자위대 본부를 점거하고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로의 회귀를 외쳤다. 한물 간 군국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안 미시마는 사무라이 같은 할복자살을 택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1936년의 2.26 사건을 다룬 『우국』을 미시마 본인이 감독, 주연을 맡아 영화로 옮기기도 했다.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할복자살을 감행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일본 전통극인 ‘노’의 형식으로 담은 영화다. 1970년 미시마 유키오 사후, 영화 프린트가 모두 소실되었다고 전해졌으나, 2005년 그의 옛집 지하실에서 오리지널 프린트가 발견되어 또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영화 <우국 Patriotism>, 1966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근위보병 제1연대 근무 타케야마신지 중위는 아름다운 레에코와 화촉을 밝혔다. 그들은 신혼생활을 만끽하지만 반년 후 2·26 사건이 발생하고 궐기한 청년장교들 중에는 중위의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신혼이라는 이유로 사건에서 제외됨으로써 반역자로 몰린 친구들을 사살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다. 그들과 사상을 함께 한 타케야마신지였지만 반란군 토벌이라는 천황의 절체절명의 칙명에 의해 친한 친구를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중위는 자신이 처한 돌파구로써 할복을 결심한다.

 레에코는 남편의 얼굴에서 죽을 결의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남편이 구현하고 있는 태양과 같은 대의를 우러러본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지상의 기쁨을 맛본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이후, 타케야마신지는 '황군만세'라고만 쓰인 유서를 쓰고 왼쪽 옆구리에 칼을 찌른다. 그 순간 고통은 여름의 태양처럼 휘황찬란하다. 중위의 할복자살을 끝까지 지켜본 레에코는 칼로 목을 찌른 후에 남편의 뒤를 따른다. 젊은 부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육체관계를 가진 후 할복했다.

 

대중 앞에서 선동하는 미시마 유키오

 

 위의 줄거리 속 굵은 글씨의 표현은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에서 발견된 표절로 유명해진 부분이다(https://yoont3.tistory.com/11302197 ).

 미시마 유키오는 1956년에 <금각사>를 [신쵸]에 연재하여 다음 해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금각사>는 미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1950년대 미국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었는데, 일본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인간 심리의 치밀한 묘사, 감상성에 대한 강렬한 비판 등을 통해 고유한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다. 소설이나 평론뿐 아니라 희곡, 영화 시나리오도 썼으며, 자신의 나체가 든 사진집을 발간하여 문단의 일본 문단의 별종으로 떠올랐다. 또한 문인들이 보이는 나약하고 퇴폐적인 생활태도를 경멸하여 직접 검도, 보디빌딩을 하면서 강건한 의지와 건강한 육체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1968년 우익사병집단인 '방패회'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1970년에는 일본 자위대 주둔지 안의 총감실에 난입하여 대원들을 궐기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이 일로 그는 격문을 남긴 채 할복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면서 45세의 생을 마감했다.

 미시마의 소설은 풍부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묘사, 탄탄한 구조를 갖춰 발표될 때마다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를 역사 속 인물로 만든 것은 화려한 작품 목록이 아니라 충격적 죽음이었다. 그는 애국심과 군국주의에 매혹돼 전후의 일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야말로 일본의 전형적인 극우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서구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일본적인 것’에 대한 병적으로 집착이 강했다.

 

 

 (전략) 사실 이러한 죽음은 작가 미시마에게 일평생의 유혹이었던 듯하다. 그는 젊은 날에 이 작품을 쓰고 짧은 생애의 만년에는 스스로 연출한다. 어쩌면 이 작품은 문학적인 성취보다 60년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그의 할복과 연관 지어 더 인상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념과 자랑을 품고 스스로 다가가는 죽음의 한 양태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세계단편사에서 흔치 않은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52쪽에서 인용)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소설 『우국』에 대해 "쇼오와(昭和)의 역사는 패전으로 인해 완전하게 전기·후기로 갈리어지지만, 그 시대를 연속해서 살아온 나에게는 자신의 연속성 근거와 논리적 일관성의 근거를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내야겠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2·26 사건과 나>, 河出書房新社, 1966)'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 그의 내부에는 그 자신 존재의 근거로서 신으로서의 천황이 있었다. 쇼오와 역사 속에서 천황이 신이어야만 했을 때였던 청년 장교가 궐기했을 때와 특공대원이 죽었을 때야말로 죽음의 순간에 신과 한 몸이 되고 죽음의 영광, 죽음의 최고의 행복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역사와의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으로 추측된다.

 


 

  1. 천황은 “통치권의 총람자(總攬者)”이자 “제사국가의 장”으로서 신국(神國)의 통치자여야 한다는 주장. 천황은 미국이라는 올가미를 끊어 낼 “현상 부정의 상징”이자 변혁을 이끌 구심점이어야 한다는 극우주의적 사상. [본문으로]
  2. 김후란(金后蘭, 1934년~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서울 출생이며, 본명은 형덕(炯德)이다. 서울대를 수학하였으며, [한국일보] 기자 및 [부산일보] 논설위원과 한국여성개발원장을 역임하였다. 1959년 [현대문학]에서 신석초의 추천을 받아 〈오늘을 위한 노래〉,〈문〉,〈달팽이〉등의 작품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장도와 장미》,《음계》,《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사람 사는 세상에》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과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본문으로]
  3. 주식회사 [신초샤](일본어: 株式会社新潮社, 신조사)는 일본의 출판사이다. 문예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으며, 주간지와 논문 계열의 월간지에서는 보수적인 논조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도쿄 신주쿠 구 야라이 초(矢来町)에 광대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4. 미시마 유키오는 1966년 민병대 ‘방패의 모임(楯の會)’을 결성, 우익 정치활동에 본격 참여했다. 방패회는 무장 투쟁 훈련을 했다. 이는 이후 일본의 신우익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