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들의 신과 그들의 탈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감각적인 영상과 웅장한 서사로 이름 높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4년 신작이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블레이드 러너><델마와 루이스>부터 <글래디에이터>에 이르기까지 수준급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런 점에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기대가 많은 영화였다. 배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을 모세로 발탁했다는 점부터 출애굽기의 대서사를 그대로 영화화했다는 점 때문이다. 같은 소재의 영화, 1956년 세실 데밀이 만들고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전설과 같은 영화 <십계>를 21세기에서는 어떻게 발전시켰는가가 기대되었다. 기술적으로도 대규모 전쟁신과 10가지 재앙, 거대한 홍해 장면이 최첨단 시각효과로 연출되었으며 모든 장면을 3D 카메라로 찍어내고 사후에 CG 작업을 곁들여 볼거리가 상당하다는 점 또한 기대가 부풀렀던 이유이다.
규모와 기술이 대단한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차별점은 서사(敍事) 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다는 점일 것이다. 출애굽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딧세이아>, 나관중의 <삼국지>를 제외한다면 고금을 통틀어 짝을 찾기 힘든 대서사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에 대한 자유의 승리를 읽을 수 있으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전능함을 확인하고 나아가 인간의 위대함과 나약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언급한 바 구약성경의 출애굽기는 이미 세실 드밀의 1956년 작 <십계>와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를 통해 영화화된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출애굽기를 서사의 근간으로 삼아 이집트 왕가에서 자라난 모세의 고뇌로부터 그가 신을 받아들이고 유대민족을 탈출시키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엑소더스>의 올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십계>는 당대를 대표하는 명배우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린너를 모세와 람세스로 캐스팅했고,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대작이었다는 점에서 <엑소더스>의 아날로그 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집트 왕국에서 형제로 자란 ‘모세스’와 ‘람세스’가 주인공이다. 이집트 고센 지방의 이스라엘 민족이 나날이 번성해 가자, 이집트의 왕 람세스는 위협을 느끼고 히브리인의 장자를 모두 죽이라고 명한다.
이집트 왕족이자 국경 수비를 책임지는 장군인 모세스는 자신이 어느날 우연히 자신이 이집트 왕족이 아니라 히브리 노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지옥 같은 노예들의 삶에 분노하게 된 ‘모세스’는 스스로 신이라 믿는 제국의 왕 ‘람세스’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고, 결국 자신이 400년간 억압받던 노예들을 이끌 운명임을 깨닫고 자유를 찾기 위해 이집트 탈출을 결심한다. 그는 노예로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해온 히브리인들은 언젠가 하느님이 인도자를 보내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리라는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었다.
광야를 헤매던 모세스는 미디안에 이르고, 그곳에서 세포라라는 양치기 여인과 혼인해 아들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나이 산에서 신의 부름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가 동포를 구해 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이집트로 돌아간 모세스는 갖가지 하느님의 이적을 행하여, 결국 파라오가 된 람세스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낸다. 홍해 바다에 이르렀을 때 마음이 바뀐 람세스가 전차 부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쫓아오자, 신은 바다를 갈라지게 해서 그들을 무사히 건너게 한다. 백성들을 이끌고 시나이 산 기슭에 도착한 모세는 산으로 들어가 40주야를 기다려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세실 데밀의 <십계>와 <엑소더스>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는 신과 모세의 표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십계>가 기적을 통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는 신과 그의 뜻을 따르는 충직한 모세를 그렸다면 <엑소더스>에선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신을 형상화하고 이를 따르는 모세의 인간적 고뇌를 표현했다. 스스로 종교영화임을 표방했던 <십계>와 구분되는 결정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엑소더스>는 모세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영화 전반이 출애굽기의 재현과 신의 이야기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이상하고 아쉬운 영화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더욱이 <십계>와 같이 종교적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 영화의 메시지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 탁월한 지도자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신에 의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라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자들은 아예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고 이집트 백성을 비롯한 타 민족들은 ‘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으므로 계속 가혹한 응징을 받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스토리는 절대자가 선택받은 민족을 그렇지 못한 이들로부터 구해내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신이 하나의 민족을 택해 그들을 보호하고, 다른 민족을 대항할 수 없는 권능으로 핍박을 가하는 모습은 다른 인간을 억압하던 이집트의 압제보다도 부조리하고 보편타당하지 못하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비기독교인들에게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지는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 신자들에게 구약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나아가 기독교에서의 신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이 그저 기독교 경전의 영상화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은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서사는 특정 종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하며, 이에 반하는 역사적 논쟁점 역시 적지 않고 무작정 사실로 믿기에는 곤란한 역사적 사항들도 많이 있다.
■지체 높은 요셉과 친척의 후손으로 대접받던 이스라엘 백성이 시간이 흘러, 모세가 태어난 때에는 모두 거지꼴로 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성경은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현대 역사학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유대인이 처음 왔을 때는 이집트가 외세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같은 이방인인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지만, 모세의 시절에는 이집트인이 통치권을 회복한 시기여서 외부 세력인 유대인을 핍박했다는 것이다. 그런 박해를 견디지 못한 유대인들이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그곳을 벗어난 것이 ‘출애굽기’라는 것이다. 참고로 이집트의 역사서에는 ‘출애굽기’와 같은 사건이 보이질 않는다.
■미국의 저명한 성서역사학자는 이집트 속의 이스라엘인들을 용병집단과 그 가족들로 규정했다. 람세스와의 전투에서 이기고 탈출하는 모습에서 착안한 사실이지만 이 또한 역사적인 근거는 추정에 불과하다. 오늘날 선진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용병집단에서 그 근거를 찾은 것으로 판단되며 <엑소더스>에서 모세스가 국방에 전념하는 장군으로 설정된 것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현대사회의 가장 큰 갈등인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문제는 모세와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유대교를 만든 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 보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것에 대한 색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노예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이주 노동자’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당시 최고 선진국인 이집트로 일거리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한 이스라엘 민족이 수백 년이 지나면서 점차 하층민으로 변했다는 시각이다. 지금 독일에 모인 터키인이나 프랑스의 알제리인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니, 대한민국 속의 동남아 이주근로자를 생각하면 되겠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혹자는 이 서사의 이면에서 하나의 민족만을 비호하는 신의 모습을 목격하고, 그 폭력성과 오만함에 경악할 수 있으며 신앙과 믿음이 어느 지점에서 광신과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품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출애굽기가 지닌 거대한 서사의 파괴력은 억압받는 40만 노예들을 이끌고 절대 권력의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와 거대한 제국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모세스의 영웅적 스토리라는 점에서 이 영화를 다른 작품과 근본적으로 차별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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