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장편소설 『콧수염(La Moustache)』

by 언덕에서 2015. 6. 17.

 

 

 

 

엠마뉘엘 카레르 장편소설 『콧수염(La Moustache)

 

 

 

 

 

 

 

 

엠마뉘엘 카레르1의 장편소설『콧수염』은 1986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표되자마자 몽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는 특이한 작가로 일약 주목을 받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예상치 못한 대중적 호응을 얻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아내를 깜짝 놀래주려고 콧수염을 깎는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급기야는 남편이 본래 있지도 않은 수염을 깎았다고 주장한다며 미치광이로 몰아간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광기의 측면을 극도의 서스펜스와 절묘하게 조화시킨 수작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작가 카레르를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의 삶을 악몽으로 새로이 묘사하고 정의하는 헨리 제임스2에 비견하기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콧수염의 “그”는 어느 날 10년 동안 길러왔던 부숭부숭한 콧수염을 장난삼아 잘라보기로 한다. 10년 동안이나 길렀다는 게 맘에 걸리긴 하지만, 아내를 놀래게 해주겠다는 재미로 사각사각 콧수염을 밀고 아내를 기다린다.

 '아내가 뭐라고 할까?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고 보니 좀 어색하기도 한데…’ 라며 초조해한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뜻밖에도 그의 콧수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마치 일부러 모른 척하기로 한 것처럼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다. 이때부터 그는 근심과 걱정에 싸이게 된다.  “그”가 느끼는 긴장감은 곤혹스러움 자체다. ‘아내는 왜 나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걸까?’라는 의구심은 점점 광기로 치닫는다. 

 겨우겨우 꺼낸 콧수염 얘기에 아내는 “당신은 처음부터 콧수염이 없었다”고 응대한다. 아내뿐만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 자주 지나치던 사람들조차도 그에겐 콧수염이 없었다면서 정신과 치료를 권유한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서 “그”가 콧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 없어지고, 그의 부모님, 과거의 추억들마저도 진위여부가 부정되면서 급기야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마저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모두 등을 돌리고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병원에 갇혀 평생을 지낼 두려움에 일상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는 홍콩으로 떠난다. 홍콩에 온 그는 며칠 동안 하루 종일 홍콩과 구룡반도를 잇는 페리를 타고 늘 하던 일상처럼 왕복을 한다. 그는 파리에 있는 아내와 부모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때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는 다시 마카오로 간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쪼이는 해변에서 수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에는 아내가 와있다. 잡지를 읽고 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욕실에 들어가 면도를 한다. 잠깐 살이 배어 피가 흐르자 그의 광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입술과 턱을 난도질을 하고 그는 면도칼을 뽑아 목에 갖다 댄다.

 

 

 

 

 

 소설 마지막에 충격적 결말이 좀 너무하다 싶기는 하지만, 진리에 대한 확신,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것들에의 회의와 부정은 이 소설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전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가정법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는 독자들에게 “당신은 무엇으로써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건들거리며 묻는 듯하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정말로 그러한지 얼마나 확신하는가”라는 물음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현대인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믿음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지, 또한 진리라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꼬집어내고 있다.

 만약 당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꿈이라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버려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라면? 소설속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처지다. 그 일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주인공의 의식내면에서는 상상의 날개를 달은 그래서 이것에서 갑자기 저것으로 끊임없이 확산되어 가는 의식 '분열' 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 

 

 마지막의, 약간은 충격적인 상황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한다. 그 죽음은 그에게 안식을 준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하나 있다. 주인공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다음의 문장, '만약 당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꿈이라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버려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라면?'

 이것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전제라면, 마지막 결론 부분은 이렇다. '긴장해 있던 그의 정신은 이제 모든 게 끝나고 제자리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자, 비로소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다. 주인공은 모든 게 제자리를 되찾았다는 확신이 들자,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모든 게 제자리를 되찾았다'는 것은 자아의 자명성3 획득 즉, 자신이 '지금 죽고 있다.'라는 명제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서 '자아의 자명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은 확실한 나인가? 확실한 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자기 자신이라는 정체성은 바로 과거 기억의 산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식, 교육, 경험 등으로부터 형성된 하나의 '정보 결정체'이다. 이러한 정보를 사용해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의 모든 정보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린다면 당연히 '정체성' '자명성'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통'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정신적 혹은 육체적 죽음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했으며, 그렇게 획득된 자명성은 주인공에게 위안을 제공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1. 195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1986년 28살의 나이에 발표한 소설 『콧수염』으로 존 업다이크로부터 ‘멋지고, 번득이며, 냉혹한 작품’, 「르 몽드」로부터 ‘문학의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몽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는 특이한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겨울 아이』로 1995년 페미나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알려졌으며, 이후 클로드 밀러 감독의 동명 영화로 제작되어 칸 영화제 심사 위원상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는 일가족을 살해한 실존 인물 장 클로드 로망의 심리를 파헤친 문제작 『적』(2000)으로 화제를 모았다.그 밖의 작품으로는 동명의 영화감독에 대한 연구서 『베르너 헤어조크』(1982), 『나는 살아 있고 당신들은 죽었다. 필립 K. 딕의 전기』(1993), 소설로는 『재규어의 친구』(1983), 『용기』(1984년 파시옹상, 보카시옹상 수상), 『베링 해협』(1986년 SF 대상, 발레리 라르보상 수상), 『안전지대』(1988년 클레베르 헤덴스상 수상), 『러시아 소설』(2007) 등이 있다. [본문으로]
  2. 헨리 제임스(1843 ~ 1916). 미국의 소설가. 1915년 영국 시민으로 귀화했으며, 대서양 횡단 문화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근본적인 주제는 구세계의 부패, 지혜와 충돌하는 신세계의 순진함과 활력이었으며, 이는 〈데이지 밀러 Daisy Miller〉(1879)·〈어느 부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1881)·〈보스턴 사람들 The Bostonians〉(1886)·〈사자(使者)들 The Ambassadors〉(1903) 같은 작품에 나타나 있다. [본문으로]
  3. 설명이나 증명을 하지 아니하여도 직관을 통하여 직접 진리임이 밝혀지는 성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