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와 영자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누군가는 보는 내내 눈물났다고 했고 누군가는 헐리우드급의 이상의 영상이 일품이었다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나는 후반부부터 끊임없는 눈물을 흘렸고 나중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흥남철수를 표현한 CG도 좋았고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국제시장 풍경 역시 영화는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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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50년 한국전쟁을 지나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의 다섯 식구,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던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간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난 덕수는 그곳에서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 영자를 만난다. 그는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선장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접고 다시 한번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건너가 기술 근로자로 일한다. 그곳에서 사고를 당한 그는 귀국하여 고모의 ‘꽃분이네’ 가게를 인수하고 공영방송이 주관하는 이산가족상봉 프로를 통해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막내 여동생 막순이를 찾는다.
한 달 후 덕수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이후 덕수의 나이는 인생을 다 달린 할아버지가 된다. 설 명절, 미국의 막순이네 가족까지 온 가족이 모인 덕수네 집은 북적대는 자녀들로 넘쳐나고 손주들의 재롱으로 한껏 가족들의 분위기가 고조되는데 덕수는 혼자 안방으로 들어가 흥남부두에서 “네가 이제 가장이다!”하면서 아버지가 입혀주었던 외투를 꺼내 방바닥에 놓고 아버지 사진을 바라보며 “아버지 이 정도면 가장 노릇 잘 한거지요? 막순이도 찾았어요! 아버지! 정말 힘들었어요.”눈물을 흘린다.
노년의 덕수 부부는 늦은 밤 자신의 집 마당에서 국제시장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회환에 젖는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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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 '옥의 티'처럼 아쉬운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헐리우드에서도 호평받는 월드스타 김윤진의 연기력이었다. 그간의 영화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연기력의 배우인가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 영화에서는 수준 이하라는 판단이 들었다. 주로 내면의 의식을 끌어내는 감성적인 연기를 많이 해 온 탓인지 이 영화에는 그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황정민의 연기가 대본 속에 녹아있는 반면에 김윤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겉돌고 있었다. 국제시장에서 50년 가까이 장사한 사람이 '공주'같은 어조로 서울말을 계속 쓰는 경우를 본 것은 이 영화에서다. 마치 판소리 공연하는 무대에 오페라 가수가 노래부르며 오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둘째는 의상 부분인데 1960년대 후반 또는 1970년대 초반 체리색 가죽잠바를 입었던 남자의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 오달수의 복장은 2010년대의 복장이었다.
셋째는 연기자들이 부산 사투리 부분이다. 경상도 사투리도 여러 종류가 있다. 부산말 다르고 대구말이 다른 경우로 경남 사투리 중에는 진주말 다르고 밀양말 다르다. 부산말도 서부 경남이나 동부 경남의 사투리와는 억양이나 어감이 아주 다름은 물론이다. 그것은 사용하는 낱말이나 억양으로 구분되는데 황정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엉뚱한 지방인 대구. 경북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진영논리에 의해 재단되어 대한민국을 양분시키고 있기도 하다.
보수논객들은 저마다 "아버지 세대에 감사한다" "정말 감동적이다" "영화를 안 봤더라면 후회할 뻔했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고, 반대로 진보성향의 평론가들은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수 이념에만 충실한 영화"라고 혹평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윤제균 감독은 "세대간 화해를 말하고 싶었다"면서 "영화가 더이상 정치적 이념적으로 이용돼 논란을 부르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말 고생한 세대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삼촌 세대이다. 1910, 1920, 30년대생인 이 분들은 식민지에서 태어나 전쟁을 온몸으로 겪고 그 폐허 위에, 피와 눈물과 땀의 삶을 살았다. 말 한 마디로 생사가 오가고 줄을 잘못 선 결과는 평생을 가기도 했다. 이 분들은 고생 끝에 병을 얻거나 단명하여 노후도 편하지 못한 편이었다.
누군가 이 영화가 아버지 세대의 향수를 한껏 자극했다고 했는데 정확하게 내 나이 기준으로 판단할 때는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 세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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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장년층은 스크린 속에서 늘 희생한 세대로 그려졌을 것이다. 나는 지금 세상을 떠났거나 노인이 되었을 내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보며 ‘나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고 내 아버지도 저랬을 것이란 사실에 눈물이 났다. 주인공 덕수처럼 험난한 시대를 살아왔던 내 삼촌 세대의 관객들이 공감할 대목도 많았다(내 아버지 세대는 더했을 것이다. 명심하자). 그들은 마치 자신에게 바쳐지는 헌사와도 같은 이 영화를 보며 향수에 젖기도 하고 위로도 받았을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영화 한 편 정도는 작위 없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진영논리에 의거하여 날을 세우면 무엇 하겠는가. 어쨌든 내일이면 해는 뜨고 바람은 분다. 인생이란 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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