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
포르투칼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1922∼2010)가 쓴 장편소설로 1995년 발표되었다. 이전에 출판된 <예수복음>, <수도원의 비망록>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1995년에 포르투칼판이 1998년에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1997년 사라마구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08년 브라질 영화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그해 한국에도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체제와 가치의 붕괴를 ‘실명’이라는 전염병으로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데, '메르스'라는 전염병에 전대미문의 홍역을 치루며 전세계에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제 사라마구1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 전체에 ‘실명’이라는 전염병이 퍼진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소설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확실하지 않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 또한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눈이 멀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작품 속의 인간들은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자신의 인간성조차 잃어버린 장님들이다.
수용소에 강제 격리되어 각자의 이익을 챙기는 눈먼 사람들, 이들에게 무차별하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의 폭력, 전염을 막기 위해 수용 조치를 내린 냉소적인 정치인, 범죄 집단을 방불케 하는 폭도들이 등장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남자가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눈이 멀어 버린다. 눈이 멀면 까맣게 보여야 하는데 그 남자는 온통 우유처럼 하얗다고 말한다. 허둥대는 그 남자를 어떤 다른 남자가 도와서 집까지 데려다 준다.
이렇게 갑자기 눈이 멀고 앞이 하얗게 보이는 이상한 질병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병에 걸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정부는 전염을 우려하여 눈먼 사람들을 정신병동에 격리시키고 군인들을 무장시켜 병원 앞을 지키게 한다.
처음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눈먼 남자, 그 남자를 도와준 남자, 그리고 검은 색안경을 낀 여자, 사팔뜨기 소년, 안과 의사, 안과 의사의 아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노인 등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점점 눈먼 자들은 불어나기 시작한다. 병동은 무질서하고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안과의사의 아내는 눈이 멀지 않는다. 남편을 도우려고 일부러 눈 먼 척을 해서 같이 병동에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눈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돕고 남편을 돕는다. 그러다 '도둑'이 병동 밖으로 나가다가 군인의 총에 맞아 죽게 되고 연이어 많은 사람이 죽는다. 군인들은 자신들도 눈이 멀게 될까봐 가까이 오면 무조건 쏘아 죽인 것이다.
그러던 도중 한 무리의 눈먼 무뢰배들이 병동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환자들을 총과 곤봉으로 위협하면서 하루에 3번씩 군인들이 주는 음식을 강탈하고 음식을 먹고 싶으면 값비싼 물건들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그들의 횡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자들을 보내라고까지 요구한다. 그들의 더러운 짓을 참을 수가 없었던 의사의 아내는 그 중 대장격인 한 남자를 몰래 가위로 찔러 죽인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환자들은 용기를 내게 되고 어느 날 한 여자가 병동에 불을 지른다.
사람들은 불에 타죽지 않으려고 너도나도 병동 밖으로 뛰쳐나오지만 군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그들도 모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어서 음식을 찾으러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아무데나 배설한다. 개들은 길거리에서 시체를 뜯어먹는다.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는 눈먼 남자, 색안경 낀 여자, 소년, 자신의 남편, 노인 등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음식을 찾아 먹고, 몸을 씻고 잠을 청한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사람들의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과 의사의 아내는 시야가 하얗게 보이며 눈이 멀게 된다.
20세기의 포르투갈은 독재와 혁명, 아프리카에서의 무모한 식민지 전쟁 등으로 인간 존재를 한없이 누추하게 만드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 한 복판에 사라마구의 초점이 머문다. 문장부호의 변화와 생략을 통한 새로운 문제의 시도는 긴장과 집중력을 요구함으로 더욱 작품에 몰입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사실적 세계와 초자연적인 환상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작품 세계는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상상력을 통한 미(美)의 추구에 있다. 한 편의 씁쓸한 이야기가 환상이라는 대기를 지나 승화되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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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만 있지는 않다. 처음으로 눈이 멀어 수용소에 갇히는 인물들은 함께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의지하며 도와가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라마구는 이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 의사의 아내’는 바로 인간의 선한 면을 상징하고 있다.
사라마구는 서로 베풀고 사랑하며 더불어 사랑하는 진정한 ‘눈뜬 자들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일상에 좀더 주의 깊은 시선을 가지도록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대작이다.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심층적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위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이나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한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와 존재는 그것을 잃었을 때야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존재다. 인습과 편견, 고정관념과 정형화된 삶, 이런 것들에서 점차적으로 해방되어야만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 삶을 지향하며 우리는 전진하고 있는가.
- 주제 드 소자 사라마구(포르투갈어: José de Sousa Saramago 조제 드 소자 사라마구[*], [ʒuˈzɛ sɐɾɐˈmaɣu], 1922년 11월 16일 ~ 2010년 6월 18일)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우화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작품들은, 대개 현재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역사적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역설하였다. 1998년 95번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10년 지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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